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통일에 대한 심리학적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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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통일에 대한 심리학적 단상
  • 2020.12.10 12:00
남과 북 모두 통일의 주역이 되기 위한 역할을 모른 체하면서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편견만을 되풀이한다면, 아마도 통일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어질지 모른다. 우리가 통일을 논하려면, 먼저 75년 간 굳어져 가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걷어내야만 한다.

어느덧, 75년이 지났다

남북이 분단된 지 어느덧 75년이 지났다. 명목으로는 ‘통일’을 말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사람마다 통일에 관하여 상당히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어 보인다. 더 이상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랫말처럼 무조건적인 지상과제로서 통일을 얘기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학교에서 배운 역사를 떠올려 보니, 고조선을 시조로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후삼국시대,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 분단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이제 분단 이후 75년은 후삼국시대(고려 건국(936년) 이전의 약 50여년)보다 긴 세월임을 깨닫게 된다. 일제강점기 36년의 약 2배가 더 되는 시간이 지났다.

2020년 현재 대한민국의 인구는 약 5천1백8십만여명인데, 이 중 75세 초과 인구수는 약 125만명이다. 분단 이전 출생자는 전 인구 중 2.4%에 불과하다. 일제강점기가 종료된 1945년 기준으로 10세 이상의 삶을 살았던 현재 85세 이상인 분은 약 25만명으로 전체 인구 중 0.48%에 불과하다. 이제 분단 이전의 시기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지는 법이다. 함께 공유한 경험은 희미해졌고, 이제는 역사자료 속에서만 분단되지 않았던 때를 추억할 뿐이다. 함께 나누고 기억할 주인공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더욱이 모두 알다시피 분단 이후 남과 북은 각기 다른 정치적, 경제적 체제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는 서로 다른 것을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 상황이다.

그런데, 통일은 어렵다는 생각이 혹시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의해 부지불식간에 더욱 굳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마음 속 '분단체제'

2018년 양 체제의 정상회담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남과 북의 구성원은 사소한 일을 문제 삼아 상대를 비난하는 예전의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 이미 지난 6월 16일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남과 북은 다시 서로를 힐난하는 모양새를 연출하였다.

아울러 우리 남한에서도 북한 출신 이주민에 대하여 차별적인 처우가 심심치 않은데, 관련하여 탈북했던 이가 다시 북으로 돌아가는 사건도 발생하였고, 이러한 일을 계기로 서로 비난하는 언론의 보도를 접하였다. 남과 북은 서로에 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뿌리깊게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때문에 사소한 사건만 있으면 서로 으르렁대는 행태를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나 싶다.

기본적으로 고정관념 및 편견, 차별은 하나의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집단을 보호하고 지지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모두 아시다시피 각 구성원은 자신이 속한 집단 속에서 인정을 받으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한다. 그러려면 현재 내가 속해있는 집단과 대극을 이루고 있는 집단에 대해서는 매우 뚜렷한 방식으로 차별을 시도해야 하는데, 고정관념/편견의 형성은 이러한 기능을 매우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끔 해 준다. ‘친구가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과 상대 진영에 대한 모멸적인 낙인찍기는 그 어느 집단 사이에서도, 심지어는 개인 간에도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특히 정치세력 간에 상대를 차별하고 일정한 고정관념에 얽매이도록 하는 전략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남과 북은 여전히 서로에게 적대적인 용어를 구사하면서 고정관념과 편견에 의한 차별로써 서로를 대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태도형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국민이 상당하다는 얘기도 된다.

그런데, 남과 북의 심리적 대치상황 속에서 고정관념과 편견을 형성하고 차별을 유지하면, 혹시 우리 국민에게 생길 수 있는 불이익은 없을까?

통일은 어떨 때 불가능해지나

대한민국의 국민이 “통일은 어렵다!”고 생각하고, “소위 빨갱이들은 핵을 포기 안 한다!”는 식으로 일말의 의심도 없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면, 우리 국민은 이제 어차피 통일은 어려우니 아예 관심 갖지 말자는 식의 태도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분단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힘들게 보이므로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은 “그래서 나는 포기했다.” 식의 변명으로 합리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는 통일에 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굳어지게 된다는 것이며, 그로 인해 ‘통일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비효과적인 대처 행동이 널리 퍼지토록 만들 수 있다.

구성원들이 통일에 관하여 부정적인 태도를 형성할수록 노력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인데, 이런 분위기가 팽배해지면 국민들은 이런 저런 구실을 찾으면서 ‘결국 정말 중요한 것조차도 하지 않는 자기불구화 전략Keller, 2002 등’까지 사용하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본인이 나서서 해야 하는데, 여러 사유로 나는 못 하지만 내 책임은 아니고 심지어는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조차도 못하는 일인 것처럼, 각 구성원이 장애물이 될만한 마음의 벽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통일이 어렵다고 판단할수록, 어쩌면 통일에 관하여 생각조차 않으려 할 것이고, 그렇게 못하는 이유를 더 많이 쌓아가는 전략을 구사하게 될 것이라 할 수 있다.

통일 같은 거 난 모르겠어요! : 탈동일시 효과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분단국가. 핵 위험이 상존하는 나라. 외세의 간섭 탓에 어쩔 수 없는 나라.' 우리나라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들이다. 이렇게 우리 스스로가 우리나라에 대해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형성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일반적으로 어떤 집단에서 어떤 구성원이 자신의 실패를 예견하는 경우, 그 구성원이 취하는 행동은 자신의 실패가 스스로의 자아개념이나 자존감과는 관련이 없다는 식으로 탈동일시Crocker & Major, 1989하는 식의 자세를 취한다고 알려져 있다. 통일이 어려워 보일수록,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나는 좋은 나라의 국민이고 싶은데, 어려워 보이는 통일을 고민하자니.... 머리만 아플 뿐이다. 그러니 통일은 제외하고 우리가 해야 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만 집중하자.’

통일도 결국은 모든 국민의 염원에 따라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어려운 통일은 나와는 관련 없다.'는 식의 사회적 분위기가 더욱 팽배해질수록, 우리는 통일에 관한 부정적인 편견에 따라 움직이는 국민이, 그리고 부정적 고정관념을 더욱 강하게 형성하는 국민이 되는 것이다.

고정관념과 편견을 줄이는 법

Cialdini와 Kenrick, Neuberg(2014)는 그들의 저서인 ‘사회심리학’에서 편견과 고정관념, 차별을 감소시키는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우선 고정관념과 편견은 서로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한다. 서로 잘 모르는 집단끼리 잘 알기 위해서는 아마도 접촉의 빈도를 높이고 서로를 알게 하는 것만으로도 효과적일 수 있다.

문제는 상호 적대감이 높은 경우이다. 이 경우 접촉이 증가되어도 각 집단의 구성원들은 자기들이 고수해온 고정관념과 편견을 확인하는 기회로 접촉을 활용할 것이며, 감정적으로 격앙되는 경우 유지하던 고정관념과 편견을 오히려 강화시킬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오늘날 남과 북의 경우와 매우 유사하다. 즉 남과 북은 상호적대감이 높은 경우에 해당됨으로 단순접촉을 증가시키는 노력만으로는 서로에 대한 이해증진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간 이산가족 상봉이나 스포츠 교류, 심지어 금강산/개성 관광처럼 상호 접촉을 증가시키는 노력이 있었는데, 과연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싶은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노력을 이해할 때, 여타 복합적인 요소가 관여하여 상호 교류의 불씨 조차도 현재는 사그라진 형국이기는 하다.

마음의 장벽을 낮추기 위한 목표중심적 접근법

단순접촉만으로 상호이해와 유연한 태도형성이 어려울 경우, Cialdini와 Kenrick, Neuberg (2014)는 다음과 같은 ‘목표중심적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한다. 목표중심적 접근법은 다음 세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각 구성원 중에서 특히 강한 자기만의 욕구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경우, 그러한 개인들이 변화하도록 돕는 방법이 필요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사람의 특징을 바꾸는 것이다.

둘째, 각 집단은 상호이해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집단의 규범이나 문화를 바꾸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상황의 특징을 변경시키는 노력은 국민 모두가 지속적으로 참여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북한에는 남침을 노리는 늑대 무리가 산다’식의 다분히 과장된 메시지보다는 ‘함께 손잡고 잘 살아야 할 이웃’이라는 식의 평화와 공존이 강조되는 메시지를 통해 실용적 시각으로의 전환을 기획한다면, 이는 매우 장기적인 노력이 절대 필요한 것이다.

셋째, 결국 우리 국민들이 통일과 관련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바꾸도록 하려면, 각 개인들이 통일을 생각할 때 만족스러울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 제시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분단과 현상 유지가 오히려 편안하다면, 그 누구도 통일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통일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나에게 어떤 좋은 일이 생기겠구나' 하는 만족감이 더 크다면, 누구나 생각을 바꾸기 쉬울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실적이고도 실제적인 방안이 강구됨으로써 국민의 통일에 대한 긍정적 기대감을 형성하는 전략은 사실상 가장 어려운 현실 문제일 것이다. 궁극적인 목표중심적 접근법이 당장 시행될 수 없는 처지이기에, 앞서 지적한 다소 소극적인 사회적 규범과 문화의 변경 및 국민 중 과격한 주장을 일삼는 일부 사람의 특징을 바꾸는 노력이 선행될 수 밖에 없어 보이는 상황이다.

차별 내려, 통일 올려!

고정관념과 편견은 차별을 조장하게 된다. 물론 우리 인간이 어떤 것에 관하여 생각을 할 때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상황이 어렵고 힘들수록 우리 인간은 오히려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고정관념과 편견에 더 많이 의지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게르만 우선주의를 표방했던 나치 독일, 대동아 공영권의 기치로 태평양 침략전쟁을 일으킨 군국주의 일본. 모두 나만 제일이고, 남은 돌보지 않던 극단적인 자기주장의 화신이었고, 인류사적 비극의 악역으로 그들뿐 아니라 전 세계가 뼈아픈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통일에 관한 관심을 진정으로 키워가려면 의지만으로는 불가한 것이 심리학적 과학적 현실적 진실이다. 하지만 남과 북 모두 주인공의 역할을 모른 체하면서 스스로가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편견만을 고집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조차도 못하게 되는 자기불구화와 탈동일시에 빠지게 될 것이다. 서로의 적대감이 너무 높기에 단순 교류와 접촉을 증가시키는 것만으로는 상대에 대한 편견을 완화시키기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는 더 이상 부르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

통일에 관한 우리 국민의 태도는 통일이 좋은 것으로 기대될 수 있을 때만 긍정적으로 형성됨을 명심해야 하며, 그와 동시에 보다 긴 호흡으로 우리 모두가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통일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고취하는 다각적인 노력이 꾸준히 필요한 것이다. 분단 이후 고착되고 있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걷어내야만 한다. mind

[본고는 사회적 협동조합 행복잇다가 주최한 2020년 특강에서 발표된 내용으로 양해하에 게재합니다. Cialdini와 Kenrick, Neuberg (2014)의 '사회심리학’의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

박중규 대구대 재활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연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박사를 마쳤다. 임상심리학 전공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수련했고 세브란스병원과 인제대 일산백병원에서 근무하였다. 현재는 대구대 재활심리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임상심리학회 53대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심리학의 대중화를 위한 여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주관심사는 심리적 어려움을 돕는 과학적 심리치료로서 인지행동치료 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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