난임 여성들에게 보내는 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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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여성들에게 보내는 글 (2)
  • 2020.07.31 10:27

부모님도 그러셨고 주변 사람들도 다들 아이를 낳고 키우잖아요. 난임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낯설었어요. 난임이 예고 없이 우리 부부에게 찾아온 거예요. 나는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우리 부부에게는 안 된다는 것이 마치 구렁텅이에 빠진 것처럼 절망스러웠어요.

난임 과정에서 시술 실패 통보를 받거나 뜻하지 않게 또는 불가피하게 아기를 잃는 슬픔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없는 좌절과 죄책감에 빠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실패감을 더 많이 느끼기도 합니다. 또는 견디기 어려운 힘든 감정을 차단하고 분리하여 약간 무덤덤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회복한 것 같은 모습을 보일 때만 안도하고 다행이라고 하기 때문에 ‘그게 도리인 것 같아서, 덜 미안해지니까’라는 생각으로 그들에게 맞춰주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슬픈 심정을 들킬까봐 감추고 꺼내놓지 못합니다.  

여러 차례 유산을 반복하면서 몸과 마음은 지쳐있습니다. 강철 같이 단단했던 몸과 마음이라도 시술이 가능할 때마다 놓치지 않았던 일정 때문에 피로가 쌓였을 것입니다.
시술 일정 사이에 한 달이 끼어있으면 그 잠시 쉬는 것도 죄책감을 가중시킵니다. 엄마가 되는 노력을 게을리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제대로 쉬지 못합니다.

잠시 멈춰서 자신의 마음과 몸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해요

이때 부부 둘만은 지금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 서로의 아픈 마음을 그대로 알아주고 위로받고 위로해주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애도의 시작입니다. 부부는 평범하고 행복한 결혼을 꿈꾸었을 것이고, 그 안에는 자녀가 포함되어 있었겠지요.
지극히 자연스러워보였던 평범한 꿈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참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잠시 멈추고 애도의 시간을 갖는 것이 치유의 시작입니다.

애도는 마음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껴안아서 알아주는 시간입니다. 충분히 애도를 거쳤을 때 자연스럽게 마음의 상처는 아물고 덜 아파질 수 있습니다. 빨리 회복하고자 서두른다면 그것은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외면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현재 가능한 방법을 최대한 찾아내서 난임을 해결하면 되는 것일 뿐’이란 생각은 자신과 배우자의 아픈 마음을 외면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아무 일도 아니었다면서 슬퍼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 상처가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부부가 아픈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충분히 이해받는 시간을 가질 때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해줍니다.

애도는 내가 아기를 갖기 위해서 노력했고 많이 수고했음을 스스로 알아주는 시간입니다.

난임부부가 받고 있는 2차 화살

연희씨 부부는 친구들 중에서 제일 먼저 결혼했습니다.
“일찍 결혼했으니까 아이도 일찍 키우고 뭐든 빠르게 진행할 것이라고 기대했어요. 친구들에게 인생선배나 언니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제 친구들도 결혼하고 하나, 둘 아기소식이 오고 있어요. 오히려 뒤쳐진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급하고 이대로 아기가 안 생기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기도 해요.”
연희씨는 후회도 된다고 합니다.
신혼을 신혼답게 보내자고 1년 동안 피임을 했어요. 그리고 또 6개월 치료받으면서 지나갔거든요. 결혼 전에 산전검사받고 그때부터 노력했다면 훨씬 달라졌겠죠. 아쉬워요.”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화살이 있다면, 벌어진 상황이 1차 화살이고 그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해석, 자기비난, 후회, 부정적 감정 등이 2차 화살입니다. 2차 화살은 대인관계에서 예민함을 높이고 스트레스의 원인이 됩니다.
시간이 흐르며 1차 화살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은 조금씩 옅어질 수 있습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로 바빠지면 기억을 할 시간도 없게 되겠지요. 그러나 2차 화살은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자신이 어떻게 힘들었고 무엇이 괴로웠는지를 반복해서 기억합니다. 여전히 아픔은 남아있습니다.
연희씨 부부에게 1차 화살은 난임 상황이고 2차 화살은 그 상황을 판단하고 해석하는 사고와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편히 내려놓고도 싶지만, 부정적 사고와 감정은 마음을 자꾸 붙들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산책을 떠나며

마음의 안정이 임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동감하는 사실일 것입니다. 마음을 내려놓는 방법인 마음챙김은 마음을 미래나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에 머무르게 합니다. '지금 여기'에  머물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기대와 욕구로 인해 힘겨운 일도, 과거에 대한 후회에 빠지는 일도, 줄어듭니다. 미래에 대해 희망을 느낀다면 그 희망에 잠시 머물러 있어도 좋습니다. 희망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미래에 대해서 ‘안 되면 어쩌지’라는 초조함과 두려움, 불안을 느낀다면 그것은 2차 화살이 되어서 난임 부부의 마음을 마치 흙탕물을 휘저어 놓는 것처럼 정신 못 차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현재 느끼고 경험하는 감각에 마음을 오로지 집중하는 것이 마음챙김입니다. 마음챙김은 마음을 괴롭히는 2차 화살을 멈추게 하고 번민에서 벗어나서 비로소 마음을 쉴 수 있게 해줍니다. 이때 우리는 현재의 긍정성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고 마음이 내려놓아집니다. 어떻게 하면 지금 여기 현재에 머물 수 있을까요? 

Peder Severin Krøyer  (1851–1909), ' Summer Evening at Skagen Beach – The Artist and his Wife', 1899, oil on canvas, 135 * 187 cm, Hirschsprung Collection .
Peder Severin Krøyer (1851–1909), ' Summer Evening at Skagen Beach – The Artist and his Wife', 1899, oil on canvas, 135 * 187 cm, Hirschsprung Collection .

저녁 무렵 식사를 마치고 부부가 두 손 잡고 공원길을 산책해보세요. 머리카락을 살랑이게 하는 실바람을 느껴보고 마주 잡은 배우자 손의 감촉을 느껴보세요. 강한지, 촉촉한지. 걷고 있는 자신의 발걸음을 느껴보고 길 옆의 꽃을 쳐다보세요. 꽃의 색깔을 보고 꽃잎의 보드라운 감촉을 느껴보세요.

다음 주의 병원 일정이 잠시 떠오르면, 떠올랐구나 정도로 반응할 뿐 그 고민에 깊게 빠지지 않는 것이 마음챙김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병원 일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 때 빠졌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다시 마음을 산책길로 돌리면 됩니다.  몸이 산책길에 있을 때 마음도 산책길에 머물러야 합니다.

병원과 난임에 빠지지 않고 산책길에서의 감각 경험에 집중해보세요. 마음챙김은 산책에 집중하게 해줍니다. 난임의 고민에 빠져들기보다는 ‘아, 내가 난임 생각을 하는구나’ 하면서 다시 마음을 산책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그 생각은 저녁 샤워시간에 해야지’ 라고 ‘생각시간’을 마련해보세요. 산책에서 경험하는 피부의 감촉, 눈으로 보는 것, 코로 숨 쉬는 것, 귀로 들리는 소리 등등. 현재의 감각에 마음이 머물 때 어느덧 마음이 내려놓아집니다. 

그렇게 견뎌준 자신의 몸과 마음에게 그동안 참 수고했다고 말해주세요. 부부의 애도 시간은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새 살을 돋게 합니다. 아픔에 침잠해서 우울한 사람으로 살기보다는 새 희망을 찾도록 용기를 줍니다. 원망과 분노가 가라앉으면서 밝은 희망과 긍정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mind

권정혜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권정혜, 이수향, 최민정, 김은량] 우리나라 최초의 난임전문 상담센터인 인구보건복지협회 난임상담센터에서 일한 세 명의 상담자(이수향, 최민정, 김은량)와 자문심리학자였던 임상심리전문가 권정혜 고려대 교수는 난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몸 뿐 아니라 마음까지 치유할 때 가장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난임은 절대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인생의 복병일 수 있지만 때로 나를 찾아가고 더 친밀한 부부관계로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이 여정을 함께 한 경험이 귀하고 보람 있었던 만큼 더 많은 분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같이 씨름하고 길을 찾아간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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