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쉬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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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쉬고 있습니까?
  • 2020.09.04 15:00
우리는 그것만 해결되면, 거기에만 도달하면, 그것만 얻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기에 도달해도 우리가 진정 원하는 행복이 있을까? 아마도 또다른 행복을 위해 달려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행복해지려면 멈추고 잘 쉬어야 한다.

개강을 앞두고 주말에 논문 수정 작업을 하고 있는데 박사 과정 동안 듣던 노래가 이어폰을 통해 귀에 들어온다. 그리고 뒤돌아 생각해보니 주중과 주말의 경계가 확실히 흐릿해졌음을 느낀다.

몇년 전 영국에서 박사를 막 시작할 때였다. 학교에 가면 칸틴(Canteen: 영국에서는 대학내 구내식당을 이렇게 부른다)에서 연구실 동료들과 같이 점심을 먹곤 했다. 그리고 월요일 점심에는 빼놓지 않고 서로 주고 받는 질문이 있었다. 
“너는 주말 어떻게 보냈어?” 
박사 첫 학기, 긴장감이 상승곡선의 정점을 향해 가던 중이라 나는 주말에도 연구계획서를 쓰거나 일을 하기 일쑤였다. 
“이번 주말에 일이 좀 밀려서 페이퍼도 읽고 일 좀 했어.”
너무 솔직하게 답했나? 황당해 하는 표정과 의아한 눈빛을 보내는 그들. 
“뭐? 뭐라고? 야…주말에 일을 했다고? 정말 유감이다. 너 정말 괜찮니?”
뭐지?” 이런 반응은.... 
'다음 주를 위해 주말에 일을 해 두어야 속이 깔끔해지는데....'하는 생각과, '내가 뭘 어쨌다고 저런 시선을 보낼까'하는 생각이 연이어 들었지만 동료들의 표정과 시선을 쿨하게 내던질 위인은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 자려고 누웠는데도 설명하기 묘한 복잡한 감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

“왜 나한테 괜찮냐고 물었을까? 무슨 메세지였을까?”

그날 밤 여러 생각이 머리속을 헤집고 들어왔다. 내 안의 복잡한 감정을 더 열고, 쪼개고, 단순화시켜, 명료화해보니 내가 봐도 뭔가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만 덩그라니 남았다. 한국이 아닌 영국에서의 나는 '열심히 살고 있는 나'가 아닌 '잘못 살고 있는 나'로 보였다. 심리학과 학부 때 문화심리학에서 배운 '문화 상대주의culture relativism'를 대입해 설명해보려고도 했지만 여전히 내 감정과 생각은 깔끔히 정리되지 않았다. 

Fernand Leger Leisures on red bottom, 1949.
Fernand Leger (1881-1955), 'Leisures on red bottom', 1949.

잘 쉬는 것의 의미  

거긴 유럽이었다. 쉬는 것의 중요성이 너무나 몸에 밴 곳.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말에는 공원을 산책하거나, 소설책을 읽거나, 레스토랑에서 친구들과 저녁을 먹거나 정원을 가꾸는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특별한 활동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러나 주말 활동과 주중 활동은 구분되었고, 주말엔 그들이 원하거나 즐겁거나 의미롭다고 생각하는 활동에 집중했다. 반면, 나는 주중과 주말의 구분이 없었다. 그날 그 점심식사 자리에서 친구들의 질문에 주중에 했던 일을 주말에도 연이어 했다고 답한 것처럼, 쉼 없이 말이다. 

건강한 행동이든, 나에게 해로운 행동이든, 모든 행동은 당사자에게 뭔가 유용한 기능function이 있기 때문에 한다. 그 행동으로 뭔가 얻는 것이 없다면 그 행동은 소거extinction되며 얻는 것이 있다면 유지된다. 나 또한 분명 주말에 일을 했을 때는 얻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얻었던 것이 실제로 나에게 이로웠는지에 대한 판단은 뒤로한 채 일단 질문을 던지고 몇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일중독이라 일이 좋아서 몰입하다보니 주말에도 일했다? 그랬다면 그들의 시선이 목에 가시가 걸린 마냥 불편하진 않았겠지. 
일을 해 치우고 성취감을 맛보려고? 딱히.
밀린 일들을 하고 났을 때의 안도감?

뭔가 비슷한 그 언저리에 답이 있는 듯하다. 

캐고 캐니 마지막 남은 것은, 불안이었다.

불안을 낮추려는 시도  

주말에 일을 하면서 나는 나의 불안을 감소시키려 했다. 그러나 불안이 줄어드는 것에 비해 내가 더 큰 것을 놓치고 있었음을,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 가며 차차 알게 되었다. '불안 낮추기'와 '주말에 새로운 문화를 탐색하고 즐기고 행복감을 느낄 기회'를 맞교환했던 것이었다.
유럽 한 가운데에서 생활해 왔던 내 동료들은 나에게 그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래서 타인의 존재는 중요한거다. 나에게 보고,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 

저녁 5시에 퇴근해 가족들과 또는 혼자만의 여유로운 저녁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에게 오히려 수준 높은 연구성과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에도 흥미가 생겼다. 밤낮으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서도 1등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꼭 그랬다. 비법이 있었다. 주중과 주말의 경계를 잘 지키고, 주중의 하루 중에도 낮에 할 일과 밤에 할 일을 구분하여 잘 쉬는 것. 그래서인지 일의 효율성이 꽤 높았다.

그 이후로 박사 과정 동안은 맘 편히 그리고 당당히 쉬는 습관이 내 몸과 마음에 잘 안착하는 느낌이었다. 저녁시간에 메일을 보내지 않고, 주말에 일을 하지않고, 휴가 간 사람에게는 연락하지 않는 주변 사람들 덕이었다.
특히 휴가 중에 연락을 하는건 예의가 아님을 너도 나도 모두 다 알고 있는 분위기였다. 그의 휴가 중에는 우리 중 누가 죽지 않는 한 무조건 그의 연락이 먼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답. 휴가 간 그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다고 마음을 졸이거나 화가 난다면 그건 내 (애착)불안이 발동했거나 나를 두고 휴가를 즐기는 사람에 대한 시기심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허벅지 꼬집으며 잘 참을 것. 

잘 쉬는 경험을 하다 보니 내가 하는 일로부터 주기적으로 거리감이 생겨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쉬는 동안 '나'라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느끼는 것도 한결 수월해졌다. 물론 스트레스가 제로 상태는 아니었다. 뒤돌아보면 긴장감과 스트레스 수준도 평균수준을 윗돌았으며 심지어 최고까지 간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쉼과 생산성에 대해 가장 만족도가 높은 시기였다. 쉼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나의 한계를 인정할 수도 있었다. 

박사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었던 건 아니지만 주변에는 아침부터 새벽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보니 싸한 느낌이 내 목덜미를 후려 잡아 칼퇴도 쉽지 않았다. 물론 이 느낌은 외부의 시선이 아닌 내 안의 엄격한 목소리(프로이드는 이를 초자아superego라고 부른다)였을 것이다.

교수로 재직 중인 지금의 생활도 만만치 않다. 내 인생에 중요하고 의미로운 것들을 생각해보고 어디에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파이챠트로 그려보니 한쪽으로 치우친 색깔의 불균형이 심하게 눈에 띄었다. 멈춰서서 일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생각할 여유를 충분히 갖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현대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우울이나 불안을 느끼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까? 박사 논문 실험만 끝나면 정말 행복할 거 같다고 생각하며 학교로 향하던 버스 안, BBC 라디오에서 영국의 경제학자 리쳐드 레이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모두는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지난 1세기 정말 쉬지 않고 열심히 달리고 달려 눈부신 성장을 해 왔다. 그러나 우리 눈 앞에 놓인 우리 사회의 현실은 세 집 건너 한 집에 우울하거나 불안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의 여가를 일과 맞바꾼 대가이다. 우리가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시점이다” 

우리는 그것만 해결되면, 거기에만 도달하면, 그것만 얻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기에 도달해도 우리가 진정 원하는 행복이 있을까? 아마도 또 다른 행복을 위해 달려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멈추고

잘 쉬어야 한다. mind

이종선 강원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임상심리학자로 강원대 심리학과에 재직중이다. 영국 King’s College London, Institute of Psychiatry, Psychology & Neuroscience에서 컴퓨터 기반 인지편향수정 프로그램 효과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우울, 불안 및 외상 관련 실험 기반 심리치료 프로그램의 효과 검증 연구를 진행중이다. 한국임상심리학회 편집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총무이사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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