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오늘은 완벽하게 현관문을 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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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오늘은 완벽하게 현관문을 열 수 있기를
  • 2020.09.14 10:10
우리 모두는 조금씩의 징크스를 가지고 산다. 나는 집 현관문을 한번에 성공적으로 터치하는 것에 집착한다. 물론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지만 아주 의미있게 도전하고 사는 한심한 나를 보게 된다. 왜 인간은 이런 스스로가 보기에도 무의미한 일에 집착하고 살게되는지를 생각해보았다.

오늘도 실패다.

분명 마음을 가다듬고 부드럽게 터치를 시작했다. ‘우물정(#)’과 ‘별(*)’표가 모두 성공적으로 눌러졌다. 이제 숫자 네 개와 별 표 하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 조금만 더 해내면 된다.; 하나 둘 셋 … 삑… 망했다. 아 짜증난다. 대체 언제쯤 난 한번에 통과가 된단 말인가?

Rene Magritte (    ), 'Moon Door',
Rene Magritte (1898-1967), 'Moon Door',

출입문 앞, 나만의 강박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파트 공용 출입문을 통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출입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카드를 터치하는 것과 번호를 누르는 것이다. 카드는 이사올 때 한 개만 지급을 받아서 아내에게 주었다. 나는 7자리의 기호와 숫자를 눌러야 문을 열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쉽게 눌러지지가 않는다. 좀 오래된 아파트다 보니 버튼을 눌러도 인식이 안 되는 경우들이 있어서 한 버튼을 두 번 세 번 눌러야 하는 일이 생기는데 이런 일이 생기면 영 기분이 개운치 않다. 뭔가 하루의 미션을 제대로 못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이런 생각이 반복되다 보니 이젠 출입문에만 오면 적잖이 긴장이 된다. 오늘은 꼭 한번에 제대로 눌러야지. 터치는 부드럽게? 아니면 강하게? 각도는 수직으로? 비스듬히?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가 마음 속으로 “도전”을 외친다. 그러나 역시나 시도는 또 실패다. 두 세개의 버튼까지는 어떻게 잘 되는데 꼭 마무리 두 세 개를 남기고 일이 틀어지고 많다. 너무나 화가 나서 버튼을 몇 번씩 꾹꾹꾹 누르다가 집에 들어오기도 한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제법 오래된 일이다. 벌써 2년은 되어가는 것 같다.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더 속상한 것은 버튼을 경쾌하게 누르고 문을 여는 이웃이나 택배 아저씨를 볼 때다. 그럴 때는 뭔가 나만 모자란 사람이 된 것 같아 영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런데 오늘도 또 실패한 것이다.

아파트 공동 출입문에 흔히 있는 번호키. 노후화 될 수록 버튼이 한번에 눌러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에겐 큰 스트레스를 준다.
아파트 공동 출입문에 흔히 있는 번호키. 노후화 될 수록 버튼이 한번에 눌러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에겐 큰 스트레스를 준다.

강박행동의 의미

문득 오래 전 심리치료를 담당했던 강박장애 환자 생각이 난다. 이 분은 바지를 입을 때 두 다리가 한번에 끝까지 통과하는 지로 그날의 운수를 점치곤 했었다. 바지가 끝까지 걸리지 않고 옷을 통과해 발을 볼 수 있으면 성공, 중간에 어디라도 걸리면 그것은 실패였다. 나랑 차이가 있다면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옷 입기가 ‘성공’할 때까지 몇 번이고 그 행동을 반복하곤 하였고 다른 일을 시작하지 못했다는 것.

물론 출입문 버튼을 한번에 누르려는 내 행동을 강박장애라고 진단할 수는 없다. 강박장애는 전 인구의 1~3% 정도에서나 나타나는 흔치 않은 심리장애이다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 2013. 내 환자분은 바지를 제대로 입기 전까지는 그 다음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지만 나는 오늘의 운수를 탓하며 아무 일 없었던 듯 집에 들어와서 휴식을 취한다. 이게 심각한 강박장애 환자와 일반인의 차이일 것이다. 일반인도 다양한 징크스를 가지고 산다. 시험 때 머리를 감지 않는 수험생부터, 중요한 경기에는 특정 색깔의 속옷만 있는다는 스포츠 스타, 시계의 숫자가 모두 하나를 가리킬 때(예를 들면 11시 11분) 시계를 보아야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 등 그 숫자를 셀 수가 없다.

강박적인 행동에 집착하는 이유는 다가올 것으로 예상되는 불행한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환자의 처절한 소망에서 시작된다. 물론 바지가 한번에 입어진다고, 출입문 비밀번호가 한번에 상쾌하게 눌러진다고 해서 다가올 미래의 불행이 사라질 리도, 약속된 행운이 찾아올 리도 없다. 그것은 우리 환자분도 그리고 나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남부끄러워 말하기도 어려운 이 ‘징크스’에 집착을 하고 산다. 무엇이 문제일까?

큰 시험을 앞두면 다양한 미신에 현혹된다. 물론 이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걸 대부분의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무시하기엔 무언가 큰 찜찜함이 남는다.
큰 시험을 앞두면 다양한 미신에 현혹된다. 물론 이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걸 대부분의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무시하기엔 무언가 큰 찜찜함이 남는다.

인생은 예측 불가능성의 게임이다

인생은 예측 불가능한 일들 투성이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도 알 수가 없는 마당에 우리는 1년을, 10년을 계획하고 살아야 한다. 일이 생각대로 잘 풀릴 때야 자신감도 좀 생기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보인다. 하지만 그런 날이 며칠이나 되겠는가? 인생의 대부분은 내 의지대로 풀리지 않는 일의 반복이다.

당장 새로운 학기마다 수업방식과 제출서류가 계속 달라진다. 과연 나는 언제 그것들을 다 익힐 수 있을지를 걱정하며 시간이 간다. 과연 이번학기에는 몇 명의 수강생이 내 강의를 들을 것인가? 수업을 평가하는 커뮤니티의 발달로 한번 학생들의 눈밖에 난 수업은 대학에서 생존 자체가 힘들어지고 있다. 어떤 교수님들은 커뮤니티 평을 관리하기 위해 댓글부대까지 운영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인데 교육자의 도의상 차마 그런 일까지는 하고 싶지가 않다. 하지만 매 학기의 시작을 폐강을 두려워하며 보내는 일은 너무나 스트레스 그 자체이다. 새로운 과목을 개발해야 할까? 아니면 교수법을 개선해야 하는가? 어디 가서 재미있는 강의법이라도 배워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하며 하루가 지나간다.

대학원 연구실의 운영도 크나큰 짐이다. 학생들의 나이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른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가며 학비와 용돈을 충당할 나이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다. 공부에 필요한 책을 구입하고, 다양한 학회와 보수교육과정에 등록하고, 개인 논문을 위한 연구비를 마련하는데 부모님의 가벼운 주머니를 쳐다보게 할 수는 없다. 결국 학생들의 연구와 학업을 지원할 돈이 필요한데 이것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결책은 국가와 기업의 연구비를 수주하는 것밖에… 몇 날 밤을 세워가며 연구제안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면 가뭄의 단비처럼 연구비가 내 손에 들어온다.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마련하기 어려울 때는 다른 학교 교수님 들과의 공동연구에 참여해야 한다. 예산배정을 위해 눈치싸움을 해야하고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도 연구책임자 교수님과의 관계에 상당한 신경을 써야한다. 그렇게 돈이 들어와도 이번엔 돈값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빠듯한 학교 일정 속에 시간을 쥐어짜서 연구를 진행하고 다른 학교와의 회의도 참가한다. 연구가 마무리되기 시작하면 그 결과를 저명 학술지에 출판해야 하는 압박이 다시 머리를 짓누른다. 동시에 다 떨어진 연구비를 보충하기 위해 또 어떤 연구비를 따야 할지를 찾아본다. 사채 빚을 들여다 쓰는게 이런 느낌일까? 하루하루가 위태위태하게 진행되는 느낌. 외줄을 타고 서 있는 느낌 속에 살아간다

어리석은 자의 현명한 선택

이 모든 스트레스는 내가 이 직업을 그만두지 않는 한 계속 나와 함께할 것이다. 문제는 걱정이 끊임없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마땅히 대비할 방법도 없고 대비를 한다고 일이 내 생각대로 풀리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듯 무력한 상황에서 사람은 무언가 내 뜻대로 되는 일을 찾고 싶어지는 것 같다. 세상 모든 일이 너무나 불확실하고, 그것과 맞서 싸울 자신이 너무도 없는 그 순간에 그래도 내가 무언가 하나는 제대로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은 것. 강박행동의 저 깊은 곳에는 내가 무언가를 잘하고 있다는 그 통제감에서 위안을 받고 싶은 현대인들의 절박함이 있는 것이다.

내 환자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학교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평생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던 대학에 진학하기 어려운 성적까지 밀리기 시작하니 숨이 막혀오는 느낌이었어요. 아침마다 학교를 가기 위해 눈을 뜨는 것이 너무나 지옥 같아 어디론가 도망을 가고 싶었죠. 그 때부터 바지를 입는데 집착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바지를 한번에 입은 날은 힘이 났거든요.” 바지 입는 그 행동을 통해서라도 자신감을 얻고 싶은 그 마음이 애잔하다. 하지만 지금 나도 ‘자연스럽게’ 한 번에 열리는 출입문 조작에서 무언가 위로를 기대하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뮬론 해결책은 강박행동 자체에 있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광대한 우주에서 한낱 미물 중에서도 미물에 불과한 내가 감히 우주의 운영체계를 ‘통제’해 보겠다는 불경스런 생각때문에 받게 된 죗값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한들 수업에 수강생이 가득 찬다는 보장은 없다. 내가 고민을 많이 한다고 연구실에 연구비가 느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사실 연구비가 늘면 그만큼의 삶의 무게가 늘어나기도 한다. 결국 최선을 다하되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우리가 이 형벌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어 보인다Bream et al., 2017... 도박에서 돈을 잃었을 때 잃은 돈을 찾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즉시 도박장을 박차고 나와서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다.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은 선택이 아닌 시간의 문제인 것이다. 빠르게 받아들일수록 내 삶의 피해는 최소화된다.

두려움에 당당히 맞서라!

요즘 시계시장에는 중국산 제품들의 성장세가 무섭다. 과거 중저가 시장을 독점하던 일본산 브랜드들의 자리는 이름도 낯선 대륙의 브랜드들에 의해 대체된 지 오래이다. 이들의 강점은 롤렉스와 같은 인기 명품시계와 디자인도 유사하고 퀄리티도 기대 이상인 제품을 상상 초월의 저가에 구입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단지 문제점이 있다면 오직 온라인 구매만 가능하다는 점과 제품의 문제시 환불과 수리에 있어 심각한 애로사항이 있다는 것이다.

나도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디둔 디자인의 ‘로얄 원’ 오토매틱 시계를 보았을 때 그 엄청나게 화려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디자인에 바로 마음을 빼앗겼었다. 이 제품은 우리나라에서는 래퍼 사이먼 도미닉이 열심히 ‘자랑’하고 다닌 덕에 젊은이들의 드림 명품 반열에 등극한 스위스 브랜드 오데마 피게 ‘로얄오크’의 디자인 오마주 제품이다. 10만원도 채 안 되는 가격에 오토매틱에, 로즈골드 도금된 8각형의 시계를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지만 중국제품에서 드물지 않게 나타나는 불량품 배송과 기약 없는 환불 절차에 대한 악평들이 수개월 동안 내 마음을 고뇌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음을 접고 생업에 종사하다가도 어느새 알리 홈페이지를 열어보는 나를 보며 결국 결단을 내렸다. 모든 결과는 내 스스로 체험하고 감당하겠다고.

결론적으로는 멀쩡한 시계를 잘 받았다. 반전이 있다면 이 시계가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부담스러운 번쩍거림이라니… 다행이라면 내 평생에 오데마 피게를 사기 위해 제네시스 한 대를 포기하는 바보같은 선택은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경험의 힘이다. 물론 나는 이후에도 용기있게 알리의 제품들을 주문해보았고 드디어 그 불량품 배송을 몸소 경험하는 영광(?)을 체험하게 되었다. 처음에 다짐했듯이 나는 '대륙의 혼돈'을 있는 그대로 감당하기로 했다. 클레임을 제기하고 반송을 하는 경험은 불편하다면 불편한 체험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환불도, 문제제기도 그냥 진행하면 시간이 해결해 준다. 손해본 것은 몇 만원의 돈과 우체국에 다시 가야 하는 시간 뿐이다. 나는 기꺼이 이 실패를 받아들이고 다음을 준비한다.

시계 디자인의 혁명을 이루어 냈다는 제랄드 젠타 스타일을 오마주한 중국 디둔 디자인의 '로얄원' 사실상 오데마피게의 '로얄오크'랑 동일한 디자인이다. 다들 구경도 못한 채 찬사를 날리지만 내가 경험해보니 이것과 어울릴 대한민국 남자는 거의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당당히 도전한 내 결론이다
시계 디자인의 혁명을 이루어 냈다는 제랄드 젠타 스타일을 오마주한 중국 디둔 디자인의 '로얄원'. 사실상 오데마피게의 '로얄오크'랑 동일한 디자인이다. 다들 구경도 못한 채 찬사를 날리지만 내가 경험해 보니 이것과 어울릴 대한민국 남자는 거의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당당히 도전한 내 결론이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우주적 관점에서 먼지보다도 작은 미물일 뿐이고 내 인생은 다른 만물의 원리와 연결되어 있어서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계획한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냥 계획대로 되지 않는 그 결과를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사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적응이다. 나는 한낱 피조물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더 높은 분의 역할이다. mind

    <참고문헌>

  •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13).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5 (5th ed.). Arlington, VA: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 Bream, V., Challacombe, F., Palmer, A., & Salkovskis, P. (2017). Cognitive behaviour therapy for obsessive-compulsive disorder. Oxford, United Kingdom: Oxford University Press.
최승원 덕성여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덕성여대 심리학과 부교수이자 임상심리전문가. 임상심리학은 반드시 생물-심리-사회적 접근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믿기에 언젠가는 심리학이란 이름보다 더 발전적인 개명이 필요하다고 믿는 심리학자. 상담센터와 정신과병원을 거쳐 대학에 와있는 이분야 진로탐험의 교과서적인 인물이나 진로상담보다는 괴팍한 연구자로 기억되기를 간절히 바람. 기분장애와 B군 성격장애가 주요연구관심분야이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어떤 곳에서든 최선을 다할 멀티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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