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 가족이 불편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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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 가족이 불편한데요
  • 2020.08.28 15:35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가족은 화목하고 서로를 지지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만나기 전에 신경쓰이고 불편하며, 만나고 나서는 피로해서 휴식이 필요하다. 나는 가족이 도대체 왜 불편할까?

싸우듯 말하는 습관, 그 발원지를 찾아서

남편이 처음 우리 친정 가족 모임에 왔을 때 많이 놀랐다고 했다. 다들 큰 소리로 서로 말을 끝내기도 전에 끼어들고, 직설적으로 대화를 해서 싸우는 줄 알았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남편은 이것이 우리 가족의 일상적인 대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적응을 했다고 한다. 항상 이런 방식의 대화가 익숙한 나는 그가 불편해할 만한 이유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항상 바쁘게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부모님과의 충분한 대화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주어진 짧은 시간 내에 동생과 경쟁하며 그 동안 마음에 담았던 이야기를 해야 했고, 그게 가끔은 기쁜 일이기도 했지만 불만일 수도 있었다. 짧은 시간이 주어지다 보니 최대한 부모님에게 빠르고 임팩트 있게, 에미넴도 울고 갈 랩 수준의 이야기를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일상적으로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에도 가끔 사람들이 나와 대화를 하다가 나의 돌직구에 흠칫 놀랄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끔씩 그런 반응을 관찰할 때면, 또 구구절절 나의 대화 습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구차하게 설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성장배경을 이야기하는 이유

심리치료를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심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담자들이 간혹 자해, 자살 시도, 필름 끊어질 때까지 술 마시기, 폭력 휘두르기 등과 같이 심각한 증상들을 보고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가정 환경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게 된다. 내담자들이 왜 그렇게 가족과 성장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 생각을 해 보면, 본인의 문제 행동에 대한 맥락을 제공하며 이해받고 싶어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마음에 대한 짐을 조금은 내려놓고 '1/n'의 짐을 지고 싶은 마음이 전해진다. “다 제 잘못은 아니거든요!”라고 외치는 듯하다.

Grant Wood  (1891–1942), American Gothic, 1930, oil on beaverboard, 780 * 653 mm,  Art Institute of Chicago, USA.
누구나에게 가족은 이렇게 낮선 존재가아닐까. 미국 화가 그랜트 우드가  1930년대 그 시대의 가족(아버지와 딸)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Grant Wood (1891–1942), American Gothic, 1930, oil on beaverboard, 780 * 653 mm, Art Institute of Chicago, USA.

하나의 사례를 통해 설명해본다면, 임상심리대학원 재학 시 품행 문제가 있는 청소년들의 면담과 심리평가를 했었다. 만나게 될 아이들은 기물파손, 도둑질, 마약과 같은 품행 문제가 있는 청소년들이었다. 첫날, 약간은 긴장된 마음으로 내담자를 만나러 갔다. 그렇지만 예상과는 달리 처음으로 만난 내담자는 15세의 앳된 얼굴을 가진, 청소년기와 성인기의 애매한 중간지점에 있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적당한 관계 형성을 위한 대화를 주고받은 후, 나는 그에게 물었다. 왜 범죄를 계속 저지르게 됐는지…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부모 둘 다 알코올 중독이 심해, 아주 어린 나이부터 밤 되면 집에 없거나 술에 잔뜩 취해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부모 없이 집에 홀로 남아 있어 실제로 도둑이 들기도 했다고 한다. 부모가 술에 취해 있는 날에는 폭력을 휘두르며 이유없이 맞는 날이 많았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부모님이 술 마시다가 집에 돌아오지 않고 홀로 남겨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이런 이유로 밤에 잠을 자지 않았고 애써 깨어 있었다. 어떤 날은 부모를 기다리다가 잠을 자지 않았고, 어떤 날은 도둑이 들까 무서워서 잠들지 못했다. 이 아이는 커 가며 본인의 두려움을 밤 사이 잠시 잊는 방법을 배웠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밤에 만나기 시작했고, 기물파손, 도둑질 등과 같은 스릴 넘치는 행위를 할 때에는 이런 걱정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이런 문제 행동으로 인해 선생님들이 부모님에게 연락을 하게 되면, 술독에 빠져 있던 그의 부모님은 잠시 술병을 내려놓고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대부분 벨트를 휘두르며 때리고, 욕하며 체벌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부모의 그런 처벌행위조차 반가웠다. 그가 더 이상 집에 존재감 없는 한 켠의 가구와 같은 투명인간 취급을 받지 않아 좋았다고 했다. 싸이코패스를 만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과는 달리, 이 아이의 대답들은 나를 너무 혼란스럽게 했다. 과연 아이를 향한 부모의 방임과 정서적 결핍을 채우기 위해, 가장 정상적인 방법으로 생존하기 위해 그가 행한 행위들에 우리는 기능적/역기능적이다, 라는 라벨을 붙일 수 있을까?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이처럼 심리학에서는 모든 문제 행동은 생기게 되는 맥락context이 있다고 가정한다. 아이를 방치하고 정서적 욕구를 전혀 채우지 못하며 아이가 힘들어해도 전혀 반응하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 부모가 있다고 해 보자. 아이가 자신의 힘든 마음을 알아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자살시도를 하는 것이 과연 잘못됐다고 우리가 단언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자살시도라는 행위는, 아무리 호소하고 울며 소리 질러도 듣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선택한 최후의 수단일 수 있다. 비로소 그 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의 고통을 알아준다면, 이 다음 고통을 경험할 때 또 그 소통의 수단을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생존전략에서 파생된 그 자해 행동이 잘못됐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생긴다.* 물론, 꼭 심각한 문제 행동이 아니더라도 모든 부모는 서툴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아이의 결핍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아이의 문제 행동에 기여할 수 있다.

가족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

여기까지는 좋다. 나의 문제 행동에 대한 배경과 맥락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사람들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화가 그 이상 쉽게 진전하기 어려운 부분이 생김을 알 수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족의 문제, 그리고 그 배경에 대해 나열한 후에는 어김없이 “그렇지만 우리 엄마 참 좋으신 분이에요. 고생 많이 했어요 저 키우느라.” 혹은 “그래도 이 정도면 화목한 가족이죠. 더 이상한 가족이 얼마나 많은데요.”와 같은 말을 덧붙인다. 이전에 한 모든 이야기를 무효화하듯, 부모나 가족에 대한 칭찬으로 마무리된다.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가족은 화목해야 하고 집에 가면 편해야 하며, 부모를 존경하고 욕하면 안된다는 압력이 있어서인 것 같다. 조금만 이야기해보면 많은 경우 가족에 대해 아픈 부분이 한 곳쯤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가족이 불편해요”라고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가족은 절대 불편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도덕적 책임감이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

모든 가족은 고유의 생태라는 것이 있고, 특정한 방식으로 서로 관계를 맺는 방법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이상하면 그 가운데 가장 정상인 사람이 비난을 받기도 하고, 서로가 모두 얽혀 있어 한 사람의 행동, 한 사람의 부재, 한 사람의 말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번져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렇지만 성인이 된 후 원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적어지고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면서 한때는 가족 안에서 필요했던 생존전략들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걸림돌이 되거나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새로 관계를 맺는 방법에 익숙해지다 보면, 가족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 불편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정상이고 괜찮은 일인 것 같다.

가족이 왜 불편할까?

결혼 십 년차가 되니, 나도 남편처럼 온유하고 조용한 대화를 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가끔은 오랜만에 친정 가족을 만나면 반갑기는 하지만 큰 소리로 경쟁하듯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피로를 느낀다. 이제는 누군가 내 이야기를 경청하게 하기 위해서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고, 조용히, 장황하게 이야기를 해도 남편이 느긋하게 잘 들어준다. 그래서 당신이 가족이 불편하다면 묻고 싶다. 가족이 왜 불편할까?

그것은 어쩌면, 아주 어쩌면, 내가 조금은 성장하고 성숙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가족이 불편해도 괜찮다. mind

전문적인 심리철학적 개념이긴 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이런 문제 행동 자체보다는 그 문제 행동이 생기게 된 배경과 이유, 즉 그 행동이 충족하는 기능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는 것을 맥락적 기능주의functional contextualism이라고 한다

서수연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성신여대 심리학과 부교수 및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중. 대외적으로는 정신장애의 원인을 과학을 기반으로 연구하고 근거기반치료를 개발하는 임상심리학 교수이지만 실제로 연구나 생활에서 섭식, 성과 수면처럼 형이하학적 주제에 주로 관심이 많음. 현재는 20년넘게 쌓아온 심리학 지식을 활용하여 수면 문제를 해결하는 국내 유일의 수면심리학자. "사례를 통해 배우는 불면증을 위한 인지행동치료" 저자이며, 행동과학과 심리치료 연구실 BEST랩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여성 임상심리학자 리더를 배출하는 것이 꿈인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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