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상대주의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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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상대주의의 딜레마
  • 2021.01.13 10:00
문화의 시대,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전부일까요? 사회 유지와 구성원들의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문화가 인류 보편적 가치와 상충될 때,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문화상대주의란 모든 문화는 나름대로의 이유를 갖고 발달해왔다는 생각입니다. 어떤 문화는 우월하고 어떤 문화는 열등하다는 단선적인(진화론적) 이해가 아니라 모든 문화가 각자의 이유에 의해서(다원적으로)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제국주의 시대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던 문화진화론에 이어 모든 나라들이 평등한 관계를 맺는 현대사회의 효시가 된 중요한 인식론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상대주의에는 몇 가지 큰 단점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오늘 말씀드릴 '보편적 가치'의 문제입니다.

모든 문화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는 문화상대주의의 대 전제는 그것이 인권, 생명, 자유, 행복추구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위협하는 것일때 의혹의 대상이 됩니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따라 죽는 인도의 수띠(지금은 폐지된..), 가장의 허락없는 연애나 결혼을 한 여성을 오빠와 남동생들이 살해하는 명예살인, 악명높은 여성할례 등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문화나 축제 또는 오락의 명목으로 수많은 동물들을 살해하는 문화 등 세계에는 듣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문화들이 많습니다.

여성할례를 다룬 영화, '데저트 플라워'
여성할례를 다룬 영화, '데저트 플라워'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는 이들이 존재하지만 문화상대주의는 속시원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문화상대주의의 딜레마죠. 한 문화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모순 역시 인정한다는 꼴이 되어 버리니까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국제사회가 나서서 인류 보편적 가치를 침해하는 나라를 점령하고 고통받는 인민들을 해방시킨 뒤, 인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새로운 정부를 세우고 다시는 그런 미개한 문화를 갖지 못하도록 구성원들을 계도시키면 될까요?

어? 어디서 많이 듣던 패턴입니다. 불합리한 문화에서 압제받는 이들을 구하겠다는 좋은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지만 이 상상은 제국주의 시대 제국주의 국가들이 했던 일들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제국주의 국가들 역시 미개한 나라의 불쌍한 인민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 나라를 점령하고 국권을 빼앗았거든요.

백인의 의무 (실제로 한 말)
유색인종을 개화시키는 것을 '백인의 의무'로 간주했다. 

작금의 국제사회가 이러한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남의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 역시 인류 보편적 가치를 침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정녕 아무것도 없을까요?

문제의 소지가 있는 문화에 대해서는 유엔 등 국제기구의 시정 권고가 내려지기는 합니다. NGO 등 민간비영리 단체에서 여러 가지 실질적인 개선 운동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제기구의 시정 권고는 강제력이 없습니다. 비정부기구 회원들의 활동 역시 마찬가지죠.

무엇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만 초점을 맞추는 접근은 한계가 있습니다. 문화의 기능 때문입니다. 아무리 이해 안 가고 불합리해 보이는 문화라 할지라도 그 문화가 수행해 온 기능이 있는데요. 특정 문화 하나를 없애면 그 문화가 수행하던 기능 역시 순간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사라진 문화가 하던 기능을 대신할 또 다른 문화가 등장하겠지요. 그것이 어떤 혼란과 갈등을 불러 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예를 들어, 일처다부제가 비윤리적이라고 하여 금지시키고 일부일처제를 도입한다면 해당지역의 인구는 폭증할 것이고 사회는 붕괴할 것입니다.

 

다섯명의 남편을 둔 아내
다섯명의 남편을 둔 아내

문화의 변화란 그 안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따라서 문화를 바꾸는 일은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국제기구 관료나 활동가 한 두 사람의 견해로 수천년을 지속해 온 문화가 사라지고 오히려 구성원들이 고통받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그러니까 다른 문화를 건드리지 말고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진정 사라져야 할 문화도 많이 있을 겁니다. 이를테면 그 본래의 기능을 애초에 상실하고 악습으로만 남은 문화들 말입니다. 이런 문화들은 오히려 구성원들의 생존과 사회 유지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나 그것을 판단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어떤 문화가 그 사회에서 수행해 온 기능은 쉽게 발견되지 않습니다. 현저하게 악습으로만 보이는 문화에도 우리가 모르는 중요한 기능이 존재할 지 모릅니다. 문화상대주의의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어떤 문화를 나쁘다고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위험한 일입니다. mind

한민 심리학 작가 사회및문화심리 Ph.D.
토종 문화심리학자(멸종위기종),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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