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와 ‘제도적 가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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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와 ‘제도적 가족주의’
  • 2021.01.27 11:39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서, 우리나라 법과 제도에 나타나는 ‘제도적 가족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16개월 아기 정인 양을 학대해 죽음에 이르게 한 양부모에 대한 분노가 뜨겁습니다. 많은 분들이 살인죄로 처벌하라는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학대 정황을 보면서 괴로움을 말조차 못했던 아기를 생각하면 한량없이 마음이 아프고 죄스럽기 때문일 것입니다.

Jean-Baptiste Greuze, 'Broken Eggs', 1756, Oil on canvas, 73 cm × 94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City.
Jean-Baptiste Greuze, 'Broken Eggs', 1756, Oil on canvas, 73 cm × 94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City.

사회제도 뒤에 숨은 가족주의

저는 뉴스를 보면서 이전에 보았던 논문장경섭 외, 2015을 떠올렸습니다. 이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제도적 가족주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제도적 가족주의는 사회제도들의 형성과 운용에서 시민들에게 직간접적 그리고 명시적묵시적으로 가족적 차원의 책임의무권리를 강화하고 가족 중심적인 생활을 영위하도록 하는 효과를 뜻합니다. 가족주의가 전통, 관습과 같은 문화, 가치관뿐만 아니라 정책, 법과 같은 사회제도에도 반영된다는 주장입니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양성 역할 및 평등에 대한 인식 변화, 가족 형태의 다양화 등과 함께 이념으로서의 가족주의는 약화되고 있지만, ‘제도적 가족주의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아동 양육과 교육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이를 국가가 주체적으로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우선 가족의 의무로 두고 국가는 소극적으로 보조하는 역할에 그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육아휴직 기간에는 통상임금의 일부만을 받을 수 있는 것(현재 하한액은 70만원으로, 이렇게 되면 가족이 생계 유지가 어려운 경우에는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힘들 것입니다), 손자녀를 돌보는 조부모에게 양육수당을 지원하는 것, 중학교까지만 의무교육이고 고등학교, 대학교 학비는 가족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방치되는 아동학대

아동학대의 경우 제도적 가족주의가 문제가 되는 까닭은, 국가(사회)가 아동의 양육을 일차적으로 가족의 일로 놓고 한 발 물러나 있을 때, 가족이 양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동의 권리가 도움의 손길이 미칠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사회정책이 가족 단위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가족을 형성하지 않은/못한 개인이나 가족으로부터 충실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개인에게 사회가 불이익을 가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장경섭 외, 2015. 관련한 몇 가지 사례를 보면, 아동학대를 막으려면 제도적 가족주의에서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아동에 대한 부모의 권리보다, 아동의 권리를 더 우선시하는 쪽으로 제도를 바꾸는 것을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번 코로나 3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세대주에게 지원했을 때, 여러 사정으로 세대주에게 돈을 받을 수 없는 가족원은 어떻게 하느냐는 항의가 이어졌고, 이에 정부는 가구원이 이의 신청을 할 경우 세대주가 아니어도 수령할 수 있게끔 했습니다(경향신문, 2020. 05. 08). 사실 세대주에게 지원금을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것도 제도적 가족주의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재난지원금을 세대주에게 지급했을 때, 모든 가족이 문제없이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종종 깨닫게 되듯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있습니다. 만약 세대주와 다른 가족원들의 관계가 소원해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 중 하나는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으로 취약한 아동일 것입니다.

무책임한 부모가 아동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려고 주소나 재산 명의를 옮기는 편법을 사용할 때도(신동아, 2021. 1. 11), 이혼소송 과정에서 부모를 비롯한 가족이 서로 양육권을 주장하며 비방하고 다투는 가운데 어린 자녀가 상처를 받을 때도(https://www.instagram.com/p/CI19RH2H3AX/?utm_source=ig_web_copy_link), 사이비 종교에 빠진 부모가 대안교육 명목으로 아이를 학대하는 교주와 함께 살게 할 때도(jTBC, 2021. 1. 15; 한국경제, 2020. 12. 22), 법에서는 친권과 양육권은 우선 친부모에게 있는 것으로 보고 최소한으로 개입하는 것 또한 제도적 가족주의의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인 양의 경우 이웃들이 무관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인 양의 이웃이 한 번, 정인 양이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두 번, 정인 양을 진찰했던 의사가 한 번, 총 네 번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공권력이 이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정인 양에게 필요한 조치를 해 주지 못 했습니다. 정인 양을 보호하고 사랑을 주어야 할 우선적인 책임이 있는 양부모가 정인 양을 학대하는 것을 막지 못한 것입니다.

글을 맺으며

제도적 가족주의연구자들은 가족주의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가족주의를 한국 사회의 특징으로 본 학자들은 가족주의의 부정적, 긍정적 측면에 모두 주목하며, ‘가족주의 내에서 길러진 공동체적 가치의 습성화(권용혁, 2012; 장경섭 외, 2015에서 재인용)’를 한국 사회의 잠재력으로 보기도 한다고 합니다. 자라면서 긍정적인 공동체의 가치를 학습한다면, 나중에 다른 공동체에 소속되었을 때도 그러한 긍정적 가치를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화 변동이 사회적 논의를 거쳐 법과 제도에 반영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다만 아동 양육은 일차적으로 가족의 일이라는 제도화된 가족주의적 사고방식이 아동학대를 방임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라면, 여기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생각하면 할수록 슬픈 일입니다만, 우리 눈에 보이는 아동학대는 사회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빙산의 일각일 것입니다.mind

   <참고문헌>

  • 권용혁 (2012). 한국 가족, 철학으로 바라보다. 이학사.
  • 김은성 (2020. 5. 8) 긴급재난지원금, 세대주 아니어도 수령 가능’.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5081835001&code=940100#csidx5fe93b073bd30889090354809126aa1
  • 장경섭, 진미정, 성미애, 이재림 (2015). 한국사회 제도적 가족주의의 진단과 함의-소득보장, 교육, 돌봄 영역을 중심으로. 가족과 문화, 27(3), pp. 1~38.
  • 강경주 (2020. 12. 22) “18년간 미성년자 성착취한 안산 목사...강제로 이빨 뽑아”.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20122259577.
  • 김도훈 (2021. 1. 15) 안산 아동 성범죄목사 구속...‘수십 억 재산수사. jTBC. https://bit.ly/38PklCR.
  • 최창근 (2021. 1. 11) “양육비 지급 명령 판결문은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어요”. 신동아. https://shindonga.donga.com/3/all/13/2353600/1.
  • 최유나 변호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CI19RH2H3AX/?utm_source=ig_web_copy_link.
신기원 중앙대 심리학과 박사과정 수료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사회 및 문화심리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위험지각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내용과 형식이 아름다운 심리학 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꿈은 나와 우리가 함께 행복한 삶의 길을 찾는 심리학에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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