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은 정말 수박만 하게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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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공은 정말 수박만 하게 보였을까?
  • 2019.07.16 12:00
야구선수가 잘 친 공이 수박만 하게 보이는 것일까요, 아님 수박만 하게 보여서 잘 친 것일까? 지각심리학은 둘 모두라고 답한다. 이러한 통찰은 다시 스포츠심리학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컨디션이 좋았습니다. 야구공이 수박만 하게 보였어요!!

야구 경기에서 홈런을 친 (겸손하지 않은) 타자에게 가끔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어떤 선수는 날아오는 공의 실밥도 보였다고 말한다. 이 말은 진실일까? 그들에게 날아오는 야구공은 정말 수박만 하게 보였을까?

언뜻 자신감이 충만한 선수의 허세처럼 느껴지지만, 이와 같은 표현이 스포츠에서 두루 쓰인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미국의 전설적인 타자인 뉴욕 양키즈의 Mickey Mantle은 약 170미터 정도 비거리의 홈런을 친 이후에 공이 자몽처럼 크게 보였다고 말했다. 반면 세인트 카디널스의 강타자 Joe Madwick은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 고생할 때, 꼭 아스피린 알약을 치는 것 같았다는 표현을 했다고 한다. 공이 커 보였다는 테니스 선수, 홀컵이 커 보였다는 골프 선수, 링이 어마 어마하게 넓어 보였다는 농구 선수들을 보면, 이와 같은 지각 경험이 실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잘 친 공은 커 보인다

그래서 WittProfitt(2005)이라는 연구자들이 실제 이 주제에 대해서 연구를 했다. 소프트볼 선수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크기의 원을 제시한 다음, 선수들이 평상시 항상 접하는 소프트볼의 크기와 동일한 크기를 가진 원을 선택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 때 선수들이 선택한 원의 크기, 즉 평상시에 선수들이 경험하고 기억했던 소프트볼의 크기와 그 선수들이 그 시즌에 보여주었던 스탯, 즉 타율과 같이 현재의 타격 능력 수준을 보여줄 수 있는 통계치와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였는데, 실제 타격에 관한 지표가 좋을수록 더 큰 크기의 원을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정말 타격을 잘 하는 선수에게는 실제보다 공이 커 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결과를 일방향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공이 크게 보여서 타격을 잘 하게 되는 건지, 타격을 잘 하는 선수는 마음에 자신감이 넘쳐서 공이 크게 보였다고 기억하는 건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Witt의 연구진(2012)들은 골프를 이용하여  착시와 스포츠 수행의 관계를 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실험을 수행했다.

목표가 커 보이면 잘 치게 된다

골프는 또 다른 착시의 스포츠라고 불린다. 골프의 경우, 경기가 진행되는 필드의 주변 지형 정보로 인해 발생하는 착시를 이용하여 경기의 난이도를 조절하는 경우가 많다. 골프 코스에서 레이아웃의 영향으로 오르막인데 내리막으로 보이는 마운틴 브레이크 착시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골프는 홀컵에 공을 최종적으로 넣어야 완료되는 스포츠이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퍼팅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를 진행했다. 이전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퍼팅을 잘하는 선수들에게 그 홀컵은 매우 크게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어떠한 방법을 써서 홀컵을 크게 보이게 한다면 퍼팅을 잘 하게 될까? 연구자들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에빙하우스 착시라고 하는 매우 유명한 착시를 사용했다. 에빙하우스 착시는 주변의 정보 때문에 표적 자극의 크기가 영향을 받음을 보여주는 착시이다.  그림 1에서처럼 가운데에 위치한 원은 서로 동일한 크기지만, 주변에 더 작은 원이 위치하면 더 커 보이고, 반대로 주변에 더 큰 원이 위치하면 더 작아 보이는 착시를 말한다.

그림 1. a) 에빙하우스 착시. b) Witt 등(2012)의 연구 자극
그림 1. a) 에빙하우스 착시. b) Witt 등(2012)의 연구 자극

연구자들은 홀컵 주변을 에빙하우스 착시 자극처럼 만들었다. 빔 프로젝터를 사용하여 홀컵 주변에 홀컵보다 크거나 작은 원들을 나타나게 하였다. 에빙하우스 착시에서처럼 주변에 큰 원이 있을 때에 참가자들은 홀컵의 크기를 더 작게 지각하였고, 주변에 작은 원이 있을 때에는 홀컵의 크기를 더 크게 지각하였다. 그렇다면 각각의 경우에 퍼팅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주변에 제시된 원이 커서 홀컵이 작게 지각된 경우에는 퍼팅 결과가 좋지 않았다.  반대로 주변에 제시된 원이 작아서 홀컵이 크게 지각된 경우에는 퍼팅을 잘 하게 되었다. 이 결과는 착시로 인해 왜곡되어 지각된 홀컵의 크기가 결국 스포츠 수행의 향상을 이끌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유사한 연구를 필자의 연구실에서도 수행한 적이 있다. 이 연구에서는 골프공의 패턴을 이용하여 골프공의 지각된 크기를 조작하였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골프공 중에서 농구공, 축구공, 야구공과 같이 보이도록 그림이 새겨져 있는 골프공이 있다. 이 골프공의 제조사는 골프공보다 큰 사이즈를 가진 공의 무늬를 골프공에 그려 넣으면, 실제로 그 공이 더 커 보이며, 결국에는 골프도 더 잘 칠 수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 주장이 옳은지를 심리학 실험을 통해서 확인해 보았다. 참가자들에게 농구공, 축구공, 야구공의 무늬가 있는 골프공의 지각된 크기를 보고하라고 하였다. 실제로 일종의 착시가 발생해 무늬가 있는 공들이 더 크게 지각된다고 보고 하였다. 실제 이 공 크기에 대한 착시가 골프샷, 즉 골프채로 골프공을 때리는 행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확인하기 위해, 참가자들을 스크린 골프장으로 데리고 가 각각의 무늬를 가진 골프공을 직접 타격하도록 하였다. 그러자 아주 흥미로운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즉 비거리 자체에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정확도에서는 차이가 났다. 크게 지각되었던 공을 타격하였을 때 목표 지점과 더 유사한 곳으로 공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림 2. 필자가 수행했던 연구에서 사용된 골프공 이미지
그림 2. 필자가 수행했던 연구에 사용된 골프공 이미지

지각의 문제, 스포츠 심리학의 시작

실제 물리적인 크기의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착시로 인해 스포츠를 더 잘 할 수 있었을까? 많은 연구자들은 착시로 인해 공이 더 크게 보이면, 마음에 자신감과 안정감이 생기고 이 때문에 더 좋은 수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결국 마음이 개입된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이유로 스포츠와 심리학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스포츠 심리학이라는 분야가 있을 정도로 심리학이 스포츠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스포츠 심리학  분야와 우리가 감각 기관을 통하여 외부의 정보를 얻는 지각 심리학perception을 연결 짓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따라서 최근 착시와 스포츠를 연결하는 위의 연구들은 또 다른 형태의 스포츠 심리학을 태동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mind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인지심리 Ph.D.
연세대 심리학과에서 학, 석사를 마치고, Yale University에서 심리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이후 Boston University와 Brown University에서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거쳐 현재 한림대 심리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 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만화, 아이돌, 스포츠를 지각 심리학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평생 덕질을 하듯 연구하며 사는 것을 소망하는 심리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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