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쓴 우울증_우울한데 아무도 모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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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쓴 우울증_우울한데 아무도 모른다면
  • 2020.11.05 09:00
우리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연상할 때, 평소에 잘 기능하며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는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울증은 꼭 외현적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주변으로부터 잘 숨겨서 아무도 눈치 채지는 못하지만 마음의 지하실 깊은 곳에서는 오랫동안 곰팡이처럼 피어난 마음의 상처들이 방치해둔 채, 참고있는 것일 수 있다.

한 단아한 여인이 상담을 받으러 왔다. 여인은 홀어머니 밑에서 동생과 함께 컸으며, 어머니는 틈만 나면 애 둘을 혼자 키우기 힘들다고 넋두리를 했다. 어린 시절 슬픈 일이 있어 한 번 어머니에게 이야기 했다가, 너가 필요한 건 다 가졌는데 뭐가 슬프냐며 크게 혼난 뒤부터는 슬퍼도 혼자서 이불 속에서 울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엄마의 눈치를 살피느라 참는 습관이 생겼다. 처음 만난 그녀는 잘 손질된 머리와 단정한 옷차림, 그리고 적당히 농담도 할 줄 아는 지적인 인상을 풍겼다. 외모로 보나, 말투로 보나 우울한지 알기 어려웠다. 열심히 노력하여 세상이 말하는 성공적인 요소를 갖고 있었다. 분야에서 꽤 인정받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남편도 성공한 사업가였고, 자녀도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었으며 부유한 동네에 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우울함을 호소했고, 나는 화려한 그녀의 인생의 이면에 느껴지는 공허하고 불안한 감정에 대해 인정을 해주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유리처럼 깨지며 많이 울었다.

숨겨진 우울함

우리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연상할 때, 주체할 수 없는 무기력감으로 인해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울고, 세수도 안 한 얼굴과 머리를 잘 감지 않아 기름진 머리로 술병을 부여잡고 있는, 삶의 통제력을 전부 잃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울증은 꼭 외현적으로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주변으로부터는 잘 숨겨서 아무도 눈치채지는 못하지만 내면에서는 기분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연예인들의 안타까운 자살 소식을 접할 때, 극단적 선택 직전까지도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하여, 죽음에 대한 소식에 주변 사람들이 충격에 빠지는 일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20171218일 극단적 선택을 한 샤이니의 故 종현도 지전 129일과 10일 솔로 콘서트를 통해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며, JTBC 예능 프로그램 촬영도 했다고 보도되었다. 걸그룹 f(x)故 설리도 사망 전날까지 광고촬영을 하면서 일상 생활을 했다고 한다.

감정을 통제하는 규칙들

우울한 사람들은 내면에서는 전쟁을 치루고 있어도 오래 단련이 됐기 때문에 타인이 우울한 것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 있다. 대부분 근원지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개인이 살면서 감정 표현의 규칙에 대해 어떻게 단련되어 왔는지가 단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다른 사람 앞에서 어떻게 감정표현을 해야하는지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학습한다. 앞서 소개한 여인도, 성장 과정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면 안된다고 배웠으며, 오히려 어머니의 눈치를 보았다. 가족구성원과 주변인물을 통해 우리는 감정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들, 그리고 감정 표현의 방법들, 감정과 관련해 지켜야 하는 규칙들을 습득한다. 일종의 사회성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이런 규칙들은, 예컨대 처음 소개팅하여 만난 사람 앞에서 가족사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하며 울지 않기와 같은 것 들이 있다.  

감정을 표현하는 규칙들은 여러 요소가 있다.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평가하여이러한 감정을 과연 내가 느낄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평가, 감정을 느낀 원인에 대한 분석, 감정을 통제하는 것에 대한 믿음, 감정을 온전히 느꼈을 때 감정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혹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위험한지에 대한 기대와 같은 것이 있다. 앞서 소개한 여인은, 본인이 느낀 경험에서 기인된 본인의 고유한 감정들을 가족내에서 부정당했다. 슬퍼도 넌 슬프지 않아! 너가 슬플 일이 뭐가 있어!”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여자가 질질 짜면 보기 싫어와 같은 말로 인해 감정을 온전히 느끼는 것은 어린 나이부터 금기시 됐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행동을 비타당화invalidation”이라고도 한다. 오랫동안 내 감정을 타인이 (설령 그것이 같은 가족구성원일지라도) 어떻게 느끼라고 지정을 해주다보면, 나만의 감정들은 마치 백화점 쇼윈도에서 구경하듯, 온전히 느끼기 어려워진다.

억압된 감정들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몸에서 먼저 반응을 한다. 화가 나면 머리가 뜨거워지며 머리가 하얘지고, 불안하면 심장이 두근거리며 다리가 풀린다. 그렇지만 몸에서 반응을 한 이후에는 보통 우리는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해 명명을 하고, 그 감정을 과연 느껴도 되는지에 대한 평가를 하게 된다. 우울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감정을 나쁜 감정좋은 감정으로 정확하게 구분하여, 불안, 우울, 분노, 부러움 등과 같은 나쁜 감정들은 표현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스로 최면이라도 걸듯, 이런 나쁜감정을 느끼면, 억지로라도 더 긍정적인 척하려고 애쓴다.

오랫동안 참는 것이 단련된 사람들, 속은 썩어가는데도 가면으로 잘 포장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을 느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마음의 지하실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곰팡이처럼 피어난 마음의 상처들이 한 번 건드려지면 어떤 방식으로 분출되어 감당하지 못한 상태가 될 것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렇기 때문에 역류성 식도염 환자처럼 감정들이 스물스물 올라올 기미가 보이면, 더 꾹꾹 눌러 놓으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힘든 감정들, 그리고 대면하지 못한 독한 기억들은 퀴퀴한 지하실 안에 잘 잠궈 놓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언젠간,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기 마련이다. 우울한지 몰랐던 사람이 갑자기 수도꼭지처럼 끝없이 눈물이 흐른다고 호소하는 분들, 두통이나 소화불량처럼 몸이 아프지만 정확한 원인은 찾기 어려운 분들, 갑자기 이유없이 하루 아침에 침대에서 나오는 것조차 힘들어 끝없는 무기력함으로 누워만 있는 분들도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이런 분들은 주변으로부터 잘 숨기기 때문에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아 치료를 받으러 올 생각도 하지 않고, 주변에서도 그 사람들이 경험하는 내적 문제들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치료를 권하지 않을 수 있고, 마음의 병이 깊어질 수 있다.

감정을 표현하면서 르네상스는 시작되었다. 르네상스 미술의 기원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탈리아 화가 지오토의 프레스코화다. 예수의 죽음에 천사들마져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감정을 표현하면서 르네상스는 시작되었다. 르네상스 미술의 기원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탈리아 화가 지오토의 프레스코화다. 예수의 죽음에 천사들마져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Giotto di Bondone (–1337), Lamentation (The Mourning of Christ), 1304-1306, fresco, 200 * 185 cm, Scrovegni Chapel,Padua, Italy.  

여러가지 맛을 느낄 수 있듯

감정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한 관점을 가지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우울한 감정을 느껴, 모든 다른 감정이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벽한 기쁨” “완벽한 행복과 같이 이상적인 감정 상태를 추구하고 있다면, 신기루처럼 영원히 쫓아야 할 수도 있다. 보통 사람들은 사람이나 특정 사건에 대해 다양한 감정을 갖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에도 여러 가지 맛을 음미하듯이, 특정 대상에 대한 감정도 복잡할 수 있다. 우울을 느낀다고 해서, 느껴지는 다른 감정들이 무효화되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런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것을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을 한다: “거기에는 기대가 있고, 흥분이 있고, 포기가 있고, 망설임이 있고, 혼란이 있고, 두려움이 있었다. 마음이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오그라들기도 하고, 모든 것이 잘 될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

인생에 대해 한가지 분명하고 보편적인 것은, 기쁨과 행복만 있는 인생이란 없다는 것이다. 피아노 건반이 여러 개의 독특한 음으로 구성되듯이, 우리 인생에도 좋은 것부터 나쁜 것까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종류와 옥타브가 다양하다. 좋은 감정만 취할 수 없고, 어떤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서도 단순한 한가지 감정만 갖는 것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오늘도 가면을 쓰고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면, 나의 감정을 관객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만드는 연습, 불편하겠지만 조금이라도 내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mind

서수연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성신여대 심리학과 부교수 및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중. 대외적으로는 정신장애의 원인을 과학을 기반으로 연구하고 근거기반치료를 개발하는 임상심리학 교수이지만 실제로 연구나 생활에서 섭식, 성과 수면처럼 형이하학적 주제에 주로 관심이 많음. 현재는 20년넘게 쌓아온 심리학 지식을 활용하여 수면 문제를 해결하는 국내 유일의 수면심리학자. "사례를 통해 배우는 불면증을 위한 인지행동치료" 저자이며, 행동과학과 심리치료 연구실 BEST랩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여성 임상심리학자 리더를 배출하는 것이 꿈인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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