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형 성격장애: ‘세상에 이런 일이’ 출연자들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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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형 성격장애: ‘세상에 이런 일이’ 출연자들의 변
  • 2020.11.21 15:09
가쉽거리여서도, 배척의 대상이어서도 안 될 이들. 어쩌면 우리 모두와 같아서.

오랫동안 끌었던 논문을 마무리했다. 박사과정 동안 모았던 조현형 성격장애schizotypal personality disorder에 대한 MRI 연구. 미국 내 연구로 평생 유병률 (평생 이 병을 가지게 될 확률)4%에 달하기에 적은 수의 인구는 아니지만서도, 그 임상 특성 때문에 데이터가 좀처럼 모이지 않기로 유명한 주제였다. 그리고 이 주제를 덥석 선택했던 형벌로 당시 1년 반 동안 겪은 극심했던 마음고생은 대학원생 내담자와 공감을 형성할 때 제가 아주 자알 쓰고있습니다…. 아무튼 탈고 후 본격적으로 맥주도 한 캔 따고 티브이를 틀었는데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의 재방송이 흘러 나온다. 공교롭다. 황급히 넷플릭스로 채널을 전환했다.


미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에서 출간하여 정신질환 진단 기준으로 널리 사용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 5판 중 조현형 성격장애의 진단 준거에 따르면, 조현형 성격장애는 다음 목록 중 다섯 개 이상의 특징을 가지는 경우 진단된다. [1]

- 아무 상관 없는 주변의 상황이 자신과 관련 있다거나 타인의 대화가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관계 사고를 보이는 것 (이 경우 다행히 이런 생각에 완전히 몰두하지는 않고, 스스로 혹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아닌가?’ 하며 사고 수정이 가능한 정도임)

- 문화적 배경을 아무리 고려한다 쳐도 그 정도를 벗어난 독특한 미신적 혹은 마술적 생각, 텔레파시나 천리안, 염력 등에 대해 집착하는 것

- 오오라(아우라, aura)를 보거나 누군가의 영혼을 느끼는 등 유별난 지각 경험 혹은 착각을 하는 것

- 잘 알아듣기 어려운 생각이나 이야기를 하는 것 (이 경우 대화가 길어질 때면 더욱 잘 관찰되는데, 말수는 상당히 많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아무리 귀 기울여 들으려 해도 뭔가 실체가 없거나 에둘러 말하거나 은유적으로 말함)

- 타인의 의도를 의심하거나 곡해하고 분개하는 등의 편집증적인 생각을 품는 것

- 맥락에 맞지 않는 감정 표현을 하거나 혹은 무감정 상태로 보이는 것

- 다른 사람들 눈에도 단번에 관찰되는 특이한 행동이나 특이한 외양을 보이는 것 (TPO에 맞지 않는 괴상한 옷차림, 기이한 헤어스타일, 옛날 사람처럼 행동하는 모습 등)

- 가족 외에는 가까운 친구가 없고,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람이 없다고 보고하는 것

- 누군가와 친해져도 편집증적 공포때문에 사회적 불안이 줄어들지 않는 것

 

머릿속에 이런 사람을 떠올려보면, 그리고 그가 하필이면 호의적이지 않은 환경에 오래 놓여있다면, 그 마음이 어떨지 짐작이 가리라.

그 사람은 두렵고 슬프다.

 

이 데이터를 모을 당시에 만나보았던 분들은, 오오라를 보거나 미래를 본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그게 웃기지 않았다. 연구에 참여하게 된 목적 역시 단지 연구 사례비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 조금 더 알기 위한 순수한 호기심으로 낯선 곳을 찾아 온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이미 너무도 오랫동안 진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었고, 마침 나는 좋은 오오라를 내뿜는 사람으로 보였던 듯 하다. ‘연구자님은 뱀 모양의 악한 오오라가 없네요혹은 연구자님 오오라는 밝은 빛이네요라며 멋쩍게 웃는 이들은 우리가 앉아있는 공간이 미어지도록 이야기를 채워 올렸다. 그들은 매우 조심스러웠고, 말을 아꼈으나, 내게 도움이 될 만한, 혹은 내가 듣기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해주려 했다.

 

나의 인상이나 미래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한참 들은 후는, 내 차례였다. 정해져 있는 구조화된 면담을 매번 진행했고 그때마다 듣게 되는 개인의 역사는 참 다양했다. 복잡한 증상의 구조 때문에 어느 하나 닮은 구석이 없었다. 그러나 불행감, 그 감정만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실제로 직업생활을 하는 분도, 다행히 관심사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왕성한 활동을 하는 분도, 자꾸만 내비치던 감정은 불행감이었다. 증상 때문에, 그리고 그 증상이 또래의 눈에 기이하게 비치면서, 이들은 다수가 공유하는 세상에서 배제되기 일쑤였고 딱히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그 방법을 찾지 못해 다만 생각의 미로 안에서 당혹스러운 방황을 거듭했다.

가족내에서조차, 드라마 캐릭터로 모에화된 4차원이 아닌, 정말 그야말로 4차원이라는 평을 듣는다. 어린 시절부터 이미 조현형 성격 특성이 두드러졌다면 자폐스펙트럼장애로 곧잘 오인될 정도로 타인과 좀처럼 공유할 수 없는 특유의 세상을 구축한다.

 

그러나 자폐스펙트럼장애와 달리, 이들은 염력이나 오오라와 같은 자신의 관심사를 타인과 이야기 나누려는 동기도 크기에 그때부터 이들의 세계는 쉽게 노출되고 쉽게 조롱당한다. 운이 좋으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고 말 수 있겠지만, 운이 나쁘면 심한 괴롭힘과 따돌림의 피해자가 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성격장애라고 해서 우울이 없겠냐마는- DSM에 함께 수록된 다른 아홉 가지의 성격장애와 달리 조현형 성격장애의 경우 우울 장애와의 높은 공병comorbidity률이 기록되어 있다.[2] 자신의 이야기를 노출하면 할수록 주위의 시선은 더욱 칼처럼 꽂히고, 그 편집증적 공포는 점점 몸집을 부풀린다.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 알 파치노의 연기와 대사들은 그 이후로 무수한 영화에서 오마주되었다. 조현형 성격 특성을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극중 주인공의 모습도 역시 두고두고 아프다. 늘 영화사 걸작 5위 안에 드는 영화이지만 멘탈이 좋을 대, 대낮에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 알 파치노의 연기와 대사들은 그 이후로 무수한 영화에서 오마주되었다. 조현형 성격 특성을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극중 주인공의 모습도 역시 두고두고 아프다. 늘 영화사 걸작 5위 안에 드는 영화이지만 멘탈이 좋을 대, 대낮에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사실 이 데이터를 모을 당시의 고통감은 나의 학위 논문과 관련한 현실적인 공포감을 넘어선 것이었다. 더 정확히는 연구참여자들의 슬픔과 나의 개인력 따위가 뒤섞인 매우 복합적인 것이었다. 나 역시 중학교때부터 퇴마록이라는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는 소설에 몰두해 있었는데, 조앤 K. 롤링이 이런 하위 문화를 메이저 장르로 올리기 전까지 초능력이나 염력을 다루는 소설을 모으고 읽는 14세 학생은 극소수였다. 그 극소수 안에 나와, 내 쌍둥이가 들어있었고.

그 책을 읽고 있을 때 같은 반 친구가 했던 이야기를 아직 기억한다. ‘나는 저런 책 읽는 애들 정말 싫어.’ [3]

 

그러니 이들을 마주할 때면 나는 나를 보는 듯했고, 단지 연구 실험을 진행하면 될 일에 금세 감정을 쏟아 붓고 소진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세상에 이런 일이를 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누구나 이해 받지 못한다는 느낌으로 잠 못 드는 경험을 하지만, 이들의 외양과 행동과 사고의 독특성은 이들을 가십거리로 만들고 정상성normality의 심판대에 오르게 하는 승강대가 된다.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제작진의 의도와 달리 결국 누군가는 이들을 단순히 우스꽝스럽다는 듯 가십으로 소비했다. 혹은 일반인도 자연스레 겪을 수 있는 매우 사적인 경험과 고통감에 지나친 관심이 쏟아지는 것도, 보기 힘들었다. 이것이 내게는 공분公憤의 경험은 아니었다. 오히려 매우 개인적인 고통감이었다.

 

그래서 혹여 선생님들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에는 이 친구들의 진단 준거와 사례에 대한 설명을 꼭 포함한, ‘또래 관계 취약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서투른 방식으로 자신의 관심사를 나누려 하지만 압도적인 공포감이나 의심에 사로잡혀 어색하고 경직된 대처를 하는 친구들. 다른 친구들이 왜 자신의 이야기를 처음에는 들어주는 듯 하다가도 한순간에 물러서거나 등을 돌리는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친구들. 이들에게는 대인관계 기술을 천천히 다시 알려주는 편이 낫다.

 

(1) 어떤 관심사든, 그것을 모든 친구들과 공유할 필요는 없고 그에 관심있는 친구들을 따로 찾아 나서는 편이 낫다는 것.

(2) 다른 사람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을 수도 있고, 그 미신적 사고를 따라야만 할 것 같을 수도 있고, 그런 옷을 입어야만 자신의 생각이나 믿음을 드러낼 수 있을 것만 같지만, 사실 또 그 근거를 찾다 보면 실체가 없기는 하다는 것.

(3)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느낄 수 있는데, 그건 맞다는 것.. 그건 모든 사람들이 감내하고 있는 실존적인 고독감이라는 것.

 

몇 가지 지침만 마음에 정리가 되면 이들의 일상은 조금 수월해지고 주위 사람들의 곤욕스러움도 줄어든다. 특히 어린 학생들의 경우라면 보호자나 선생님들이 이들을 안심시키고 부드럽게 신호를 주는 것이 좋다. 물론 여전히 오래도록 불안하고 고독해 하겠지만 그렇게 이들은 천천히 성숙의 길을 간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렇게나 독특한 조현형 성격특성에 드리는 조언들이 실은 꽤나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더 일반화해서 말하자면,

 

(1) 나의 시간, 공간, 맥락에 따라 세분화된 친구들을 두는 것은 좋다.

(2) 근거도 실체도 없는 사고에 압도되어 있다면 그건 약간 오버하는 것이다. 진정하자.

(3) 나의 생의 대부분은 고독감을 견디며 홀로 걸어가게 된다. 별 일은 아니다.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면 세상에 이런 일이의 출연자들이 마치 이들이 매를 나서서 맞고 있는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누구나 독특하고 누구나 외로운 삶을 산다.

그러니 내가 나에게, 내가 남에게, 남이 나에게, 조금씩 자비롭다면.

악의가 아니었다면, 모든 이의 실수와 실패, 우연의 결과물로 가지게 된 독특한 성질들, 평균 범위를 한참 벗어난 극단치outlier들을 다들 그렇게 몰아세우지 않는다면.

 

나도 그들도 차차 배워가고 있는 중이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어색하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각자의 세상에 이런 일이출연자와 같으니mind

 

 

[1] 조현성 성격장애는 환청을 듣거나, 환시를 보거나, 수정되지 않는 망상을 가지고 있는 조현병과는 다르다. 최근의 많은 연구들과 실제 사례들에 따르면, 조현성 성격장애군은 대부분 특유의 증상을 가지고 (조현병 발병 없이) 그럭저럭 잘 지낸다. 

[2] 공병 혹은 공존장애(comorbidity): 두 개 이상의 장애들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

[3] 같이 한참 미숙한 십대의 나이였으니까. 이 친구는 지금 나와 제일 친한 친구 중 하나이다. 대학에 들어온 이후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하고 존경하는 친구.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임상심리전문가. 한국임상심리학회 홍보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대한뇌기능매핑학회 대의원 및 학술위원. 정신병리 및 심리치료의 효과를 임상과학 및 뇌신경학적 수준에서 규명하고자 연구를 지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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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범 2020-11-22 16:11:36
언제나 왕성하게 글 활동 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두둡 2020-11-22 01:17:43
매체에서 자극적으로 소비되는 소재인 조현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글을 읽고나니 한 방향으로 기울린 시선을 다시 평행선으로 맞춘 것 같아요.

오늘 책읽아웃을 듣고 책을 읽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덕분에 다른 시선으로 절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겼어요. 마인드 저널에 다양하고 흥미로운 글이 많아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아요! 좋은 글 써주셔서 깊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