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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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 2020.09.14 10:00
오늘도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가? 오늘도 잘 잠이 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가? 수면심리학자가 불면을 걱정하는 여러분에게 불면 극복의 첫 걸음을 이야기한다.

잠자려고 누우면...

영화에서 냉장고 문을 여는 장면만 보여주고 닫는 장면을 안 보여주면 나는 밤새 냉장고 문을 과연 닫았을까 생각하느라 잠을 못 자는 강박적이고 예민한 성격이다.

잠자려고 누우면 온갖 잡념이 떠오른다. 창피했던 일들에 대해 곱씹어 보기. 오늘 내가 한 이 말을 저 사람이 잘못 해석하지는 않았을까. 살면서 나를 서럽게 한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씩 떠올려 보기.

이렇게 침대에서 잡념에 빠져 있는 나를 보며 남편은 '너무 신경 쓰지 마'라는 한 마디를 던지고,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펠리컨이 냉면 먹다 목에 걸린 소리를 내며 큰 소리로 코를 골고 깊은 잠에 빠진다. 얄밉지만 결혼 10년 차쯤 되니 태생적으로 다른 기질을 타고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편안해졌다.

밤이 깊어질수록 나의 머릿속은 빌리 콜린스Billy Collins라는 시인이 쓴 『Insomnia』라는 시의 한 장면 같다.

세상의 모든 양을 세고, 부족해서 모든 야생 동물들, 달팽이, 낙타, 종달새를 모두 센 다음에 나라별로 동물원과 수족관을 세게 된다. 내 머리 안에 자리 잡은 이는 삼발 자전거에서 낡은 초록색 카펫 위에 좁은 동그라미를 반복해서 그리며 내리기를 거부한다.

잠을 걱정하는 사람들

자기 전에 잠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하게 된 것은 학생 시절이다. 시카고에서 대학병원 수련생 시절, 새벽까지 보고서를 쓰는 날들이 많았다. 금요일 저녁만 되면 일주일 힘들고 열심히 살았노라, 스스로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며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고 늦게까지 친구들과 노느라 밤을 불태웠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토요일과 일요일은 늦잠을 늘어지게 잤다. 그러다가 월요일 아침 7:30 회진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일요일 저녁은 긴장이 됐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을 걱정하여 일찍부터 잠자리에 누웠다. 당연히 바로 잠이 오지 않았다. 몇 시간 뒤척이고 온갖 잡념에 빠져, 살면서 나를 서럽게 한 모든 사람들을 한 번씩 상기시킨 다음에 간신히 새벽녘에 잠들 수 있었다.

자는 습관이 불규칙적일수록 수면도 점점 예측 불가능해졌다. 어떤 날은 밤새 가수면 상태에서 잠을 설쳤고, 어떤 날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잠이 예측할 수 없는 도박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잠을 잘 자는 사람들은 잠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생각 없이 하는 행동이고, 자려고 누우면 자동적으로 잠이 온다. 그렇지만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은 다르다. 낮에도 잠에 대해 생각한다. 잠을 자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고, ASMR이며 수십만원짜리 베개며 건강기능식품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전설에서 늑대 인간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은으로 된 탄환을 쏘는 것이라고 하는데, 불면증 환자들도 이처럼 잠을 한 큐에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을 기대한다. 물론 다 부질없는 짓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기 위해 잠을 자는 인생'을 산다면,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은 거꾸로 된 '잠을 자기 위해 사는 인생'을 산다.

Władysław Ślewiński  (1856–1918), 'Sleeping woman with a cat', 1896, oil on canvas, 66 * 100 cm, (c)rempex.com.pl.
Władysław Ślewiński (1856–1918), 'Sleeping woman with a cat', 1896, oil on canvas, 66 * 100 cm, (c)rempex.com.pl.

잠자기 위해 노력하지 말라!

나는 그래서 수면심리학자가 되기로 결정을 했다. 수면심리학자의 길을 걷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은, 불면증을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실마리는 잠자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애쓰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하루 종일 잠에 대해 생각하고 연구해야 하는 직업을 택하게 됐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우리는 살면서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래서 당연히 잠을 못 자면, 잠을 못 자는 문제에 대해 해결하고자 노력하게 된다. 그렇지만 살면서 노력하면 할수록 더 문제가 미궁으로 빠지게 되는 것들이 있다. 발표 불안이 있는 사람이 발표를 하면서 얼굴이 빨개지고 말을 더듬을 때, 멈추려고 하면 더 심해진다. 잠도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 멀어진다.

몇 년 전, 불면증 내담자를 상담하고 있었다.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그런지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누워있으며 우울한 생각이나 잠에 대해 생각으로 하루가 가득했다. 그리고 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길수록 밤에는 잠을 자지 못했다. 신기하게도 예외가 있었는데, 야근을 자주 하던 남편이 가끔 일찍 들어와서 고스톱을 같이 칠 때가 있었다. 그런 날이면 잠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서 잠을 잘 잤다. 신기한 일이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을수록 문제가 해결된다는 역설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다.

내 머릿속의 수면 지킴이

수면심리학자라 하더라도 나의 강박적이고 예민한 성격으로 인해, 스트레스 받는 일이 생기면 잠을 잘 잘 수 있을지에 대해 여전히 걱정이 된다. 그렇지만 이제는 잠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서도 조금씩은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수면을 가장 정확하게 측정하는 수면다원검사라는 검사가 있다. 환자가 병원에 하룻밤 자면서 뇌파, 심전도 등을 측정하기 위해 온갖 전극을 붙이고 잔다. 다음날 환자의 하룻밤 동안의 기록은 뇌파, 심전도, 호흡, 움직임, 코 고는 소리와 같은 신호로 수치화가 되는데, 내가 이 신호 중 유독 좋아하는 두 개의 신호가 있다. 본격적으로 잠을 자게 되는 수면 2단계의 뇌파를 살펴보면 수면방추sleep spindles와 K복합체K-complex라고 하는 뇌파의 특이한 구조가 나타난다. 이 두 신호는 외부에서 그 어떤 소란과 소음이 있어도 나를 지켜주며, 더 깊은 잠을 자게 해준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나의 뇌는 밤마다 이런 수면 지킴이와 같은 신호들을 보내준다.

극복의 첫 걸음은 내 몸과 마음에 대한 신뢰

그렇다. 내 뇌가 고장나서 잠을 못 자는 것이 아니다. 잠을 다시 잘 잘 수 있게 된 첫걸음은 몸에 대해 신뢰를 하고 인내심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내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스스로 잠을 잘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신뢰해야 한다. 잠을 쫓아, 조금이라도 빨리 잠을 자려는 시도들은 결국 물거품으로 끝난다. 공지영 작가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가야 할 것은 결국 가고 말 것이라는 이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되기까지, 그 모든 것이 혹시 다 내 손에 달려 있어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무언가가 달라질까 하고, 가야 할 것이 가는 시간을 결국 늦추어 놓고 말았던 그 시간까지, 참으로 많은 것을 지불했다. 가야 할 것은 분명 가야 하지만, 또 다른 한편 와야 할 것들도 분명히 온다.” 공지영 작가가 물론 잠을 염두에 두고 쓴 것 같진 않지만, 이처럼 잠과의 관계도 이렇게 편해질 수 있다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아직도 낮에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잠을 설친다. 그렇지만 이제는 내 강박적 성격을 어떻게 바꿔보려고 하는 어리석은 노력은 하지 않는다. 하루나 이틀 정도 잠을 못 자도 큰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인생이 하나의 큰 전쟁이라면, 그 안에 잠이라고 하는 작은 전투 한두 개는 져도 전쟁에서 이기면 된다. 그래야 잠을 자기 위해 사는 인생이 아니라, 살기 위해 자는 인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mind

서수연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성신여대 심리학과 부교수 및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중. 대외적으로는 정신장애의 원인을 과학을 기반으로 연구하고 근거기반치료를 개발하는 임상심리학 교수이지만 실제로 연구나 생활에서 섭식, 성과 수면처럼 형이하학적 주제에 주로 관심이 많음. 현재는 20년넘게 쌓아온 심리학 지식을 활용하여 수면 문제를 해결하는 국내 유일의 수면심리학자. "사례를 통해 배우는 불면증을 위한 인지행동치료" 저자이며, 행동과학과 심리치료 연구실 BEST랩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여성 임상심리학자 리더를 배출하는 것이 꿈인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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