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 끝에 왜 악수를 둘까?
상태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고 끝에 왜 악수를 둘까?
  • 2021.01.20 10:00

연휴 기간 동안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이것저것 고르다가 나 스스로 지쳐버렸다. 비슷 비슷하고 고만 고만한 상품들 중에서 내가 가장 선호하는 것을 고르려면 아무래도 웹 브라우저의 페이지를 열어 놓고 고민하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불필요한 피로감을 경험하게 된다.

다만 구매 계획이 없었던 물건에 대한 충동 구매의 경우 이런 피로감을 수반되지 않으므로 적어도 구매 당시의 만족감은 꽤 높겠지만 한 달 후 청구서를 받아 들게 되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배우자의 눈치를 보며 후회하기 마련이다. 아주 좋지 못한 습관임이 분명하다.

의식적 노력을 동반하지 않은 숙고

충동 구매를 제외하고, 어떤 물건을 신중하게 고른다면 이는 숙고deliberation의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즉 신중한 구매는 선택의 대상인 유사한 여러 제품의 속성과 관련된 정보spec들을 비교하고 장단점을 파악해 가격 대비 효용 가치가 가장 높은 제품을 선택하는 과정과 동일시 된다. 따라서 숙고에 따른 구매는 의식적 노력conscious effort과 초점주의focused attention가 수반되는 인지 심리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고에 의존하는 구매 선택 과정은 단순히 의식적 평가가 수반된 선택 의사결정 과정으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의사결정을 위한 숙고에는 초점주의가 동반된 것deliberation-with-attention만 있는 것이 아니며, 초점주의가 동반되지 않은 숙고deliberation-without-attention 또한 가능하다. 전자의 경우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숙고 즉 의식적 숙고이고, 후자의 경우는 전자와 비슷한 시간을 요구하지만 선택 대안들에 대한 평가가 무의식적unconscious 수준에서 진행된다고 가정하는 무의식적 숙고이다.

무의식적 숙고의 커다란 장점

흥미로운 것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의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Dijksterhuis et al., 2006, 적어도 선택 대안들에 대한 의식적 평가가 동반되지 않은 숙고가 크게 도움이 될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물건을 구매할 때 당연히 제품의 스펙을 꼼꼼히 살펴보고 비교해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최종 의사 결정까지는 좀 시간을 두고 최종 선택과는 관련 없는 그저 다른 일을 수행하다가 결정을 내리는 것이 오히려 만족도가 높은 구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해당 연구진들은 무의식적 숙고가 경우에 따라서는 만족도가 높은 구매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가설을 검증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실험 참가자를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숙고 두 조건에 할당했으며 각 조건의 참가자는 제품 스펙이 4가지 또는 12가지로 단순 vs. 복잡한 여러 제품들의 값어치를 평가했다. 의식적 숙고 처치를 위해서는 제품들의 스펙을 정독시킨 후 4분 동안 세심하게 제품들간에 걸쳐 비교 분석하도록 요구했고, 무의식적 숙고 처치는 정독 후 4분 동안 제품 선택과 무관한 캐쥬얼한 과제를 수행하도록 요구했다. 평가 대상인 제품들은 가장 좋은 제품과 가장 나쁜 제품까지 객관적 스펙 상으로 단계별 평가가 가능했으며, 참가자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숙고 과정을 거쳐 객관적으로 가장 우수한 스펙의 제품을 골랐을 때 점수가 가장 높게 산출된다.

충격적인 것은, 제품 스펙이 단순했던 경우에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숙고를 한 참가자들 사이에 최종 점수에 큰 차이가 없었으나 스펙이 복잡한 경우에는 의식적 숙고를 한 참가자는 점수가 오히려 낮아졌고 무의식적 숙고를 한 참가자는 점수가 오히려 좋아졌다는 발견이다. 즉 제품의 속성들이 단순한 경우에는 해당 속성들에 주의를 집중해 꼼꼼하게 비교하고 분석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으로 이어졌지만 속성들이 복잡한 경우에는 오히려 이러한 비교 분석을 생략하고 선택과는 무관한 다른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그들은 실제 시장에서 유통되는 제품들에 대한 설문 조사를 통해 구매한 제품의 속성 복잡성 수준과 구매자가 선택을 위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숙고를 한 여부에 따른 구매 만족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속성이 복잡하지 않은 제품들의 경우에는 의식적 숙고에 기초해 제품을 선택한 참가자들의 사후 만족도가 높았으나 속성이 복잡한 제품들의 경우에는 오히려 무의식적 숙고에 기초해 선택한 참가자들의 사후 만족도가 높았다.

만족스런 결정을 위한 심사숙고에 앞서

살다 보면 어떤 선택을 하기 위해 심사숙고할 경우가 있다. 앞서 암스테르담 대학 연구진의 보고를 참고하면, 생필품 구매를 위해 몇 가지 단순한 제품 스펙을 놓고 잠시 고민하는 것은 대개 올바르고 만족스런 선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우리 인생의 매우 중요한 결정들은 선택 대상들을 정의하는 속성들이 매우 복잡하고 다양할 가능성이 큰데, 아마도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의식적 숙고 방식이 더 유용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 소개된 연구에 따르면 선택 대상들의 속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마쳤다면 이들을 앞에 두고 골몰하기보다는 오히려 최종 선택까지 시간을 두고 선택과는 무관한 다른 일들을 잠시 진행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싶다. 아마도 우리 속담 중에서 장고 끝에 악수 둔다라는 말은, 중요한 결정을 위한 심사숙고의 시간 동안에는 선택을 위한 눈앞의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좀 거리를 두고 큰 그림을 보라는 조언인 듯 싶다. 사실 이 속담에 대한 이와 같은 나의 해석은 앞서 암스테르담 대학의 연구진이 본인들의 연구 결과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격식있게 포장한 해석과 정확히 일치한다. mind

   <참고문헌>

  • Dijksterhuis, A., Bos, M. W., Nordgren, L. F., & van Baaren, R. B. (2006). On making the right choice: the deliberation-without-attention effect. Science, 311, 1005-1007.
현주석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인지심리 Ph.D.
인지심리학의 주제 중 시각작업기억과 주의에 관한 주제로 박사 학위를 하고, 현재 중앙대 심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인지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기초로 인간의 장, 단기 기억과 사고 및 선택적 주의 현상 연구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지현 2021-02-03 16:17:47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초점주의가 동반된 의식적 숙고를 거친 결과 유익한 연구란 판단이 듭니다. 이제 삶에 적용하며 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