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불안의 중심지, 변연계 진정시키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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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불안의 중심지, 변연계 진정시키는 방법
  • 2020.11.14 09:00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집중할 것. 그리하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으로 인한 불안, 걱정은 모두 허상으로 끝날 것임’ 그리고 하나 더, ‘나에게 스트레스가 찾아오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는 신경 쏟지 말 것.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만 찾아서 할 것.’

기분 저조한 날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피해 가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스트레스로 인해 기분이 다운되는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생각해보니 나의 경우는 학교에 자리잡기 전과 후가 조금 달라진 듯 하다. 그 전에는 한껏 기대했던 무언가가 좌절하거나 실패하는 등의 일로 기분이 다운되었다면, 학교에 재직한 이후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나 새로운 일들이 내 앞에 쏟아지는 날이 그랬다. 밤새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학교로 향하는 월요일 아침이라든가 뭐 그런 날.

그런 날엔 침대에 누워 있고만 싶다든가, 하던 일을 멈추고 훌쩍 떠나고 싶다든가 하는 욕구가 긴급히 발동한다. 이젠 이런 욕구가 반나절도 가지 않고 내 맘에 머물다 사라지는 것 같아 섭섭하기까지 할 때도 있는데 그러고보니 이건 나이 탓인가도 싶다

아무튼 일주일 중 가장 기분이 저조한 날을 꼽으라면 나도 예외는 없이, <일요일 밤부터 월요일 아침>, 더 정확히 말해 월요일 아침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직전까지다. 특히 데드라인이 몇개 잡혀 있거나 사람 만날 일이 많은 회의가 주르륵 잡혀 있는 주가 특히 그러했다. 사실 내 기분 회복에 도움이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런 날엔 학교에 도착해 가볍게 처리할 수 있는 리스트부터 하나하나 지워가며 빠르게 일을 해치우는 것이 필요하다. 일을 하나씩 해치울 때마다 마음의 부담이 하나씩 멀리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그런 날엔 일찍 퇴근해 노을도 바라보며 저녁 식사 전 괜히 맥주 한 캔을 들이킨다. 그러면 일요일부터 지속된 찌뿌둥한 기분과 몸이 완벽히 회복된다. 그러니까, 누군가 비용과 시간면에서 가장 경제적인 방식으로 나의 기분을 행복하게 만드는 두가지만 꼽으라면, 바로 저녁 준비를 하며 마시는 맥주 한 캔 그리고 해질녘의 노을을 바라보는 일 일거라고 대답할 거다. 그런데 마음이 불안해지고 불편해지는 날에는 이런 나의 방법들도 힘을 잃는다.

안개비 자욱한  템즈 강의 다리 위로  증기기관차가 달려오고 있다. 산업화 시대의 불안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 가운데 하나다. M. W. Turner  (1775–1851), Rain, Steam and Speed – The Great Western Railway, 1844,	oil on canvas, 91 * 121.8 cm, National Gallery, London.
안개비 자욱한 템즈 강의 다리 위로 증기기관차 한 대가 달려오고 있다. 산업화 시대의 불안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M. W. Turner (1775–1851), Rain, Steam and Speed – The Great Western Railway, 1844, oil on canvas, 91 * 121.8 cm, National Gallery, London.

우리의 상상이 공포를 만든다

 

오늘 아침, 나는 ITX에 올라타서 편치 못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원래같으면 먼저 노트북을 열고 '오늘 해야 할 일 목록'을 줄이려고 실제로 일을 했을텐데 그 대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한 주간의 할 일 목록들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월요일 아침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찾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뭔가 편치 못한 감정이 느껴질 때 언어보다는 이미지 심상 작업을 통해 스캔을 하면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훨씬 쉽다. 반대로 나와 관련된 일에 대한 걱정이나 반추(머리 속으로 어느 한 사건이나 장면을 계속 곱씹는 것)는 언어 형태로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불편한 정서에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아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1, 2.
셜록홈즈Sherlock Holmes로 유명한 작가 아서 코난 코일Arthur Conan Doyle, 1859~1930은 그의 책 '주홍색 연구A Study in Scarlet' 한 대목에 이렇게 적었다.

 

상상이 없는 곳에는 공포도 없다Where there is no imagination, there is no horror.

 

아직 경험하지 않은 일들에 우리가 불안, 공포, 긴장감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어떤 상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귀신이나 유령을 우리는 본적이 없다. 그런데도 이 단어를 듣는 순간 우리의 자율신경계는 이미 반응한다. 듣는 순간 어떤 이미지를 그리기 때문이다.
귀신을 개념적으로 정의하고 말로 설명하면 그런 공포반응이 상상하는 만큼 쉽지 오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 경험자들이 언어 형태인 걱정으로 불편한 감정을 이야기하는 이유도 바로 불안하고 두려운 부정적 정서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편한 감정의 근원 찾기

 

눈을 감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스케줄과 연관된 감정을 스캔하다 어느 한 지점에 걸리는 걸 감지했다.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학교의 윤리위원회 일 때문이었다. 그 위원회가 공식 평가 인증을 받느냐를 두고 한학기 내내 준비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던 터였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평가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생각들이 내 불편한 감정의 실체임을 알게 되었다. 그게 확인되고 보니 한 주 전체가 모두 문제인 것이 아니라, 다만 한 가지 일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ITX에 올라탈 때의 상태보다는 많은 것들이 명료해져, 기분의 수위도 한 단계 상승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평가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생각에서만큼은 벗어나기 어려웠고, 통과하지 못할 경우 벌어질 일들을 이미 마음속으로 경험하며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있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일들을 검토해야 하는 일이 실제로도 많았고, 사적인 일이 아닌 공적인 일이라 책임감의 무게가 내 마음을 내리 누르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결국 '평가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통제 불가능에 대한 나의 불안을 유발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 

 

불편한 감정의 실체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 날 할 일을 미루고 내가 눈을 감은 이유, 목표였기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뭔가를 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일들을 할 때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가 수반되는 과정을 거친다. 내 상태가 딱 그러했다. 그러니 그 불편함은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그냥 견뎌야 할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일이 익숙해지면 자연스레 사라질 불편함이다. 생각해보니 어느 정도의 책임감도 필요한 것이었고, 그 책임감 때문에 이미 많은 작업을 해 놓은 터였다. 거기다 그 날 오후 책임으로부터 가벼워질 수 있는 기회 역시 있었다. 다른 교수님과 이런 저런 업무 처리 이야기를 하다 전화기로 들려오는 내용이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이 교수님, 완벽한 상태로 통과하는 학교는 하나도 없을 거예요. 수정 사항이 오면 그냥 수정하죠 뭐. 우리 학교 정도면 준비 잘 한 거 같은데요”.

기분은 더 좋은 쪽으로 업데이트가 되었다.

그래 수정하라면 수정하기만 하면 된다. 뭐 때문에 나는 미리 힘들어했던가. 지금 당장 할 수도 없는 일을 두고

연륜이 묻어난 그 분의 목소리 톤과 지지 그리고 수정하라면 수정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 분의 말이 나를 한순간 가볍게 만들었다.

그 덕에 나는 오늘 제시간에 퇴근해 석양도 볼 수 있었다. 저녁 준비를 하며 시원한 맥주 한 캔도 꺼내 마실 수 있었다. 기분 수위가 한단계 더 상승. 옆에 읽다 만 우울할 땐 뇌과학이 놓여져 있다3. 책을 펼치니 노란 형광 펜으로 칠해 놓은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집중할 것. 그리하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으로 인한 불안, 걱정은 모두 허상으로 끝날 것임

그리고 하나 더,

 

나에게 스트레스가 찾아오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는 신경 쏟지 말 것.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만 찾아서 할 것.’

 

이게 나의 요동치는 내 불안한 감정의 중심지, 뇌의 변연계4를 진정시키는 방법이란다. mind

 

   <참고 문헌>

  1. Conway, M. A. (2001). Sensory–perceptual episodic memory and its context: Autobiographical memory.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Series B: Biological Sciences356(1413), 1375-1384.
  2. Holmes, E. A., & Mathews, A. (2005). Mental imagery and emotion: A special relationship?. Emotion, 5(4), 489.
  3. 우울할 땐 뇌 과학(2018), 엘릭스 코브 지음, 정지인 옮김, 심심.
  4. 변연계: 주로 우리의 감정을 담당하는 뇌 영역으로 불안과 공포 등의 감정과 관련된 편도체를 비롯해,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시상하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종선 강원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임상심리학자로 강원대 심리학과에 재직중이다. 영국 King’s College London, Institute of Psychiatry, Psychology & Neuroscience에서 컴퓨터 기반 인지편향수정 프로그램 효과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우울, 불안 및 외상 관련 실험 기반 심리치료 프로그램의 효과 검증 연구를 진행중이다. 한국임상심리학회 편집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총무이사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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