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고니즘_한중일의 문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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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고니즘_한중일의 문화심리학
  • 2021.04.19 12:00
지상현 한성대 교수가 작년말에 출간한 '안티고니즘'은 예술과 문화를 기반으로 한중일 삼국의 문화심리를 분석한 책이다. 그 깊이와 폭에 있어 하나의 지성사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안타고니즘-한중일의 문화심리학(지상현 지음, 다돌책방 펴냄, 2020). 시원한 판형에 담긴 풍성하고 정교한 도판이 이해를 도와줍니다.
안타고니즘-한중일의 문화심리학(지상현 지음, 다돌책방 펴냄, 2020)

최근 중국 언론에서 김치의 원형이 중국에서 전해졌다고 주장하여 논란이 되었습니다. 일본과 우리 정부는 위안부 합의 문제로 계속 대립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와의 역사, 자국 이익을 헤아리는 속내를 생각해 볼 때 마냥 편안한 이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서는 불편한 행동에도 지혜롭게 대응할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행동 양식과 원인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한중일을 바라보는 문화심리학의 시선

『안타고니즘-한중일의 문화심리학』(다돌책방, 2020)은 비슷한 듯 다른 한중일 세 나라를 문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비교 분석하는 책입니다. 여기서 ‘문화심리학적 관점’은, 네덜란드 심리학자 홉스테드Geert Hofstede가 유명한 IBM 연구에서 취했던 비교문화적 관점, 예를 들어 여러 나라의 집단주의, 개인주의를 비교하는 방식과는 다릅니다. 그보다는 ‘이 나라의 위치, 지리, 기후, 역사와 같은 조건이 사람들의 생활, 사고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라는 질문을 통해 그 나라 사람 입장에서 문화를 이해하려는 관점에 가깝습니다.
문화는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매우 강력한 요인입니다. 집단에서 사용하는 말, 그림기호, 음악뿐만 아니라 집단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생각, 말, 행동, 가치관도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국가의 유지와 번영에 가장 유리한 방식을 ‘바람직한 것’으로 후손들에게 계속해서 말과 행동으로 가르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문화는 삶을 통해 ‘몸에 배는’ 것입니다. 문화심리학자들은 문화가 개인과 집단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고자 합니다.

지상현 교수는 학부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이러한 경력이 그로 하여금 문화심리학의 길로 이끌었다.
지상현 교수는 학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이러한 경력이 그로 하여금 문화심리학의 길로 이끌었다.

이 책에서는 그림, 공예, 건축 등 시각적 자료를 주로 활용해 문화를 분석합니다. 저자 지상현 교수님은 시각디자인과 지각심리학을 전공하셨는데, 전문 분야와 분석 방식이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 즉 시각적 자극의 형태를 분석하는 디자이너이자, 그러한 자극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하는지를 연구하는 지각심리학자의 눈으로 시각 자료에 숨은 문화를 읽어 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상현 교수님은 디자인, 심리학, 문화를 아우르는 작업을 계속하고 계시고, 그중에서도 안타고니즘은 한중일 문화에 대한 탐색이라는 점에서 이전 저서 한중일의 미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원한 판형에 담긴 도판의 풍성함과 정교함이 내용 이해를 도와줍니다.

안타고니즘이란?

‘안타고니즘antagonism’은 서로 대항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몸과 같은 자연계의 유기체는 생존을 위해 체온, 수분량 등을 균형 상태로 유지하고자 하는 ‘항상성’이라는 성질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정서적으로도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은 심리적 균형을 유지하고자 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안타고니즘, 즉 ‘길항 작용’입니다. 우리 몸 안의 다양한 물질, 예를 들어 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이 길항하며 돌보는 태도와 경쟁하는 태도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게끔 합니다pp. 15~16.
이 책에서는 한중일의 문화심리학을 푸는 데 ‘길항’ 개념을 대입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이지만 동시에 ‘열정과 신명의 나라’이기도 합니다p. 18. 만약 우리가 정이나 동의 문화 중 어느 한쪽에 치우쳤더라면 반 만 년의 역사를 이어오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쉽도록 정신분석학자 융Carl Jung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원형의 ‘니드스코프’ 위에 한중일 문화의 외향성-내향성 차원, 여성성-남성성 차원을 표현합니다.

중국 문화: 폐쇄와 개방, 강박과 이완의 안타고니즘

중국 문화에서는 폐쇄성과 개방성, 즉 내향성과 외향성이 밀고 당기며 안타고니즘을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1장. 큰 땅과 다양한 민족 간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말미암은 폐쇄적 주택 구조에서는 불안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게 지은 탑에서는 탁 트인 전망, 개방에 대한 욕망이 드러납니다. 이러한 밀고 당김은 깊은 산과 높은 봉우리가 조화를 이루는 중국 산수화에서도 나타납니다p. 61. 현대 중국도 개방을 통해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룩했지만, 한편에는 페이스북, 유튜브의 사설 인터넷 보안망VPN을 금지하는 폐쇄성이 있습니다p. 71.
중국 문화에서는 강박과 이완의 밀고 당김도 보입니다2장. 진시황릉에서 출토된 엄청난 규모와 수준의 유물처럼, 중국 미술품에서는 장인이 일종의 기예로 보일만큼 기술이나 재료의 한계를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성향이 나타납니다. 중국 무술 영화를 보면 주인공에게서 이러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야 어떤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도교적 집착’p. 75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산수화, 서예 작품에서는 완벽에 대한 가혹하리만큼 엄격한 기준을 벗어나 자유와 개성을 찾고자 하는 움직임도 나타납니다.

한국 문화: 덤벙과 강박의 밀고 당김

우리 문화에서는 어떤 안타고니즘이 나타날까요? 이 책에서는 한국 문화를 ‘덤벙 문화’라고 이야기합니다p. 107. 미술사학자 최순우는 ‘한국의 미술은 언제나 담담하다. 그리고 욕심이 없어서 좋다. 없으면 없는 대로의 재료, 있으면 있는 대로의 솜씨가 별로 꾸밈없이 드러난 것, 다채롭지도 수다스럽지도 않은 그다지 슬플 것도 즐거울 것도 없는 덤덤한 매무새가 한국 미술의 마음씨이다’라고 썼습니다. 거친 바위, 휘어진 나무의 형태를 그대로 살리는 건축, 백토물에 자기를 덤벙 담갔다가 흘러내린 그대로 구워 내는 자기 양식, 몸을 조이지 않아 ‘바람의 옷’이라 하는 한복의 풍성한 맵시에서 담담한 덤벙의 마음이 보입니다3장.
그러나 덤벙 문화가 전부는 아닙니다. 팔만대장경, 석굴암에서 나타나듯 완벽을 추구하는 강박적 성향도 우리 문화의 단면입니다. 이러한 성향은 고려 불화, 조선의 초상화, 한글과 태극기, 그리고 할머니 댁 안방의 화려한 자개장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강박과 덤벙 문화가 밀고 당기며 해학과 역동성이 넘치지만 자살률은 OECD 1위인 현대 한국 사회의 모습을 그려 냅니다. 이는 니드스코프에 여성적 외향성과 남성적 내향성이 동시에 있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pp. 128~129.

일본 문화: 츠메루와 불균형의 미학, 다도와 사무라이

한국이 ‘덤벙’의 문화라면, 일본은 ‘츠메루’의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p. 169. ‘츠메루’란 빈 곳에 무언가를 야무지게 꼭 채워 넣는다는 뜻이 담긴 단어라고 합니다. 우리 기와집의 추녀는 하늘로 날아갈 듯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지만, 일본 옛 건축물의 지붕은 군더더기 없는 직선으로 절제의 미학을 보여 줍니다. 이렇게 필요 없는 것을 생략하고 정리하고자 하는 성향은, 사면이 바다로 포위되었으며 자연재해가 빈번한 일본인들의 자연과 삶에 대한 통제 욕구가 반영된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욕구는 일본의 분재 문화, 그림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도자기, 꽃꽂이 문화에서는 틀을 깨고자 하는 반대 욕구도 읽어낼 수 있습니다4장.
일본은 차 마시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다도의 나라이면서 사무라이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매우 정적이고 내향적인 문화로 보이지만, 힘의 논리를 따르며 호전적인 무사의 정신이 그 안에 흐르고 있습니다. 일본의 전국 시대를 끝내고 통일을 달성한 무장이자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도의 창시자인 센리큐를 매우 존경했으나, 선불교 승려이기도 했던 센리큐의 가르침과 계속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일본 문화에서도 여성성이나 남성성에 치우치지 않은 남성성사무라이 문화과 내향성센리큐 문화이 밀고 당기는 안타고니즘이 나타납니다.

안타고니즘의 의미: 이질적인 것들의 어울림을 통한 발전

세 문화의 안타고니즘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움직이며 발전을 위한 동력을 만듭니다. 안타고니즘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균형이 깨지고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우 발전의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생각해 볼 만한 점은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타국의 문화를 안타고니즘을 통해 이해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배금주의는 현실적, 감각적인 것을 선호하는 성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p. 254. 이런 특징은 공자, 유가로 대표되는, 추상적 질서를 추구하는 성향과 밀고 당깁니다. 나름의 역학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각 선호가 균형을 잃을 만큼 지나치게 되면 실용성과 상관없는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 자유, 인권, 지속 가능성과 같은 추상적 개념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p. 265.
일본의 ‘벌집형 집단주의’도 안타고니즘이라는 안경으로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집단주의는 ‘활동 중심적 집단주의’로, ‘우리’의 관계를 중시하는 한, 중의 집단주의와 다르게 함께하는 일에서 자기 역할을 잘해 주는 한 타인에게 관여하지 않습니다p. 237. 수동적 개인주의와 밀고 당기는 집단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수동성이 지나치면 변화에 잘 대처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어려워 자칫하면 경직과 침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pp. 243~244.
우리 문화의 생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건강한 안타고니즘은 필요합니다. 우리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내향적 남성성이면서 ‘열정과 신명의 나라’외향적 여성성인 것은 호르몬의 길항 작용과 같이 때로는 질서를, 때로는 자유를 추구하며 역사의 흐름에 적응해 온 우리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내향적 남성성이 균형을 잃고 주체성 자기가 강한 한국인의 높은 권력 동기와 만나면 극단적, 소모적인 이념 대립p. 145, 엘리트 집단주의pp. 234~235로 치닫기도 합니다.
문화가 역동적으로 변해 가는 유기적인 것이라면,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들의 안타고니즘은 단지 참고 넘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한중일이 함께 발전하려면 각국 안에서, 그리고 서로의 관계에서 다양한 개인과 집단들의 갈등을 억압하기보다 능동적으로 이해하고 공존해 나가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역사, 문화, 예술에 대한 독서를 즐기시는 분, 한중일이 평화롭게 공존, 발전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고자 하시는 분, 그리고 문화심리학 연구방법이 궁금하신 분들께 이 책을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mind

신기원 중앙대 심리학과 박사과정 수료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사회 및 문화심리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위험지각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내용과 형식이 아름다운 심리학 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꿈은 나와 우리가 함께 행복한 삶의 길을 찾는 심리학에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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