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관계, 마법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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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관계, 마법지팡이
  • 2020.09.25 14:18
우리가 생각하는 관계에서의 속상함, 불편함, 갈등, 상처는 우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괜한 오해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하거나 놓치는 일은 없기를 바라며...

심리치료를 받고자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들이 호소하는 고통감이나 편치 않은 감정 이면에는 십중 팔구 어떤 사람 때문일 경우가 많다. 어떤 관계를 참을 수 없다는 호소다.  

그 편치 않은 관계로 인한 고민과 고통의 시작은 어디여서부터 였을까?

강의 중 자주 틀어주는 비디오가 있다. 면도기로 유명한 윌킨슨 소드 회사의 광고인데, 나름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다. 기저귀를 찬 아기, 엄마, 그리고 아빠가 등장하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ZkBtVQbSg8w) 광고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부드러운 피부를 타고 났다는 이유만으로 태어나자 아기는 엄마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다. 한 켠으로 소외된 아빠,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어느 날 특별한 걸 발견하게 되는데, 그건 다름 아닌 면도기이다. 면도기로 말쑥한 얼굴이 된 아빠는 다시 엄마의 관심을 되찾아온다. 이제 역전이 된 상황. 엄마의 사랑을 빼앗긴 아이는 질투심(엄마, 아빠 그리고 나 삼자관계에서)과 경쟁심(아빠와 나 이자관계에서)에 불타고, 아이는 엄마를 되찾기 위해 열심히 몸을 만들기 시작한다. 

삼자관계

그러나 아기가 아무리 좋은 몸을 가진다고 해도 아빠와의 경쟁은 가당치도 않다. 이를 어렴풋이 느낀 아기는 그 후 아빠의  구두를 신거나 옷을 입어보기 하며 아빠의 말투로 아빠 흉내를 낼 것이다. 언젠가 내가 아빠처럼 된다면, 하며….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어하는 욕구는 슬픈 이야기로 접어간다. 아이들에게는 엄마나 아빠가 내 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엄마의 짝인 아빠,  아빠의 짝인 엄마와 동일시를 하게되는 순간이 있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이론에서는 이러한 첫 삼각 관계 갈등의 기원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설명한다. 연적으로 인해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사랑 이야기이다. 관계에서의 경쟁심, 질투심의 감정도 바로 여기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정신분석에서는 설명한다. 이 컴플렉스가 극복이 되지 않으면 대인관계에서 삼자 관계를 하지 못해 경쟁심과 질투심으로 한 사람을 밀어내는 상황을 반복하며 이자관계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위 비디오에서 아기는 '엄마라는 좋은 대상good object'은 본인이 가져야 하기에 '나쁜 대상bad object'인 경쟁자, 아빠를 제거하려 노력한 것이다. 이 갈등상황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삼자관계에서 '좋은 대상을 지키고 차지하려는' 노력을 되풀이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끊임없이 경쟁자를 밀어내는 관계를 반복하며 편치 않은 관계 구도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기는 왜 이 관계에서 불편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걸까? 셋이 행복할 수는 없었을까?

좋은 대상, 나의 마법지팡이

아이의 관점을 마법지팡이로 이야기해보려 한다.
아기는 한때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마법지팡이로 엄마랑 완벽한 관계를 한다. 말을 못해도 그저 뭐라도 소리만 내면 내가 기저귀를 갈아 달라는 신호인지 배고프다는 신호인지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 사람. 나의 곁에 늘 엄마가 있었다. '아' 소리만 내면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이뤄주는 힘을 나에게 가져다주는 마법지팡이였다. 이때만큼은 세상 모든 걸 가진 양 나는 행복하고 전지전능한 사람이 된다. 이 덕에 엄마가 나인지 내가 엄마인지 모를 정도로 엄마와 나는 한 사람으로 공생관계를 한다.

그러나 이 달콤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내 앞에 다른 사람이 있어도 ‘two person’ 관계를 하지 못하고 ‘one person’ 관계만 하는 나르시시스트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이 나에게 찾아올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쓴 소리를 하자면, 나르시시시트는 잘난 사람도 자존감이 높은 사람도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영원히 'one person' 관계를 꿈꾸는, 성장이 한참 더 필요한 사람이다.

정상적인 발달시기를 거친다면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엄마와 분리가 되는 순간부터 엄마에게 다른 관계(대개는 아빠이거나 새로이 태어난 동생)가 있고, 엄마에게 다른 욕구가 있다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을 필연적으로 맞닥뜨린다. 특히 동생이 태어난 경우 참을 수 없는 강렬한 반기 행동이 시작된다. 흔히들 '동생의 존재를 처음으로 목격하는 순간의 감정은 애인이 바람 피운 상대를 마주하는 바로 그 느낌'이라고 표현하는 말은 그래서 정확하다. 삼자 관계에서의 강렬한 질투심이 시작되는 것이다. 

마법지팡이를 잘 떠내보낸 사람들

마법지팡이의 효력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엄마가 다른 관계를 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고, 엄마와 내가 다른 말을 한다고 느낄 때쯤 내가 가진 마법지팡이가 효력이 없어져 갈 것임을 직감한다. 엄마와 내가 다른 사람이었음을 서서히 깨달아 가기 시작한다. 이제 마법지팡이가 효력이 없는 고물지팡이가 되어 갈 것이기에 그에게 애도를 잘 하며 떠나 보내야 한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이 과정을 어른들은 나를 '하나의 인간'으로 '사회적 인간'으로 만들어가려는 프로젝트라고 설명하며 이게 커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해준다. 그러나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도 되지 않고 화나고 서럽고 치사하고 좌절스럽고 뭐 그런 감정들이 나의 마음을 온통 채운다. 마법 지팡이를 다시 되돌려 달라며 소리쳐 울어보기도 하고 바닥에 뒹굴기도 하고 반항도 해 보지만 소용이 없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제 내가 원해도 이루어지지 않은 관계가 있음을 받아들이며 좌절감을 견뎌야 한다.

마법지팡이를 떠나보내는 애도과정을 성공적으로 지나왔다면 나는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도, 나보다 더 친한 둘을 바라보아도, 이렇게 편치 않은 관계에서의 갈등과 불편함을 자연스럽고 일시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또다른 누군가 가까워지는 과정을 편안해 할 수 있다.

Suzanne Valadon  (1865–1938), 'The Abandoned Doll', 1921, oil on canvas, 129 × 81 cm, National Museum of Women in the Arts, USA.
Suzanne Valadon (1865–1938), 'The Abandoned Doll', 1921, oil on canvas, 129 × 81 cm, National Museum of Women in the Arts, USA.

작동되지 않는 마법지팡이를 가진 사람들

아쉽게도, 양육자의 특성이나 사정에 따라 마법지팡이를 손에 쥐어보지도 못하고 내 인생에는 처음부터 없었던 물건인듯 유년기를 살아온 이들도 있다. 내 욕구 전달이 묵살되거나 실패로 끝난 기억밖에 없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누굴 만나도 내 욕구가 전달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없어져 가까운 관계가 힘들어진다. 특히 누군가를 사귀다 상대가 내 욕구에 잘 맞추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상대에게 서운한 감정이 치민다. 말하기가 싫어져 점점 말수가 적어지고 입을 다물게 된다. 역시나 ‘내 맘을 알아줄 리가 없지’로 씁쓸히 제멋대로 관계의 마침표를 찍는다. 지금 만나는 사람 대신, 언젠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이상적인 누군가를 다시 찾아보기로 맘 먹는다. 이미 그에게 거리를 두고 차갑게 대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사랑을 좀 더 해볼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면 어떤 이유건 밀어낼 채비를 한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건 정말 힘들다. 

애초에 마법지팡이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

이런 경우도 있다. 태어나보니 나한테는 없고 어른한테만 마법지팡이가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른의 지팡이는 나보다 훨씬 크고 마력도 세다. 그들은 함부로 지팡이를 휘두르고 자신의 영향력과 통제력을 과시한다. 그 유년시절을 자꾸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뉴스에 내 이야기인것 같은 보도가 나오면 가슴이 찢어질듯 아파 채널을 돌리고 나면 두통이 찾아온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어릴 때 봤던 비슷한 형체의 강력한 마법지팡이의 기미만 보여도 그 대상을 본능적으로 피한다.

피하려고 해도 피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 관계가 사귀는 애인이거나 배우자이거나 아주 친밀한 관계일 경우, 벗어나고는 싶어도 벗어나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말처럼 그 관계를 벗어나는게 쉽지 않다. 남들은 쉽게 끝내는 걸 난 왜 이리 힘든지... 그러다 일진이 안좋은 날에는 마침내 격렬한 분노 끝에 관계를 단절하기도 한다. “두고 보자. 나 없이 얼마나 잘 사나”로 마침표를 찍는다.

그러나 결국 '역시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건 힘들어.' 그래도 누군가가 필요하긴 한데.....없는 것 보다는 있는게 낫기는 한데...' 하는 생각이 이어지기 마련이며,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뭔가에 매달리는 기분이 드는 것 같아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진다.

어른이 된 이들에게

사람들은 관계에서 누구에게 마법 지팡이가 쥐어질지 그리고 그 마법 지팡이가 잘 작동하는지를 시험해 보고 싶어하는 기대를 마음 한 켠에 가진다. 마법 지팡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사람에 따라 반응은 다르지만 속상하고, 불편하고, 초라해지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심지어 이런 관계를 결국에는 끝내야 한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나 쥐어 보고 싶어 하는 그 마법 지팡이는 생애 첫 어느 일정 기간에만 잘 잘동했음을 인정하고 혹은 작동조차 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이제는 잊어야 한다. 떠나버린 마법지팡이를 애도하지 못하면 관계에서의 불편함이 찾아오고, 갈등을 이겨내지 못한 채 힘든 관계를 지속하기 쉽다.

이들에게는 당연히 있어야 했던 것이 결핍된 채 오랜 시간 살아 왔다. 그러나 처음부터 서로 선택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기에 내 엄마나 아빠가 가진 마법지팡이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버리라고 말할 권리도 없고, 그러니 내 잘못이 아니다. 내가 알아듣고 이해하기 힘든 그들의 언어로 쏼라쏼라 외치는 마법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로 신체로 나에게 상처를 남겨댔던 그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관계에서의 속상함, 불편함, 갈등, 상처는 모두에게 서로 다르게 만들어지고 다르게 이어진다. 그러나 괜한 오해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하거나 놓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그 시기가 지나고 지금은 어른이 되어 다른 건강한 많은 자원이 있다는 것을 알기를,  마음 속 한켠 비어 있는 결핍을 채워줄 따뜻한 무언가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mind 
 

이종선 강원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임상심리학자로 강원대 심리학과에 재직중이다. 영국 King’s College London, Institute of Psychiatry, Psychology & Neuroscience에서 컴퓨터 기반 인지편향수정 프로그램 효과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우울, 불안 및 외상 관련 실험 기반 심리치료 프로그램의 효과 검증 연구를 진행중이다. 한국임상심리학회 편집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총무이사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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