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나를 피곤하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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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나를 피곤하게 하는가
  • 2020.10.17 17:27
강박증의 권위자, 권준수교수가 말하는 이 시대의 강박장애, 그리고 정신질환의 의미.
나는 왜 나를 피곤하게 하는가. 권준수 지음. 올림. 16,000원
나는 왜 나를 피곤하게 하는가. 권준수 지음. 올림. 16,000원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최근 '나는 왜 나를 피곤하게 하는가'의 개정판을 발간했다. 

강박증의 권위자인 권준수 교수는 지난 1998년 국내에서 최초로 강박증클리닉을 개설한 이래 유수의 권위있는 학술지에 강박증 관련 논문을 게재하고 수많은 환자를 봐 온 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권준수 교수는 본래 인터뷰어의 은사님으로, (반말-존댓말 패턴으로 이 인터뷰를 기획했던 과거의 나를 탓하며) 이 인터뷰의 양식을 바꾸는 것이 좋지 않겠나 문의드리니, '공과 사를 구분해서 그냥 반말로 해라. 나는 너를 그렇게 나약하게 키우지 않았다!' (실제 이 워딩은 아님..)며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20년 만에 책을 재출간하는 느낌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코로나 시대에 강박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강박증상이 약한 경우에는 그것이 정상적인 현상인지 병적인 증상인지 구별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최근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면서, 과도하게 바이러스 감염에 집착하여 오염에 대한 공포가 정상적으로도 많이 나타납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강박증상이 과연 어떤 증상인지? 병으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정상적인 현상이 극단적으로 심하게 나타나는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강박장애에 대해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는데, 그 중 가장 흔한 궁금증은 '강박도 유전이 되나요?' 하는 것이다. 본인이 강박증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 혹시라도 아이에게 대물림될까 우려하는 경우가 많아보인다.

대부분의 정신질환들에 해당되는 명제라고 생각하지만, 정신질환이 유전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단지 그 정신질환에 걸릴 '소인'이 유전될 가능성이 있을 뿐입니다.

강박증 역시 강박증에 걸릴 소인이 유전될 것이고, 이런 소인이 있는 사람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 증상이 나타나서 병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아이에게 대물림한다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정신증상이라는 것이 유전적 소인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환경적 요인이 영향을 많이 주기 때문입니다.

- 아이들에게 과도한 스트레스 주지 않기
- 여유있는 삶의 태도
- 스트레스가 있을 시 긴장이완을 통한 해소
- 회복력 증강훈련
- 건전한 생활태도, 즉 규칙적 생활
- 운동
등은 정신질환을 예방하는 보호요인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강박장애를 가진 분들이, 아이가 행여 강박적 행동을 보일까 늘 전전긍긍하고 죄책감도 느끼는데, 정말 이 제안은 널리 알려져야 할 일이다. 사실 보도블럭의 선을 밟지 않으려 한다든지, 버스 손잡이를 잡지 못한다든지, 하는 강박증상은 매우 흔해보인다. 이러한 단순 강박증상과 실제 치료를 필요로 하는 강박장애를 일반인들이 구분할 때에 어떤 기준을 가지면 좋을지 팁을 줄 수 있나?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이 어느정도 고통을 느끼느냐입니다. 강박증상 때문에 생활하기가 힘들다면 그 때는 치료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강박증상이 있지만, 어느정도 조절 가능하고 생활하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는다면 본인의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신체이형증도 잠시 다룬다. 해당 질환에 대해 생소한 분들 중 이 내용을 읽어보고 '나인가..?'하는 생각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이런 분들을 위해 간단히 신체이형증에 대해 소개부탁드린다.

신체이형증은 자신의 신체 중 일부가 이상하다고 믿고 있는 질환입니다. 예를 들면 코가 낮지 않은데도 코가 낮다고 믿고, 코를 높이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던지, 턱이 사각형이라 턱을 둥글게 깎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지요. 실제로 그렇다고 믿는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망상증상에 해당하기도 합니다. 또한 반복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기 때문에 강박증과 관련있는 있는 질환으로 여겨집니다.

치료는 대개 항정신병 약물을 사용한다던지, 혹은 반복적인 생각을 감소시키기 위해 세로토닌재흡수차단제를 사용하기도 하고, 심한 불안에는 항불안제가 추가되기도 합니다.

물론 잘못된 인지를 교정해주는 인지치료를 하기도 하고, 심리적 문제가 있을 경우 정신치료 등을 하기도 하나, 안타깝게도 평균적으로는 크게 효과를 보이지 않고 있어 상당히 치료가 어려운 병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니 증상이 나타난다면 가능한 빨리 정신건강전문가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강박 관련 장애 중 머리 뽑기 장애 역시 낯설어하는 분들이 많을 듯 하다. 책에서 소개한 연구에 따르면 대학생 2600여명 중 남자 1.5%, 여자 3.4%가 머리 뽑기 증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면 양육자들은 매우 당혹스러워하는데 이렇게 비교적 흔한 병임을 아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될 듯하다.

머리뽑기장애는 비교적 젊은 사람에게 많이 나타나고 어린아이에게서도 나타납니다. 머리카락을 비비거나 입으로 빨기도 하고, 씹는 경우도 있습니다. 간혹 먹기도 하여 위나 장에 모여 마치 종양으로 오인되기도 하지요. 대개 머리카락을 뽑기전에 긴장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고, 뽑고 나면 안도감, 쾌락, 즐거움 등을 느끼게 되어 반복을 하게 됩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욱 심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히, 어린 사람에게 나타나는 경우는 커면서 좋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주 심한 환자인 경우에도 세로토닌재흡수차단제 사용으로 급격히 좋아지는 경우도 있으니 걱정말고 우선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사적인 자리에서 종종 이야기가 나왔지만 내 경우 박사 학위 취득 이후 수년 까지도 imposter symdrome(사기꾼 증후군)으로 괴로워했다.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충분한 공부와 경험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제대로 아는/ 할 줄 아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자신의 본 모습을 사람들이 눈치채고 자신을 사기꾼이라 여길 거라 전전긍긍한다. 대학에 있으며, 그리고 대학 병원에 있으며, 실제로 자신의 지식에 대한 완벽을 기하려 애쓰느라 결국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을 것 같다.

많이 보았지요. 사기꾼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는 순수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충분히 능력이 있는데도 자신의 능력을 비하하고, 낮게 평가하는 경우를 보았는데... 이런 경우는 주위의 기대가 크기 때문에 그 기대에 자신을 맞추지 못해서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너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충분히 능력이 있는데도 그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발휘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특히 겸손이 미덕인 한국 문화의 특성상 사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실제 사기꾼 증후군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꽤 많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자존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학생들에게도 늘 지나친 겸손은 오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ㄷㄷㄷ 기억난다. 이후 그 이야기를 금과옥조로 여기고 웬만한 겸손은 안 부리려고 한다. 나의 잘남을 계속해서 드러내야지... 아무튼, 이번엔 이 대목을 읽어보자.
"대개 의사들은 한 번씩 건강염려증에 걸리게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의과대학 고학년이 되어 어떤 질병에 대해 배우기 시작하면 마치 자신이 그 병에 걸린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또 다른 병을 배우게 되면 그 병 역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해지는 것이다."

의사들의 건강염려증에 대해 기술한 부분을 읽으며 COVID-19에 감염된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하는 분들이 떠올랐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강박적으로 손소독과 마스크를 챙기는 모습들도 보인다. 30여년간 강박장애 환자를 봐 왔던 임상의로서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30년 이상 환자를 보아 왔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환자에 따라 너무나 현상도 다르고 경과도 다르고 치료반응도 다르기 때문이지요.

세로토닌재흡수차단제가 나올때는 강박증이 드디어 치료가 된다는 희망의 시대였다면, 약물저항성 환자를 많이 보는 현재의 상황은 어떤 면에서는 치료자로서 많이 절망적인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과연 강박증이라는 병이 의학적 질병인지 아니면 생명체가 살아 남기 위해 하는 처절한 몸무림인지.. 여러 생각들이 끊임없이 머리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이것도 나의 고질적인 강박증상일지도요?)

한편으로는 병에 대한 걱정이 없이 우리가 과연 건강하게 잘 살아 갈수 있을 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건강염려증도 긍정적인 면이 분명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지 않기 위해 좀 더 예민하게 조심을 하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초판 서문, 마지막 문장들에 대한 생각을 묻고 싶다. "아무쪼록 이 책을 통해 강박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과 그들의 가족이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아울러 한국인은 모두 강박증 환자이며 '제정신으로 살기 힘든 사회'라는 필자의 주장은 가까운 미래에 '과거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소원이 조금이나마 이루어졌다고 보는지 혹은 그때의 소원에 대해 유보, 혹은 비관적인지 저자의 소회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과거보다 좀 더 비관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Aㅏ...)

강박증에 좋은 환경은 좀 더 여유롭고 천천히 시간이 흐르는 사회적 환경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20년 전 보다 더 조급해지고 극단적인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가치관은 쉽게 무너지고 때론 진영논리에만 매달리는 사회적 분위기 역시 많은 사람들이 안정감 있게 자신의 삶을 살기에 위협적인 요인들입니다.

그러니 아마도 제 정신으로 지금의 한국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이렇게 갑자기요..?) 강박증상에는 치명적 환경이다. 그러니 대충 아무렇게나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것이 오히려 병에 도움이 될수도 있을 것입니다.

멋진 마무리 감사합니다. 바꾸셔도 된다셨지만 그대로 내보냅니다. cooool.. mind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임상심리전문가. 한국임상심리학회 홍보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대한뇌기능매핑학회 대의원 및 학술위원. 정신병리 및 심리치료의 효과를 임상과학 및 뇌신경학적 수준에서 규명하고자 연구를 지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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