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을 위한 심리학 1: 성취할 것인가, 성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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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을 위한 심리학 1: 성취할 것인가, 성장할 것인가
  • 2020.08.28 11:19

기업의 HRHuman Resource 패러다임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필요성은 최근 일어나고 있는 두 가지 사건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우선, 수시채용제도의 활성화이다. 2019년 현대·기아차가 정기채용제도를 폐지하고 수시채용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고, SK와 하나은행이 그 뒤를 이었다. 두 번째는 신입직원들의 조기퇴사 현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은 무려 28퍼센트에 달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취업자 통계에서도 거의 같은 결과가 나왔다. 맡은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 퇴사를 고민하는 구성원에게 직무교육은 무의미하다. 이제 HR의 핵심은 해당 직무를 잘 알고 좋아하는 사람을 뽑아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표면적으로 이 문제는 채용과 교육 업무의 일원화 혹은 긴밀한 협업이라는 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필요한 변화는 기업과 또 그 속의 구성원이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를 성취에서 성장으로 재정립하는 것이다.

렘브란트에서 성장과 성취는 어떤 문제였을까? 그가 죽기 얼마전 63세 때 자화상이다. Rembrandt  (1606–1669), 'Self-Portrait at the Age of 63', 1669, oil on canvas, 86 * 70.5 cm, National Gallery, London.
렘브란트에서 성장과 성취는 어떤 문제였을까? 그가 죽기 얼마전 63세 때 자화상이다. Rembrandt (1606–1669), 'Self-Portrait at the Age of 63', 1669, oil on canvas, 86 * 70.5 cm, National Gallery, London.

성취와 성장의 차이

성취와 성장은 모두 무언가가 없던 상태에서 있는 상태로 변화하는 것을 가리키지만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 변화가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얼마나 밀접하게 닿아 있는지다. 성취란 그 내용이 무엇이 되었든, 자신에게 중요한 일이든 아니든, 무언가를 얻거나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성장이란 자신의 정체성에 맞게, 즉 자신이 자신으로서 더 커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성취는 다른 성취와 닿아 있을 필요가 없다.

방 안에 전시되어 있는 상장과 트로피는 실은 미술, 음악, 운동 등 그 영역이 달라야 더 멋있어 보인다. 다방면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성장은 통합의 이야기이다. 왜, 어떤 과정을 통해 누군가는 음악가로, 다른 누군가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자라났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성장에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가 잘 통합되어 있다.

성취에서, 성장으로

당장의 배고픔을 면해야 했던 과거에는 성취가 중요했다. 어느 분야가 되었든 성취를 낼 수 있는 부분에서 성취를 내서 자신과 가족과 국가의 부를 축적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는 고등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졸업에 맞춰 대규모 공개채용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채용에 따른 비용도 절감되고, 적당하게 똑똑하고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신입직원들에게 업무에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에 따라 잠재적 지원자인 학생들 역시 성취지향적으로 길들여졌다. 학생들은 왜 대학을 가야 하는지,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 묻지 않고 오직 성적을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대학에 가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학점, 입상, 인턴 등 소위 스펙을 쌓는 데 더 열중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닫고 그렇게 성장하는 것보다는 단지 남들보다 더 많은 성취를 내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대기업 사원이라는 명함이 주는 자부심은 더 이상 적성에 맞지 않은 일에 대한 인내심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네 명 중 한 명이 입사 1년 이내에 퇴사하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 부서에 배치되면, 요새 젊은이들은 참고 기다리지 않고 사표를 낸다. 실제로 잡코리아의 조사에서 조기퇴사의 이유로 가장 많이 꼽혔던 요인이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였다.

그런 면에서 필요한 부서에서 필요한 시기에 직원을 채용하는 수시채용제도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잘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정확하게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될지 알게 되면 그 일에 적성이 맞지 않은 사람은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직원을 뽑는 입장에서도 어떤 자질과 경험이 있는 지원자를 선발해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생길 것이다. 제도의 변화로 인해 잠시 동안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수시채용제도가 정착되면 잠재적 지원자들은 언제 어떻게 사용될지 모르는 스펙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자신이 평생 하고 싶고 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기르고 경험을 쌓을 것이다. 이미 직무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표를 쓰는 사람들은 줄어들 것이다.

기업과 직원 모두의 지속 가능한 성장

하지만 기업의 HR 패러다임에 변화가 필요한 이유는 단지 퇴사를 줄이는 데 있지 않다. 이는 기업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글로벌화에 따른 범세계적 경쟁과 기술집약적인 산업구조에 당면한 기업으로서는 적당히 잘하는 인재로는 활로를 개척하기 어렵다. 어떤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해 하나의 성취를 이루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이 또 다른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게 구성원을 도와주어야 한다. 자신이 맡은 업무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동기부여가 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돈을 받으며 하는 것이 아닌가.

연봉인상이나 보너스 지급 등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많은 경우 기업이 원하는 것과 구성원이 원하는 것은 서로 상충한다. 하지만 성장은 기업과 구성원 모두가 함께 원하는 가치이다. 이제 기업은 구성원을 채용할 때부터 그 사람이 기업 내에서 잘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인지 살펴야 한다. 나아가 그 사람이 잘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교육이 필요하고 어떤 동료나 상사가 필요한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계속해서 성장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기업만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mind

※ 본 칼럼은 인재육성 전문지인 『월간HRD』 6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박선웅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성격및사회심리 Ph.D.
박선웅 교수는 사회 및 성격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나르시시즘 연구로 노스이스턴대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고려대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에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물질주의와 한국인들에게 부족해 보이는 개인적 정체성, 그리고 이 둘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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