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힘든 순간, 게임을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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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힘든 순간, 게임을 한다는 것
  • 2021.02.01 16:00

직접 만날 수 없어도 디지털 게임을 통해 소통과 연결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지구인에게 들이닥친 커다란 삶의 난관이라면, 게임은 그 안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가 나타나기 전에도, 삶에서 맞닥뜨리는 위기의 순간은 항상 존재했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 가까운 사람의 죽음, 갑작스러운 실직,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아도 예고 없이 찾아오는 우울과 불안들사람들이 이러한 삶의 난관을 통과할 때 게임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아본 최신 연구를 소개한다.

영국 요크대학의 이아코비데스Ionna Iacovides 박사와 머클러Elisa Mekler 박사는 사람들이 삶의 어려운 순간에서 "왜" 그리고 "어떻게" 게임에 몰두하게 되는지 알아보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는 2019년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분야 권위 있는 국제 학회CHI 2019에서 발표되었다.

질문의 민감성 때문에 연구는 익명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인생에서 매우 힘들었던 상황을 떠올려 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당시에 했었던 게임이 무엇인지, 왜 그 게임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게임이 본인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지 질문했다. 연구진은 총 95명(18~58세, 평균 나이 25.5세)의 답변을 질적으로 분석하여, 삶의 난관에서 게임의 역할에 대해 6가지의 테마(주제)를 찾아냈다.

첫 번째로, 게임은 힘든 상황을 잊게 해 주는 일종의 휴식처를 제공해 주었다. 사람들은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괴로운 생각들을 잠깐이라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에 게임에 몰두했다고 답했다. 게임은 TV나 책과 같은 다른 매체보다도 다양한 감각들을 이용하여 집중하게 하므로, 그 순간만큼은 괴로움을 떨쳐버리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 게임을 하는 동안에 신체적인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스타듀밸리(Stardew Valley): 도시의 회사 생활에 지친 캐릭터가 귀농하여, 여러 작물을 키우고 이웃 NPC(Non playable character)들과 친목을 쌓는 시뮬레이션 롤플레잉 게임. 이 게임은 멀티플레이도 가능하지만, 한 응답자는 이 게임을 주로 혼자 플레이하며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사진출처: Steam)
스타듀밸리(Stardew Valley): 도시의 회사 생활에 지친 캐릭터가 귀농하여, 여러 작물을 키우고 이웃 NPC(Non playable character)들과 친목을 쌓는 시뮬레이션 롤플레잉 게임. 이 게임은 멀티플레이도 가능하지만, 한 응답자는 이 게임을 주로 혼자 플레이하며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사진출처: Steam)

두 번째로, 게임은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 공간이 되어 주었다. 게이머들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 소속감을 느꼈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를 만나면 괴로운 현실 상황에 관해 이야기해야 하지만, 게임 안에서 만나면 심각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도 지속적인 대화가 가능했다. 게임을 하며 죽은 남동생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애도할 수 있었다는 사람도 있었고, 게임 캐릭터와 유대를 느끼고 위로를 받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세 번째는 게임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직면하게 된 것이었다. 비록 적은 수이긴 했지만, 일부러 자기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이야기의 캐릭터를 골라 플레이했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게임 캐릭터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고,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극복하려고 했다. 게임의 스토리에 감동하고, 엉엉 울고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Life is strange): 미국 10대 여성이 겪는 혼란스러운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어드벤처 게임. 플레이어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주인공 시점으로 플레이하며, 캐릭터가 처한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캐릭터와 깊이 공감하게 된다. 한 게이머는 이 게임에서 “불안”이라는 공통된 감정을 통해 게임 캐릭터와 연결될 수 있었다고 응답했다. (사진출처: Steam)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Life is strange): 미국 10대 여성이 겪는 혼란스러운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어드벤처 게임. 플레이어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주인공 시점으로 플레이하며, 캐릭터가 처한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캐릭터와 깊이 공감하게 된다. 한 게이머는 이 게임에서 “불안”이라는 공통된 감정을 통해 게임 캐릭터와 연결될 수 있었다고 응답했다. (사진출처: Steam)

네 번째는 게임이 삶의 변화와 성장을 촉진했다는 것이다. 게임 안에서 플레이에 점점 능숙해지는 느낌, 자신감, 무언가를 지속하는 동기가 생겼고, 이것이 조금씩 현실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는 응답이 있었다. 이러한 삶의 변화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일어나기도 했다. 게임을 같이하던 플레이어들의 지지와 권유로 폭력적이었던 전 애인과의 관계를 끊고, 대학 진학도 하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The Elder Scrolls V: Skyrim): 방대한 판타지 서사와 높은 자유도를 가진 액션 롤플레잉 게임으로, 플레이어는 이 게임 안에서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된다. 한 응답자는 스카이림에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하며, 현실 세계에서도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응답했다. (사진 출처: Steam)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The Elder Scrolls V: Skyrim): 방대한 판타지 서사와 높은 자유도를 가진 액션 롤플레잉 게임으로, 플레이어는 이 게임 안에서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된다. 한 응답자는 스카이림에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하며, 현실 세계에서도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응답했다. (사진 출처: Steam)

다섯 번째로 좀 더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었던 사람들에게 게임은 일종의 "구명보트" 역할을 했다. 몇몇 응답자는 게임이 자해나 자살과 같은 자기 파괴적 행동을 막아주고, 우울증과 외로움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었다고 고백했다. 자기 자신을 거의 돌보지 않고, 밥도 거의 먹지 않던 한 게이머는 "닌텐독스Nintendogs"를 플레이하며, 가상의 강아지를 돌보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게임의 미션 중에 실제로 밖에 나가야지만 할 수 있었던 미션이 있었는데, 강아지를 위해 집 밖으로 한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게임이 항상 긍정적인 효과만 불러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테마에서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게임이 "방해꾼" 역할을 했다는 응답들이 있었다. 게임 때문에 학업을 등한시하거나, 신체 활동이 줄어들고, 다른 사람과 소통할 기회가 줄어들었다고 부정적으로 이야기한 사람들이 있었다. 게임은 괴로운 현실의 도피처가 되어주었지만, 이 시간이 길어지면서 현실의 문제에 직면하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게임이 다른 활동에 비해 생산적이지 못한 활동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전의 게임 관련한 연구들은 대부분 게임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연구는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했다. 현실의 괴로운 상황 안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을 조명해 준 것이다. 연구진은 사람들의 응답이 긍정적, 부정적으로 대비되는 것은 게임의 가치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이 작용한 것은 아닌지 앞으로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연구진은 게임 이용이 문제가 되는 상황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덧붙이며, 게임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회피 수단으로만 이용되는 것에 관해서도 추가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참고 문헌>

  • Iacovides, I., & Mekler, E. D. (2019, May). The Role of Gaming During Difficult Life Experiences. In Proceedings of the 2019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pp. 1-12).
이세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 중노년 웰빙및게임 연구
어떻게 하면 IT기술이 시니어를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지, 어떻게 서로 다른 세대를 연결시켜 줄 수 있을 지 관심이 많다. 현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Games and Life Lab에서 심리학과 커뮤니케이션학을 기반으로 노년층과 게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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