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과 무기력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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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함과 무기력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 2020.08.12 12:00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조급한데,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는 자신의 몸 때문에 오늘도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왜 쉬지를 못해

필자는 성격이 화끈하게 급한 것은 아니지만 종종거리며 살아가는 개미 같은 성향의 사람이다. 심리학도로서 스스로를 돌아보건대, 좋게 말하면 성실성이 높고, 나쁘게 말하면 불안도와 약간의 강박이 있는 것도 같다. 나는 지난달 2년여간의 짧은 조직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다른 곳으로 둥지를 옮기게 되었다. 소속을 옮기는 과정에서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작정하고 두 달은 쉬어야지 다짐했지만 사실상 일이 곧바로 찾아와 한 달을 채 쉬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내가 마음 편히 쉬지 못한 더 큰 이유는 외부에서 부여되는 일의 존재보다는 내 마음 속에 있는 근원적인 불안과 강박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불안과 강박은 때로 나에게 무기력의 모습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회사를 다닐 때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해서 집에 온다. 그러면 황금 같은 저녁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는 나의 내면의 소망과는 달리 누워서 멍 때리기 바빴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 날 또 쳇바퀴를 굴리는 직장인으로서 매우 정당한 행동이었다.

말을 타고 길을 가던 선비에 버드나무에서 들려오는 앵무새 소리에 멈추섰다. 김홍도 (1745~1806).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종이, 117.2 * 52 cm, 간송미술관.
말을 타고 길을 가던 선비가 버드나무에서 들려오는 앵무새 소리에 멈추섰다. 김홍도 (1745~1806).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종이, 117.2 * 52 cm, 간송미술관.

조급함이 불러오는 무기력

한 달 여간 휴식을 취하면서 멍하니 쉬는 행동에 대해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는데, 그 근원을 들여다보면 아마도 불안인 것 같다. 그동안 힘들게 활동했으니 한 달 정도 휴식을 갖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지 모르겠지만, 쉬는 동안 뭐라도 의미 있는 일, 구체적으로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밀린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쉬고 있는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됐다. 하지만 만리 밖을 달리는 내 열정과 달리 나의 팔다리는 그러하지 못해서 한편으로는 무기력을 경험했다. 물론, 누군가 나에게 이러한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나는 쉴 수 있을 때 쉬는 것 또한 지혜라고 말해 줄 테지만 말이다.

그러던 중 주변인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이것에 대한 나 나름의 생각과 분석을 정리해서 공유해 보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심층 연구대상은 필자 한 명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알고 보면성취욕구가 강한 필자는 나에게 주어진 일을 완성도 높게 그리고 빠르게 해결하는 데서 큰 만족감과 위로(?)를 얻는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해치워야 할 것으로 인식되는 목표물의 양이 많아지면 그것들로 인해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나에게 주어진 목표수준이 너무 낮아도 문제이지만 과도하게 높은 것 역시 수행 수준을 낮추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단순한 해결책은 아마도 목표의 수준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하면서도 핵심적인 이야기이지만, 필자는 조금 더 본질적인 내용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성취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 세운 기준이라 믿고 있지만 사실 타인으로부터 요구되는 사회적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애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기준 역시 항상 외부에 존재하게 된다. 나의 경우, 심리학 박사로서 그리고 연구원으로서 읽어야 할 많은 책의 내용들을 얼마나 숙지하고 있는지 정도를 고려해볼 수 있다. 이러한 과업지향적인 실제적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태도이지만, 내가 그것을 의무가 아니라 오롯이 몰입으로 경험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가령, 해결해야 할 외부의 목표물을 하나씩 해치우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성취감을 경험하는 것을 넘어서 그 일 자체를 음미 할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Deci & Ryan, 2000.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속도의 압박, 즉 조급함의 폭정에서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진정한 몰입보다 속도와 양적인 수행수준에 성취의 기준을 두는 순간 우리는 불안해지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빠르고 신속하게'를 외치는 세상에서 어떻게 조급하지 않고 몰입의 희열을 경험할 수 있을까. 이것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의 목적지를 생각해 봄으로써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의 경우,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많은 책과 논문들을 빠르고 정확하게 읽어내는 것인지 아니면 가치 있는 지식을 차곡이 쌓아올려 나의 내면과 지식수준을 풍성하게 채워가는 것인지 말이다. 언뜻 보면 말장난처럼 보이는 이 문장은 사실 엄청난 차이가 있는 듯하다. 전자의 목표는 외부의 대상물이고 후자의 목표는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외부의 무언가를 성취하고 정복하고자 하면 우리는 끝없이 새로운 것에 압도당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한 만큼 채워져야 할 나 자신의 빈 공간을 발견하게 된다. 반면, 나의 내적인 성숙을 목표로 한다면 우리는 오늘 하루의 삶, 그리고 나의 노력을 통해 조금 더 채워진 스스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동일한 행위지만 밑 빠진 독처럼 끝없이 부족함을 경험하면서 불안해할 것인지 아니면 조금씩이라도 채워져 가는 자신을 경험하면서 기쁨을 느끼는지의 차이를 보여줄 것이라 생각한다.

달성이 아니라 완성을

에리히 프롬은 본인의 저서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에서 인간이 무기력해지지 않기 위한 조건으로 집중력을 언급하였다. 그는 사람들은 늘 분주하지만 집중하지 못하고 어떤 일을 하면서도 이미 다음 것을 생각한다고 지적하였다. 즉 최대한 많은 일을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꼴이 되는데, 이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 여기를 살지 못하고 과거 혹은 미래에 살기 때문이라고 한다Fromm, 2020.

내가 그리는 나는 어떤 모습의 사람일까? 내가 채우고 완성해 가고자 하는 나는 궁극적으로 어떤 목적지에 다다르게 될까? 이러한 질문과 함께 외부의 목표물에서 조금 자유롭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것을 추천한다. 무언가를 달성하기 보다는 나 자신을 완성해 가는 삶, 그것이 아마도 조급함과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합리적인 방법일지 모르겠다. mind

    <참고문헌>

  • Deci, E. L., & Ryan, R. M. (2000). The “What” and the “Why” of goal pursuits: Human needs and the self-determination of behavior. Psychological Inquiry, 11, 227-268.
  • Fromm, E. (2020).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장혜경 역). 서울: 나무생각.
장민희 중앙대학교 심리서비스 연구소 사회및문화심리 Ph.D.
중앙대 심리학과에서 사회 및 문화 심리학을 전공하였으며, 자아존중감의 기존 개념을 비판하면서 자기초월성의 개념적 확장을 제안하는 논문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중앙대 부설 연구소에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심리학 기반의 교육콘텐츠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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