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나는 나보다 아름답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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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 나는 나보다 아름답다는 착각
  • 2021.02.12 13:25

마법의 거울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마법의 거울을 들여다 보며 백설공주의 새엄마인 사악한 왕비는 이렇게 물어 본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아닐 가능성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왕비. 그러나 “여왕님이 가장 아름답습니다”라는 평소의 응답과는 달리 언제부터인가 거울은 “백설공주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라고 대답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 등극해 있다가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던 왕비의 마음이 어땠을까? 엄청난 분노에 사로잡힌 왕비는 다시 미모 1위를 차지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자신의 수양딸을 죽이려고 한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동화 백설공주의 한 장면이다. 이야기 속에서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고 생각한 사악한 왕비에게 “착각은 자유”라고 말해 주고 싶다. 뭐니뭐니해도 페리테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모는 주인공 공주의 몫이니까. 그런데 외모에 대한 이런 ‘자유로운 착각’이 과연 사악한 여왕만의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미 ‘경험칙’으로 어느 정도 알고 있다.

Mose Bianchi (1840-1904), Woman in front a Mirror.

더 예쁘다는 착각

백설공주에서의 왕비처럼 ‘내가 지구에서 제일 예쁘다’ 또는 ‘내가 우주 최고 미남이다’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의 객관적인 매력도보다 스스로 훨씬 더 예쁘거나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착각은 사실 흔하다. 우리 주변에 카메라에 잡힌 예쁜 모습을 남기고 싶어서 끊임 없이 셀카를 찍는 셀카 공주들,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자꾸만 바라보고 싶어서 수시로 거울을 쳐다보는 거울 왕자들이 한 두 명씩은 (또는 수없이 많이) 있게 마련이다. 이 글을 읽는 동안도 아마 누군가가 떠오를 수도 있다. 또는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 뜨끔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이러한 착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진 찍히는 것을 즐기지는 않지만, 가끔 내 사진을 찍을 때면 여러 장을 찍어 마음에 안 들게 나온 사진은 모조리 삭제해 버리고, 가장 잘 나온 사진 한 장을 남겨 놓고 ‘이게 제일 나답게 나왔네’ 라고 생각(혹은 위안)한다. 실상은 삭제되는 사진들, 내 마음에 안 들게 나온 사진들이 나의 모습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마음 한 켠에서 애써 무시하며…

보정된 자신의 모습

심지어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일반 카메라로 사진을 잘 찍지 않고, 보정 기능이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는 어플리케이션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이런 보정 기술들이 너무 발전해서 사진 속 얼굴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부각시키는 변형이 숨쉬듯 실시간으로 일어난다. 이렇게 평소에 더 예뻐 보이는 어플로, 완벽한 각도에서 셀피를 찍다 보면 살짝 보정된 자신의 모습을 원래 자신의 외모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가 준비되지 않은 시점에, 준비되지 않은 각도에서 보정 기능이 없는 카메라로 찍힌, 비교적 정확한 자신의 모습이 반영된 사진을 보게 되면 “어휴, 내가 이렇게 생겼어?” 하며 새삼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 자신의 외모를 실제 자기 모습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상한 것도,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미국의 심리학자 Epley와 Whitchurch 교수는 변형된 사진 자극을 이용한 실험을 실시했다Epley & Whitchurch, 2008. 연구자들은 먼저 실험에 참가하러 온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찍고 몇 주 뒤에 그들을 실험실로 다시 불렀다. 그 사이에 연구자들은 각 참가자의 얼굴을 아주 매력적인 얼굴 또는 아주 매력 없는 얼굴 사진과 합성하여 총 10장의 합성 사진을 만들어 놓았다. 합성 방법은 이렇다. 참가자의 진짜 얼굴에 매력적인 얼굴 합성 비율을 10%씩 늘려가며 50%까지 합성했다. 즉, 매력도가 점점 높아지는 ‘매력적 합성 사진’이 5장 만들어진 것이다. 반대로 매력 없는 얼굴 사진도 동일한 방법으로 매력도가 점점 낮아지도록 참가자 얼굴과 합성하였다. 이렇게 하여 가장 매력 없는 사진부터 가장 매력적인 합성사진까지 11단계가 만들어졌다. 정리하자만, ‘매력 없는 합성 사진’ 5장, ‘매력적인 합성 사진’ 5장, 참가자의 진짜 사진 원본 1장까지 총 11장의 사진이 실험에 사용된 실험 자극이다.

참가자들에게 이렇게 만들어진 11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중 합성이 되지 않은 자신의 “진짜 얼굴”을 골라 보도록 했다. 그러자 놀라우면서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가 나타났다. 참가자들이 자신의 진짜 얼굴보다 매력적으로 합성된 얼굴 사진을 자신의 모습이라고 고르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다.

자신을 매력적으로 보는 경향

이번엔 비슷한 질문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던져 봤다. 참가자들에게 진짜 사진 한 장과 매력도를 높거나 낮게 합성한 10 장의 사진을 포함한 총 11장의 사진 각각을 무작위 순서로 한 장씩 보여줬다. 그리고 각 사진이 자신의 진짜 모습이라고 얼마나 확신하는지 물어봤다. 흥미롭게도 앞선 질문에서와 일관된 답변을 얻었다. 사람들이 진짜 자기 사진을 보고 ‘오, 이게 내 실제 얼굴이구나’ 라고 확신하는 정도는 50% 정도에 불과했다. 대신 실제보다 20% 매력적으로 합성된 사진을 자신의 실제 모습이라고 확신하는 정도는 70%에 가까웠다. 

여기까지 보면 뭔가 우울해지는 연구인 것 같다.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내 모습보다 나의 진짜 외모는 20%씩이나 덜 매력적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니 말이다. 그러나 정말 받아들이기는 싫지만, 또 한편으로 말이 된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결과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거울이나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얼굴을 실제로 볼 수 있는 시간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시간에 비해 극히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얼굴은 내 상상 속에서 떠올릴 때가 더 많고, 떠오르는 얼굴의 근거는 아마도 최근 찍었던 잘 나온 사진, 아니면 오늘 아침 집을 나서기 전, 화장실 조명을 받으며 완벽한 각도로 들여다 보았던 거울 속 이미지, 즉 내 얼굴의 베스트 버전일 것이다. 따라서 나의 마음속 이미지 속에서는 나 자신의 외모를 조금씩 더 아름답게 만들어 놓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매력적으로 볼수록 좋아지는 것

그런데 이 연구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아직 좋은 소식이 남아 있다! 이처럼 자신을 실제보다 더 예쁘거나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정도는 암묵적으로 자기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고, 스스로를 좋아하는 정도와 관련이 있다. 연구 결과, 매력적으로 합성된 사진을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는 암묵적 자존감과 정적 상관 관계를 가졌다. 다시 말하면, 무의식적으로 자기 스스로를 더 가치 있게 여길수록, 자신을 더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외모를 실제보다 더 매력적으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마음 한 켠에 위안이 되는 결과이다. 자신을 가치 있고 소중하게 여기므로 스스로를 더 예쁘고 잘생기게 생각한 것이다. 자기 얼굴을 실제보다 더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도 부끄러운 일도 아닌 것이다. 오히려 자신을 좋아하기에, 가치 있게 여기기에 나타난 여러 가지 현상 중 하나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런 정도의 귀여운 착각은 우리의 삶을 더 자신 있게 살아가는 데에 도움을 준다. 성형 수술을 하는 사람들은 성형을 통해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되어 기쁘다고들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 연구 결과로 보면 사람들은 이미 마음 속 성형을 하며 자신감을 얻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화장실 조명 아래에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며 ‘나 오늘 좀 괜찮은데~?’ 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 미용제품 광고의 카피를 따라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소중하니까.” mind

    <참고문헌>

  • Epley, N., & Whitchurch, E. (2008). Mirror, mirror on the wall: Enhancement in self-recognition.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34(9), 1159-1170.
임낭연 경성대 심리학과 교수 성격및사회심리 Ph.D.
연세대에서 사회 및 성격 심리학을 전공하였으며, 행복에 관한 주제로 박사학위를 하였다. 현재 경성대 심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2015년에 한국심리학회에서 수여하는 김재일 소장학자 논문상을 수상하였다. 행복 및 긍정적 정서 연구를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는 범죄피해 진술조력(2018), 범죄피해 조사론(2018), 심리학개론(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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