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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16 15:18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열렸던 '현실 이상'전 (2020. 8. 24 - 2021.1.31)에 다녀왔습니다.

"아무도 안 볼 때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야

많은 사람들이 인생 드라마로 꼽는 나의 아저씨(2018)’의 대사이다. 아마도 정신건강 인근 종사자들은 나름의 이유로 이 대사에 공감할 것이다

심리학과 학부 집단상담 실습수업 시간에 친구 K가 털어놓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저는 상담심리전공으로 계속 공부하고 싶은데, 제 가족은 화목하거든요. 누군가를 상담하거나 치료하려면 어린 시절에 좀 어려움도 있고 그래야 할 것 같은데, 저는 그런 경험이 없어서 좋은 상담가가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순진하고 말간 얼굴로 얘기하는 K가 조금은 부러웠고 조금은 한심했다. 몇몇 아이들은 수업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이걸 내가 들어도 되나?’ 싶은 비밀스럽고 아픈 사연을 얘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20대 초반 과하다 싶은 자기 개방 대상이라는 것은 대부분 가족에 관한 것이다. 감정을 토해내는 사람만 있을 뿐 수습하여 봉합할 사람이 없었던 그 수업이 부담스럽고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K는 원가족에서 시작된 어떤 결핍이 좋은 심리치료자의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K의 생각대로라면 나는 타고난 임상,상담 전공자에 속한다.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적 없는 사람들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이 세상에 던져진다. 내 멋대로 떠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이 관계에서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비틀어져 불편하게 박혀있는 마음의 못이 있다. 처음 이 못을 발견하면 못을 박은 가해자를 찾고 못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빼낼 수 없는 마음의 못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적응하거나 함께 살 방법을 터득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의 못이 생존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곳에 박혀있거나 때론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커서 도저히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서로를 괴롭히며 해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관계 속의 사람들. 아마도 그럴 때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닐까.

만약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혈연이 다른 형태의 가족 구성이라면 조금 달라질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과 다른 어떤 가족을 구성할 수 있을까? 익숙하게 알고 있는 가족 구성원과 다른 형태의 가족들이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할까?

얼마 전 이런 질문을 던지는 전시를 다녀왔다. 2020.09.24.~ 2021.1.31.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열렸던 <현실 이상>reality errors은 우리가 마주하게 될 미래사회는 다양한 낯선 존재들과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아가게 될 실제 현실이며, 우리가 이상異常하다고 의심하는 것들을 외면하지 않아야 도달 할 수 있는 이상理想일 수 있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전시 소개 ).

퍼펙트7 전시부스
퍼펙트7 전시부스

여러 전시 중 박혜수 작가의 전시 <퍼펙트 7>2030년 생활동반자법이 통과된 가상의 미래사회에서 관람객이 선택할 수 있는 7개의 새로운 가족 형식을 선보인다. 미래사회에 통과된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는 생활 동반자법에서는 비혈연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며 결혼을 하지 않아도 파트너 등록을 통해 기존 가족제도의 혜택을 법률혼과 마찬가지로 보장해준다. 작가가 제안한 가족의 형태는 결혼가족, 비혼이성가족, 동성가족, 친구가족, 1인가족, 가족협동조합으로 구성하며 가상의 기업 페펙트 7http://perfectfamily.co.kr/에서는 가족 설계 등록, 관련 보험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시는 페펙트 7의 대표 서비스를 소개하고 동반자 보험등록과 가족 큐레이션을 모집하는 사업부스의 형태이며 전시기간 중에 열렸던 미래가족설명회에서는 실제 친구가족, 가족협동조합의 구성원을 직접 만날 수 있도록 했다

미래가족설명회 홍보포스터
미래가족설명회 홍보포스터

관람객은 전시장에 비치된 New family 등록신청서를 통해서 원하는 가족의 형태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다. 신청서에서 주목할 점은 현재 우리 사회가 정상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혈연중심의 가족형태에서 빈번하게 갈등을 유발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가족 설계 과정에서 미리 협의하고 계획하도록 한 것이다. 예를 들면, 의료결정권(연명치료 거부권 및 인신구제 포함)과 동반자 해소解消시 아이 양육에 대한 합의, 양육비 분담비율, 생활비 분배비율, 가사노동분담비율, 생활동반자 등록 이후 형성한 자산에 대한 소유권주택, 자동차, 펀드, 부동산, 예금계좌, 채무 책임, 건강보험 등록, 장례식은 누가 치를지 등에 관한 것 등이다.

펜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경제, 사회, 문화적 대격변의 흐름 속으로 멱살을 잡혀 끌려 들어왔다. 알고는 있었지만 외면해왔던 우리 사회의 작은 균열들이 거대한 퍼펙트 스톰이 되어 가장 취약한 계층부터 무너뜨리는 현실을 매일 목격한다. 최근 1인 가구의 증가, 혼인 감소, 저출산의 흐름은 가족 중심보다는 개인의 권리를 더 우선시하는 20-30세 대의 가치 변화와 맞물려 가속화되어 왔다. 하지만 펜데믹 시대에서는 이런 추세를 역행하여 다시 가족 중심의 돌봄 특히, 여성 돌봄의 비중이 커지는 방향으로 회귀하도록 만들었고 기존 가족 제도를 둘러싸고 있던 해묵은 갈등들이 다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26일 여성가족부는 『제4차 건강가족기본계획안(2021~2025)』을 발표했다. ‘2025 세상 모든 가족 함께라는 비전하에 법률혼, 혈연중심의 가족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대한 법적 포용성을 증가시켜 집단으로서의 가족이 아닌 개인의 행복과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의 정책들과 사회적 돌봄의 기능을 강화시키기 위한 제안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추세를 볼 때 박혜수 작가의 제시한 가상의 New Family는 '현실이상'이 아닌 현실이 될 날 도 멀지 않은 것 같다. 당신은 누구와 사는가? 누구와 살고 싶은가? mind

고선규 mindworks 대표 임상심리 Ph.D.
임상심리전문가그룹 마인드웍스 대표이자 애도상담센터 ‘메리골드’를 이끌고 있는 임상심리학자이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 애도가 관심 분야이며 자살 사별자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와 상담을 하고 있다. 매달 첫째 주 수요일 저녁, 자살 사별자 리더와 함께 여성 사별자를 위한 자조모임을 운영한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모든 아름다운 것을 탐미하며 그 속에서 심리학적 이야기를 관찰하고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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