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여인, 삼중통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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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인, 삼중통역자
  • 2020.10.19 12:31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진행 중인 『탄생 100주년 기념 : 박래현, 삼중통역자』 전시회를 다녀왔다. 아내, 엄마, 예술가로서의 삶 중 천재 화가 운보 김기창의 아내로만 각인된 예술가 박래현의 작품을 재조명하는 전시다. 작가로서 잊혀진 여인이 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번민했던 그녀의 삶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 우리 사회 여성들의 삶에도 반복된다.

잊혀진 여인

추석 연휴 토요일 SBS에서 명절에 어울리지 않는 파격적인 편성으로 『82년생 김지영』을 방영했다. 영화 속 아기 엄마 김지영처럼 공원 벤치에 멍하니 앉아 유모차를 발로 밀었다 당기기를 해 봤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때 어른 사람과의 어른 대화가 참 고팠었다.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뤘던 출산이었고 박사 후 과정까지 다녀온 후라 뭔가 하면 할 수도 있었지만, 딱히 뭘 하지 않아도 괜찮은 부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새롭게 얻는 엄마라는 정체성이 너무 낯설었고 그냥 매사에 억울했다. 박사 논문 심사위원 중 한 분이셨던 어느 선생님께서 최종 논문에 사인을 해 주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잊혀진 여인이 되지 말아라

학자로서 계속 연구에 매진하라는 것도 아니고 잊혀진 여인이 되지 말라니. 그분 나름의 격려였을 그 문장이 포춘쿠키 속,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애매한 쪽지를 뽑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들었다는 도장을 찍어주시며 학자로서의 앞날을 축복해 주는 좋은 말씀 중 유달리 잊혀진 여인만 기억에 남는 것은 내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다. 선생님의 그 말씀은 출산 직후부터 지금까지 쭉 나를 압박한다. 진부하고 멜랑콜리한 잊혀진 여인은 한 가수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그 가사는 이렇다.

긴 잠에서 깨어보니 세상이 온통 낯설고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이 없어

나도 내가 아닌듯해라

그 아름답던 기억들이 다 꿈이었던가 한밤에 타오르던 그 꿈길이 정녕 꿈이었던가

누군가 말을 해다오 내가 왜 여기서 있는지

화려한 사랑의 빛이 모두 다 어디로 갔는지

멀리 돌아 보아도 내가 살아온 길은 없고

비틀거리는 걸음 앞에 길고 긴 내 그림자 (백창우 작사작곡/임희숙 노래)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이 없어 나도 내가 아닌 듯해라’, ‘멀리 돌아보아도 내가 살아온 길은 없고이 두 구절이 특히 마음을 친다.

천재 화가의 뒤에 있던 또 한 명의 예술가

'바보 산수', 2007년 방영된 MBC 드라마 하얀 거탑의 의사 장준혁은 부원장의 아내가 회장으로 있는 연분홍회의 회원이다. 대학병원 교수 사모님들의 친목 단체 연분홍회는 남편 지위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며 남편의 승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내조하는 여인들이 모여있다. 장준혁의 아내는 부원장의 아내가 그림 수집에 관심이 많다는 고급정보를 남편에게 전달해주고 장준혁은 아내를 통해 그림 한 점을 보낸다. 그 그림이 바로 운보 김기창(1914~2001)바보 산수. 아름다운 뇌물을 받은 사실을 확인한 부원장은 노회한 정치력으로 장준혁을 조련하면서 그의 야망을 자신 앞에 무릎을 꿇린다.

드라마 덕에 일반 대중에서 확실히 각인했지만 이미 유명 화가였던 바보 산수의 작가 김기창은 어린 시절 장티푸스를 앓고 청력을 상실한 개인의 서사와 함께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역동적인 필력으로 수많은 작품을 남기며 천재 화가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유명 화가 운보의 뒤에 잊혀진 여인’, 예술가 박래현(1920~1976)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박래현의 '단장' 1943년
박래현의 '단장' 1943년

 

삼중통역자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2020년 9월 24일부터 2021년 1월 3일까지 열리는 『탄생 100주년 기념: 박래현, 삼중통역자』의 주인공인 박래현은 운보 김기창의 아내다. 이제야 세상이 그 이름을 불러주고 작가로서의 꿈을 지키려고 처절하게 닦아온 그 길을 조명한다.

전시명인 삼중통역자는 박래현 스스로 자신을 일컬어 표현한 명칭이라고 한다. 미국 여행에서 박래현은 여행가이드의 영어를 해석하여 다시 구화와 몸짓으로 김기창에게 설명해 주었는데, 여행에 동행한 수필가 모윤숙이 그 모습에 관심을 보이자 박래현은 자신이 삼중통역자와 같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박래현이 말한 삼중통역자는 영어, 한국어, 구화(구어)를 넘나드는 언어 통역을 의미하지만, ​이번 전시에서의 삼중통역은 회화, 태피스트리, 판화라는 세 가지 매체를 넘나들며 연결 지었던 그의 예술 세계로 의미를 확장하였다(전시 소개 中).

일제 식민지 시절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유학을 했던 박래현은 1943년 『단장』이라는 작품으로 조선미술전람회 총독상을 받을 정도로 전도유망했으나 1947년 김기창과 결혼을 하고 세 아이를 출산하면서 작품 제작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을 과연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지 늘 번민했다. 전시에는 작품 뿐 아니라 박래현의 수필들을 함께 볼 수 있는데 이런 글 속에서 작가로서의 그녀의 눈물겨운 갈등과 고민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이름을 잃지 않기 위한 투쟁을 보다

박래현은 '가정생활 속에서 내 자신의 생활을 얻는다는 것은 말하기 쉽고 실현하기는 어려운 큰 투쟁일 것이다. 가정과 예술의 완전한 양립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일본화로 시작하여 동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넘어 추상화, 태피스트리, 판화에 이르는 수많은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예술가 박래현의 이름을 잃지 않기 위해 얼마나 투쟁을 하며 살아왔을지 절로 느껴진다.

특히 섬유예술이 싹트던 1960년대의 테피스트리와 1970년대 판화 작업들은 당시 한국미술에서도 상당히 선도적인 작업으로 평가된다. 197454세 나이에 열린 귀국판화전은 한국미술계에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나 19761월 간암으로 갑작스럽게 타계하면서 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대중적 관심을 받을 기회를 잃고 만다. 그녀의 삶에 대해 수필가 모윤숙은 이렇게 말했다

확실히 그녀는 과로했다. 아내, 어머니, 예술가의 삼중의 삶은 그의 삼중통역과 마찬가지로 너무 버거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삶에 불만은 없었으리라. 누구보다도 내실을 이룬 삶을 살았기에

이름을 부르다. 그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박래현의 서사를 배제하더라도 나의 미감에는 운보 김기창보다 박래현의 작품이 훨씬 훌륭하고 아름답다. 이런 성취에도 불구하고 천재 화가 김기창의 아내로만 남아 있던 예술가 박래현의 이름을 불러주고 작가로서의 성취에 대한 비평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이번 전시가 울컥하면서도 반갑다.

나는 잠시 일을 멈추고 육아를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가끔 전화를 걸어 이름을 불러준다. 누구를 끌어주거나 밀어줄 뭣도 없는 사람이지만 잊혀진 여인이 되지 말아라하기보다는 그녀들의 이름을 계속 불러주는 사람이고 싶다. mind

고선규 mindworks 대표 임상심리 Ph.D.
임상심리전문가그룹 마인드웍스 대표이자 애도상담센터 ‘메리골드’를 이끌고 있는 임상심리학자이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 애도가 관심 분야이며 자살 사별자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와 상담을 하고 있다. 매달 첫째 주 수요일 저녁, 자살 사별자 리더와 함께 여성 사별자를 위한 자조모임을 운영한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모든 아름다운 것을 탐미하며 그 속에서 심리학적 이야기를 관찰하고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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