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의 정체성에 대해서_과학(science)과 과학주의(scien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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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정체성에 대해서_과학(science)과 과학주의(scientism)
  • 2020.09.07 01:00
보통 심리학을 정의하면 인간의 마음을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마음'과 '과학적 방법론' 중 어떤 것에 중심을 두어야 할까요?

심리학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심리학자들은 심리학의 정체성을 ‘과학적 방법’에서 찾습니다. 근대 심리학이 시작된 시기를 분트Wilhelm Max Wundt가 심리학 실험실을 만든 1879년으로 잡는 이유가 여기 있지요. 사실 '인간과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은 많습니다. 고대 철학으로부터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등등. 근대에 나타난 거의 모든 학문들의 목적은 인간 연구입니다. 이들이 각각 다른 학문으로 분화된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의 인간 행동'에 관심이 있느냐에 따라서죠. 인류학은 특정 문화의 사람들의 행동에, 사회학은 사회와 인간행동의 관계에, 정치학은 정치라는 상황에서의 인간행동에...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심리학은 '방법론'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려 한 것이죠.

심리학의 정체성을 담당하고 있는 과학적 방법론의 이론적 배경은 실증주의, 그중에서도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검증된 증거를 통해 과학적 지식을 구축하려는 실증주의 중에서 논리실증주의는 그 정도가 엄격하기로 유명합니다.

심리학과 논리실증주의

논리실증주의는 20세기 초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활동하던 슐리크Moritz Schlick, 노이라트Otto Neurath, 카르납Rudolf Carnap 등의 학자들부터(비엔나 서클) 비롯된 생각입니다. 이들은 세계에 대한 지식은 철저히 경험에 근거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무의미한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는데요. 따라서 오랜 시간 동안 철학적 논의의 주제였던 정신의 본질, 존재의 이유, 시간과 공간의 의미, 신의 존재와 본성 등의 주제는 학자들이 연구해야 할 주제에서 제외됩니다.

루돌프 카르납
루돌프 카르납

대신 논리실증주의가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과학의 연구주제인 '종합명제'와 수학이나 논리학에서 다루는 '분석명제'입니다. 간단히 말해, 종합명제는 실험이나 관찰을 통해서 참인지 거짓인지 판별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철수는 파란 셔츠를 입고 있다'라든지 '물은 수소와 산소로 이루어져 있다' 등이 종합명제의 예가 되겠습니다. 분석명제는 의미에 의해 참과 거짓이 구별되는 것들입니다. '모든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다', 또는 '삼각형은 세 개의 선분으로 둘러싸인 도형이다' 등의 명제로, 개념의 정의에 의해 증명될 수 있는 성격의 사실들입니다. 

이런 종류의 명제들은 말 그대로 실험과 관찰로, 또는 엄밀한 개념 정의로 증명될 수 있습니다. 반면, '이 그림은 아름답다'와 같은 미학적 진술이나 '영희는 착하다' 등의 윤리적 진술, '신은 자애롭다'와 같은 종교적 진술은 실험이나 관찰, 개념 정의로는 그 타당성이 검증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논리실증주의는 이러한 진술들은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논리실증주의의 주장은 20세기 중반의 학계에 실증주의의 바람을 일으키며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의 탄생의 모태가 됩니다.

과학과 과학주의

논리실증주의의 주장 중 다소 과격한 하나는 실증적인 방법으로 얻은 지식이 아니면 그것은 진정한 지식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소위 과학주의Scientism인데요. 과학주의란 과학Science이 아니라 과학을 절대시하는 관점 또는 입장을 말합니다. 오스트리아의 과학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논리실증주의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주제에까지 과학적 방법을 무리하게 적용하여 연구 결과를 도출하고 그렇지 않은 연구들에 대해서는 ‘비과학적’이라 비판하는 경향을 ‘과학주의’라 규정하였습니다. 과학적 방법론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범위와 역할을 잘못 이해하고 과학과 지식의 발전을 저해하는 편협한 태도를 비판한 것이죠.

칼 포퍼
칼 포퍼

그렇다면 심리학은 어떨까요? 논리실증주의에 바탕을 둔 엄격한 과학적 방법론을 고수하고 있는 심리학의 경우, 관찰할 수 없거나 실험연구가 불가능한 주제는 심리학의 영역에 받아들이기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해석적, 질적인 방법을 통해 얻은 결론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마음을 연구하는 심리학이란 과학

그런데 말입니다. 심리학은 그렇게 과학적인 학문일까요? 심리학의 연구주제들을 한번 봅시다. 뇌과학과 같은 생물학적 심리학의 경우는 이론의 여지 없이 논리실증주의의 주제에 해당될 겁니다. 그렇다면 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나 행복과 같은 주제는 어떻습니까?

"A는 B보다 더 도덕적이다."

옳고 그름은 관찰과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일까요?

"행복은 삶에 대한 만족이다." 

행복에 대한 정의는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명제입니까? 모든 이들이 동의할 수 있는 행복에 대한 정의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런 주제들은 논리실증주의에 따르면 '형이상학적' 논의로서 과학적 연구의 주제가 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심리학은 이런 주제를 가지고 활발한 '과학적'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측정'이 가지고 있는 가정

심리학이 소위 '과학적이지 않은' 주제들을 가지고 과학적 연구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그러한 심리들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바로, 심리적 개념을 '조작적 정의'를 통해 관찰(계량) 가능한 개념으로 바꾸는 것인데요. 이 과정(조작적 정의와 계량/측정)은 사회과학적 심리학 연구의 핵심입니다. 이 과정에 의해 마음이란 형이상학적 주제가 관찰 가능한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절차들에는 몇 가지 논리적, 통계적 가정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 예를 들면, 등간척도 가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수치화한 마음은 그것이 여러 사람에게 측정했더라도 같은 숫자로 측정되었다면 같은 정도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행복에 대해 A가 응답한 것이 3이고 B의 응답도 3이라면 A와 B는 같은 정도의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C는 4만큼 D는 5만큼 행복하다고 하고, J는 2만큼 K는 3만큼 행복하다고 했다면, C와 D가 느끼는 행복의 차이와 J와 K가 느끼는 행복의 차이는 1로서 동일한 것이 됩니다. 또한, C가 느끼는 행복 4가 D가 느끼는 행복 5보다 작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떻습니까? 이 대답은 A와 B가 생각하는 행복이 같은 개념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마음을 재는 자
마음을 재는 자

심리학은 측정의 대상이 되는 개념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고 가정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측정된 마음의 값은 물리적인 수 그 자체의 속성을 갖고 있다고 가정됩니다.  이런 가정들이 있어야 측정된 수치들을 계산하고 추정치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의 연구들은 이렇게 무수한 가정들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가정은 사실fact이 아닙니다. 다음의 논리를 전개하기 위해 일단 이렇게 해 두자는 것이 가정이죠. 어떤 가정이 틀렸다면(혹은 사실이 아니라면) 그 가정하에 전개된 이후의 모든 논리는 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가정들을 바탕으로 도출된 수치들을 절대적인 과학적 연구의 결과라고 믿고, 심지어 다른 방법으로 도달한 지식들을 '사이비'나 '말장난'으로 폄하하는 것을 과학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과학이란 '앎을 추구'하는 것

포퍼는 과학의 유일한 조건은 과학적 방법이나 엄밀성이 아니라 '반증가능성'이라 주장합니다. 과학적으로 얻어낸 지식이라 할 지라도 그것이 틀렸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한 차원 높은 지식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겁니다. 과학이란 '앎을 추구'하는 것이지 특정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논리실증주의 논쟁은 좀 오래된 측면이 있습니다. 과학이 아닌 것은 모두 헛소리라는 논리실증주의의 논리는 철학자 콰인Willard Van Orman Quine에 의해 논파되었고, 논리실증주의의 영향인 과학주의적인 태도 역시 포퍼에 의해 그 모순을 지적받았습니다. 수십 년은 된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심리학의 정체성은?

심리학은 이러한 과학철학의 논쟁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있는 듯이 보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논쟁 자체가 과학적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죠. 하지만 심리학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과학 또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시대적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이 과학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은, 과학기술이 발달하던 18세기의 시대적 배경에 철학에서 독립하여 독립된 학문을 만들려 했던 분트의 욕구가 결합된 것이었습니다. 심리학이 지금처럼 엄밀한 실험과학의 위상을 갖춘 것은 1920년대에서 50년대에 이르는 행동주의 시대였으며 이러한 경향을 떠받친 것은 논리실증주의였습니다. 논리실증주의에 대한 철학적 비판이 제기되는 60년대 이후, 전 학문영역에 미쳤던 행동주의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고 대신 인지, 문화 등 다양한 주제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특히 사회과학에서는 실험과 양적 방법 외에도 다양한 방법론적 시도들이 이루어지지요. 사회과학의 연구대상은 자연과학과는 다르며, 하나의 현상을 이해하는데 절대적인 유일한 접근방법은 없다는 것이 이 시기 과학철학의 깨달음이었습니다.

물론 심리학자들은 과학적 태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학주의적인 태도여서는 곤란합니다.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mind

한민 심리학 작가 사회및문화심리 Ph.D.
토종 문화심리학자(멸종위기종),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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