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괜찮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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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괜찮다는데.
  • 2020.09.04 19:29
아주 그렇게 아름답지 않아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인생은 그냥 별 이유도 없이 쓸데 없이 아름다워지는 것.

어린이는 나와, 남편을 닮았다. 그래서 아이는 (하필이면) 사소한 것에도 슬퍼하고 두려워한다. 만화영화를 볼 때면 다른 친구들이 손가락질 하며 깔깔대고 웃는 장면에도 아이는 애써 눈을 가리거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내달음질 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딴청을 피운다. 그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나의 심정이란.

그 친구가 겪어야 할 슬픔과 걱정이 그려졌다. 아이는 누구보다 슬퍼하겠고 누구보다 불안해할 수도 있겠구나. 나처럼. 다행히 그 친구의 그런 모습을 보고 처음 며칠을 지내고는 (여전히 아이의 불안감을 목도할 때면 그 고통은 찌르듯 아프지만) 나는 점차 나의 마음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그 친구도 나와 같은 과정을 겪으며 점차 안정을 찾을 수 있다. 행복할 수도 있어.

불혹不惑이 되자 판단력이 흐려지는 일은 줄었고 우울과 불안을 모질게 겪어도 천천히 다시 올라오는 방법을 이제 알 것 같다. 그 친구에게도 그런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내가 선생이 되어줘야지. 그 아이와 똑같은 나이의 어린이로 주저앉아 그 친구 옆에 나란히 앉아 울고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모델링을 해줄 수 있는, 누구보다 그와 닮은 그의 친구로 있어줄 수 있으니까.

Pablo Picasso (1881-1973), 'Mother and son on the shore', 1902. Oil on canvas. 46.3 x 38 cm. © Estate of Pablo Picasso.
Pablo Picasso (1881-1973), 'Mother and son on the shore', 1902. Oil on canvas. 46.3 x 38 cm. © Estate of Pablo Picasso.

요사이 잘 시간이 되어 불이 끄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어린이에게는 여러 공포가 물밀듯이 밀려 들어온다. 낮 동안 지나는 말로 들었던 여러가지 이야기들은 그 모습을 달리하여, 위협적인 모습을 하여 아이를 감싼다. 어린 아이들은 죽음을 무서워하고, 귀신과 괴물을 무서워하고, 누군가 혹은 어떤 전염병이나 질환이, 자신과 우리 가족을 해칠까 두려워 한다. '이러면 어떻게 해?' 하는 식의 질문들은 매일 다른 주제를 가지고 튀어나온다.  

엄마, 귀신이 나올까봐 무서워. 엄마, 아까 내가 병균을 먹었으면 어떡해?

그럴 때면 짧은 반응 안에는 꼭 두 단계의 요소를 넣는다.

그럴 수 있어, 그리고,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엄마가 어릴 때에도 귀신도 무섭고 괴물도 무섭고, 다 무서웠어. 그런데 너도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엄마처럼 나이가 들면, 그런 건 하나도 안 무서워지고, 그런 건 전혀 신경이 안 쓰여’.
(물론 그 뒤의 말들은 굳이 하지 않는다. 엄마는 병원 검진 결과가 무섭고 카드값이 무섭고 사람이 저지르는 범죄가 더 무서워. 그리고 이 시간까지 안자는 너도 무서워..).

아이가 자신이 느끼는 어떤 감정도 '그럴 수 있'으며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까지, 자신의 어떤 감정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때까지, 그래서 역설적으로는 자신의 불안에도 안심할 때까지 나는 아이의 걱정이 타당하다고 반복해서 말해준다.
그럴 수 있어. 너는 슬플 수 있고, 무서울 수 있고, 화날 수 있어.
심리학에서 말하는 감정의 타당화Emotional validation다.
그게 뭐가 무서워?하고 핀잔을 준다고 아이의 공포와 염려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건 내가 제일 잘 안다. 내가 무섭다는데, 왜 저렇게 이야기하지. 내가. 무섭다는데. 내가 서럽다는데.

나의 감정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라면 나의 우울과 불안은 여전히 통제되지 않은 채, 내가 느끼는 것들이 '대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자라난다. 내가 과연 감정을 느껴도 되는 걸까. 내 감정이 나에게 호소하는 것은 어차피 다 틀린 이야기 아닐까. 내 기분이나 감정이란 것은 세상 밖에 드러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아이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확신하지 못하고 어느 순간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지나치게 묻거나 혹은 어떤 표현도 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시간이 길어지고, 그날 그날의 고단한 일상에서 나를 따뜻하게 돌아볼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타당하다고 인정받지 못하고 폐기된 나의 감정들은 나의 가치감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게 슬픈 일이 아니라고? 이게 화내야 하는 일이 아니라고? 너 지금 어디서 부터 잘못 된 거야? 
그렇게 불행감이 온다.

그래서 아이의 이야기에 가장 처음으로 하게되는 반응은 늘 중요하다. 응. 그럴 수 있어. 화날 수 있어. 슬플 수 있어. 두려울 수 있어. 네 감정 맞아. 너의 감정은 네가 제일 잘 알 수 있고, 틀린 감정이란 것은 없어.

그러면서도 금세 아이의 주의를 끌어다가 안심시키는 것까지가 내 몫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누구든, 우리의 감정이 옳다는 것에 안도하고 그에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 나의 감정은 시시각각 변하기에 언제나 옳은 감정이란 있을 수 없고, 내 감정에만 머물러있기에는 나는 해야 할 과업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나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는 것까지도 나의 몫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슬프다거나 두렵다고 생각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닐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어린이를 위해 (혹은 불안정해있는 나 자신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짐짓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덤덤한 말투로, 그래서 내일 간식으로 먹고 싶은 건 뭐야? 하고 묻거나 그래서 너는 물고기를 기르고 싶다는 거지?하며 어린이 마음의 에너지를 다른 방향으로 돌린다.
혹은,
그래도 오늘은 참 좋았다. 아이스크림도 먹고 날씨도 좋았어. 아까 읽은 책도 우리 참 재미있었지, 하며 현재의 즐거움을 다시 복기한다. 

그러면 어린이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기쁨으로 가득찬 목소리를 하고 오늘의 일과 내일의 일에 대해 별처럼 떠들어댄다. 이야기 곳곳에는 감출 수 없는 행복이 가득해, 듣고 있는 나에게도 슬픔과 행복이 가득하다. 아이에 대한 슬픔과 행복이 반, 내게 건네는 이야기 같아서 느끼는 슬픔과 행복이 반이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비영어권 영화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비영어권 영화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나를 위해서건, 또 다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건, 많은 사람들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귀도처럼 매일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한다. 매일 아침 확인하는 뉴스들이 고통스럽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처럼 내게 걱정이 쏟아져 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이에게 보란듯이 혹은 과거의 나에게 보란듯이, 지금 세상 가장 행복하다는 듯이 계속해서 웃고, 또 웃을 수 있다. 나는 나의 연기력이 닿는 한, 염려와 슬픔을 가능한 우스꽝스럽게 만들고자 한다. 그 안에서 어처구니 없이 피어나는 행복도, 행복이다. 다른 사람의 날선 걱정을 먹고사는 불가사리 같은 사람들이 있어 나의 정신승리에 김 빼기를 시도하고 불안을 휘저으려 든대도, 내가 행복하다는데.
내가 입 밖으로 나의 인생이 행복하다고 자주 말할 수 있을 때, 인생은 그냥 별 이유도 없이, 쓸데 없이, 아름다워진다. 
불가에서 말하듯 고통으로 이어진 삶이라 해도 고통과 나의 행복과는 별개의 것이다.

극중 귀도에게 그런 삶에도 정말 죽음 직전까지 행복했었는지 묻는다면 귀도는 더없이 행복했다 이야기했을 것이다. 조슈에 역시, 그랬겠지.
그럼 됐다.

나도 지금 괜찮다.
왜? 내가 지금 어때서. 이만하면 순간순간 충분히 행복해.  mind

* (스포 주의)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주인동 귀도는 세계 2차대전 유대인 수용소에 아들 조슈에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귀도는 아들을 위해 이 수용소 생활은 하나의 복잡한 게임이라며, 이곳에서 생활을 잘 하면서 1,000점을 먼저 얻는 이에게 진짜 탱크가 주어진다는 거짓말을 하며 매일 우스꽝스러운 장난을 치고 연기를 한다.

어느날 밤 귀도는 탈출을 감행하지만 경비병에게 발각된다. 여전히 이것이 게임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며 길가의 큰 통에 숨어있는 조슈에는, 경비병에게 총살되기 직전의 귀도의 모습을 지켜보고, 그런 조슈에 쪽을 바라보며 귀도는 행복하다는 듯 웃어보이며 우스꽝스러운 걸음으로 경비병을 따라 골목 안 쪽으로 들어선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임상심리전문가. 한국임상심리학회 홍보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대한뇌기능매핑학회 대의원 및 학술위원. 정신병리 및 심리치료의 효과를 임상과학 및 뇌신경학적 수준에서 규명하고자 연구를 지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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