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치와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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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치와 치매
  • 2021.01.18 11:13

현재 한국사회는 급속도로 고령화되어 가고 있다. 2019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14.9%65세 이상의 고령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이 수치는 2025년에는 20.3%, 2067년에는 46.5%로 급속히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고령화로 인하여 사회, 경제, 보건 분야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다양한 문제점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특히 주목해야할 사항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치매 발생률이다. 중앙치매센터가 201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10%치매 유병률, prevalence에 해당하는 약 71만 명이 치매 환자일 것으로 추산된다. 보다 심각한 사실은 치매 환자의 수가 2024100만 명, 2029200만 명, 20503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이란 예상이다.

치매 환자의 2/3는 알츠하이머

치매는 기억력 장애를 포함하여 다양한 인지기능의 손상을 유발시켜 환자 당사자로부터 일상생활 유지 기능을 박탈할 뿐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가족에게 경제적인 부담과 육체적, 정신적 고통까지 안겨주는 심각한 장애다. 치매는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나지만, 가장 대표적인 치매는 알츠하이머형 치매Alzheimer's Disease, 이하 'AD'. 보건복지부가 2012년 실시한 전국치매역학조사에 따르면 AD의 치매 유병률은 6.5%로 전체 치매의 71.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통계 자료 또한 AD 환자가 전체 치매환자의 2/3를 차지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알츠하이머의 비밀

AD는 베타 아밀로이드β-amyloid 단백질이 세포 표면에 침착되면서 형성된 노인반senile plaque과 세포 내부에서 타우 단백질tau protein이 과인산화되면서 비정상적으로 꼬여서 형성된 신경섬유다발neurofibrillary tangle들이 뉴런들 간의 교신을 차단하고 궁극적으로 대뇌피질세포들의 사멸을 유발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런 뉴런들의 사멸은 기억 장애, 사고추론 능력 장애, 관리기능 장애, 주의력 결핍 등과 같은 인지 기능을 손상시키며, 불안이나 우울 같은 정서적 문제도 함께 발생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엄청난 자원과 재원이 AD의 원인, 즉 왜 이 단백질들이 비정상적으로 응집하는지를 밝히는데 투입되었지만, 아직까지 그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치료제 또한 개발되어 있지 않다.

사후 부검만이 정확한 진단 가능

현재 AD는 임상 및 신경심리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전문의가 진단을 내리는데 이때 뇌영상 이미지가 추가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임상 진단의 정확성은 65%에서 92% 정도에 미치지 않으며, AD의 확진은 사후 부검을 통한 대뇌조직 병리검사에서 아밀로이드 노인반과 타우 신경섬유다발이 확인될 경우 내려진다. 그동안 많은 사후 부검 연구가 시도되었는데, 이 연구들에서 발견된 가장 중요한 사실 중에 하나는 인지장애가 전혀 없었던 정상인들의 뇌에서도 AD 병변을 야기하는 비정상 단백질 덩어리들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무증상인 상태로 뇌의 퇴행이 상당 기간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 이런 결과로 인해 AD가 단순한 질환이 아니라 15-20년 동안 지속되는 변화의 과정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 AD의 개념 또한 새롭게 정립되었다. 아울러 오랜 기간 동안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AD 병변을 보유하여 추후 AD로 발전할 가능성을 지닌 사람들을 분류하기 위해서 이 기간을 전임상preclinical 단계로 지칭하고 있다.

치매 조기 판별  노력

지난 2-30년 동안 전 세계의 학계, 연구기관, 제약회사를 포함하는 산업계는 엄청난 재원을 AD 치료제 개발에 투입하였으며, 그런 투자는 현재도 진행 중이지만 뇌의 아세틸콜린 수치를 증가시켜 기억력 감퇴 속도를 감소시키는 도네페질donepezil, 리바스티그민rivastigmine과 갈란타민galantamine과 같은 약물의 개발에는 성공하였지만, AD의 진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거나 상태를 역전시키는 치료제 개발에는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대부분의 치료제는 비정상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여 그 단백질 제거를 목표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상기하였듯이 AD는 증상이 나타나기 10년에서 15년 전부터 이미 퇴행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증상이 감지되었을 때는 이미 퇴행을 역전시키기에는 이미 늦은 단계에 도달하여 이 치료제들이 효과를 보이지 못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 결과 최근 연구자들은 치료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비정상 단백질 덩어리들이 신경원을 손상시켜 뇌의 퇴행을 유발시키기 전에 개입을 해야 한다고 인식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로 인해 연구의 초점을 AD의 조기 판별에 맞추고 있다.

그 동안 엄청난 연구 노력의 결과로 AD에 대한 이해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그와 함께 AD의 상태 여부를 식별할 수 있는 다양한 생물학적 지표들이 개발되었다. 특히 비약적으로 발전한 뇌척수액cerebrospinal fluid 분석 방법을 이용하여 비정상 단백질 덩어리 수준을 측정하거나 양전자 단층촬영PET 장비로 촬영한 뇌신경원들의 대사 상태를 판독하여 AD 진단의 정확성이 상당히 향상되었다. 특히 이 두 방법을 병행해서 실시할 경우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전 상태에 있는 치매 위험군도 정확한 선별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뇌척수액을 추출하기 위해서는 요추 천차lumbar puncture, 즉 요추 부위에 바늘을 삽입하여 뇌척수액을 빼내는 상당히 침습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하며, PET 스캔은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문제점을 내재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이 방법들이 임상 현장에서는 널리 사용되고 있지 않다. 아울러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10년에서 15년 전 자신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검사를 받으라고 권유한다 하더라도 수락할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AD 위험군을 전임상단계에서 탐지할 수 있는 비침습적이며 저가에다 상대적으로 쉽게 실시할 수 있는 검사의 개발이 AD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기억력 감소와 AD

치매하면 건망증이 떠오르듯이 AD의 대표적인 증상은 기억력 저하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억력 저하를 보이는 노인들은 모두 AD 환자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사실 여러 연구에서 기억력 감소가 AD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 한 예로 인지기능 저하를 느끼기 시작한 91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가 있다. 이 연구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이 환자들이 모두 자신의 뇌를 사후 연구에 기증하였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은 이 지원자들이 살아있던 동안 이들의 기억력을 검사하였으며, 사후에는 부검을 실시하여 뇌 조직을 검사한 뒤, 그 결과를 생전에 실시한 기억력 점수와 비교하였는데, 그 결과 AD의 병변을 유발하는 비정상 단백질 덩어리가 발견된 환자들의 1/3이 생전에 전혀 건망증 증세를 보이지 않은 반면, AD의 병변이 발견되지 않은 사람들의 절반이 생전에 건망증 증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 연구는 기억력과 AD 병변과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으며, 따라서 기억력 감퇴만으로 AD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기억력은 나이와 함께 저하된다는 것을 모두 인식하고 있다. 위 연구에서 AD 병변을 발견하지 못한 환자들의 기억력 저하는 노령화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기억력 저하는 전두측두엽 치매frontotemporal dementia 혹은 피크병Pick’s disease로 알려진 질환을 비롯하여 다른 유형의 치매에서도 발생하는 증상 중에 하나다. 이렇게 기억력 감퇴가 AD에 국한된 증상이 아니라는 것은 기억력 감퇴를 AD를 판별하는 척도로 활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치매를 알아내는 방법

그러면 AD의 병변이 뇌의 퇴화를 유발시키지 전에 이 상태를 탐지하여 치료를 개시함으로써 뇌의 퇴화를 방지, 차단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어떻게 AD 위헙군을 AD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찾고 있다.

요즘도 길을 걷다보면 가끔 전봇대에 실종된 치매노인을 찾는다는 전단지를 보곤 한다. 다음은 언론에 보도된 실종된 치매노인에 대한 기사다.

청주 도심을 가르는 무심천에서 노이 시신 1구가 발견됐다. 시신은 평범한 옷차림의 80대 할머니였다. 경찰 조사 결과 숨진 A(84)씨는 시신이 발견된 지점에서 직선거리로 500m 떨어진 주택에서 홀로 살고 있었다. ... 충북 보은군에서 가출 신고된 김모(94, )씨가 자택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 유족은 경찰에서 실종 신고한 뒤 혹시 몰라 창고 내부를 살펴보다 숨진 채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진술했다....

이렇게 AD 환자들은 자신이 수십년을 살아온 집 주변, 심지어는 자신의 집 안에서 조차 방향 감각을 상실하여 어쩔 줄 모르고 배회하다가 곤경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시공간visuospatial 기능의 저하가 기억력 감퇴 못지않게 AD 환자들에게서 흔히 발견되고 있다.

시공간 기능이란 시각 정보에 근거하여 추출된 공간 정보로 물체까지의 거리, 물체 간의 거리, 물체의 크기, 색깔, 방위 등을 처리하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의 시각 정보는 망막에 소재하는 광수용기가 빛을 흡수한 뒤 활성화되면서 생성되며, 그 정보는 눈을 빠져나와 후두엽에 위치하는 시각피질로 전달되고, 거기서 두 갈래로 분리되어 한 줄기(복측 경로로 불림)는 측두엽쪽으로 보내져서 물체의 식별과 인식에 관여하는 반면, 다른 한 줄기(배측 경로로 불림)는 두정엽으로 보내져서 물체의 공간정보 처리에 관여한다. 특히 공간정보는 일상생활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예를 들면, 손을 뻗어 컵을 집거나,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기 위해서 방향, 속도, 거리 등을 조절할 때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정보처리를 담당하고 있는 배측 경로가 AD에 상당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런 손상이 AD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발생한다는 것이다.

<스틸 앨리스>가 말해주는 것

이런 결과를 반영하듯이 AD 환자들에게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상은 기억력 감소가 아니라 방향 감각 상실spatial disorientation과 공간 이동 능력navigational skill의 손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영화배우 줄리안 무어Julianne Moore가 열연한 영화 <스틸 앨리스>Still Alice란 영화에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영화에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누리는 앨리스는 어느날 평소에 달리던 길로 조깅을 하던 중 갑자기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런 사건 이후 결국 AD 진단이 내려지게 된다.

이런 공간 이동 능력의 상실은 AD환자들에게서만 나타나는 특징이라는 점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사실에 근거하여 최근에는 시공간 지각 능력의 저하를 임상전 단계를 포함하는 AD의 진단 지표로 활용하는 방안이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서 제기되고 있다. 현재 AD의 임상검사에서 시공간 지각 능력 검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앞으로 이런 점에 대한 보완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마치면서 한 마디 하자면, 아직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우리 주변에 소위 길치라고 놀림 받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런 사람들이 노년에 AD로 진전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자신이 길치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50대에 진입하였을 때 좀 고통스럽지만, 위에서 언급한 생체지표검사를 한 번 받아볼 것을 권고하고 싶다.mind

김남균 계명대 심리학과 교수 지각심리 Ph.D.
University of Connecticut에서 실험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수여받았으며, 그 뒤, William Paterson University (NJ 주립대학)과 영국 University of Leicester 심리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계명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각에 근거한 운동 통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최근에는 퇴행성 뇌질환 환자, 특히 알츠하이머형 치매 및 파킨슨병 환자들의 시각 및 운동 장애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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