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씨에게 미처 하지 못한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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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씨에게 미처 하지 못한 질문들
  • 2019.07.15 07:55
자신을 표현할 수 없는 이들의 내면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신체신호를 예술로 승화시킨 이들이 있다. 안정윤, 김혜이 작가의 『불가능한 얼굴과 재-현 』전을 찾았다.

수진씨가 떠올랐다. 나는 그가 김수진인지, 이수진인지 박수진인지 알지 못한다. 심리실에서는 그를 “수진씨”로 불렀기 때문에 그냥 수진씨였다. 나이도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다기 보다 관심이 없었다. 비쭉비쭉 마구잡이식으로 자른 병원식 커트 머리, 발자국 소리가 들릴 수 없는 운동화, 어떤 질문에도 두 문장 이상을 대답하지 않던 임상 심리실 담당 근로자, 만성정신질환자, 조현병 환자 수진씨. 그가 언제부터 그 곳에 있었는지, 무슨 증상 때문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가족은 있는지, 언제 쯤 병원 밖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지.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한 두 번은 궁금했었던 것 같은데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병원의 연못이나 나무처럼 그냥 그렇게 계속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

지난 4월 18일부터 5월 10일까지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김장연호 감독)에서는 안정윤, 김혜이 작가의 『불가능한 얼굴과 재-현』전이 열렸다. 사회 속 경계와 편견, 혐오의 대상으로 불확정성을 지닌 수많은 존재들의 흔적을 대안영상예술 작품으로 선보이는 전시에서 두 작가는 표상화된 ‘얼굴’없이 재-현 될 수 있는 방법으로 흔적들traces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 흔적의 기록이 역사화되지 못한 ‘얼굴’의 역사가 되고 기록될 수 있음을 작품으로 묻는다. 

이 중 김혜이 작가의 영상작업 ‘이야기의 얼굴’에서는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말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로 아홉 명의 조현병 환자와 한 명의 가족 인터뷰가 담겼다. 보이스 채널2에서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화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며 화면에는 화자가 직접 촬영하고 고른 사진과 그림, 글, 과거 어린 시절의 사진들을 보여준다.

신체신호로 만들어진 이미지

인터뷰 동안 화자는 동공움직임, 상반신의 움직임, 심박수 피부전도도를 측정하는 기기를 부착하고 있으며 이러한 신체 신호들은 여러 가지 센서를 통해 수집된다. 이 데이터는 작가가 짜놓은 코드에 의해 실시간으로 해저 이미지로 시각화되어 인터랙션영상 채널1에 상영된다.

김혜이 作, 이야기의 얼굴(two channel video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2018).
김혜이. '이야기의 얼굴'two channel video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2018. 

작가의 질문은 조현병의 시작, 그 때의 증상, 입원과 퇴원의 경험, 친구, 가족, 요즘 생활, 미래의 희망까지 다양했다. 화자의 목소리들은 그 때의 수진씨처럼 단조롭고 감정을 가늠하기 어려워서 마치 성별과 나이가 다른 9명의 수진씨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인터뷰 동안 수집된 신체 신호로 만들어지는 영상 속 생생한 컬러의 바다 생물들은 화면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자유롭게 춤춘다. 위로 떠오르고 가라앉고 확장하고 축소하며 혼자 떠다녔다가 무리 지었다가 머물렀다가 떠났다. 아마도 화자의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별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환자에게 어떤 병이 있느냐보다 환자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하지만 환자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은 대개 특정 진단으로 분류되는 그 순간 사라지며 그 진단을 가진 환자로서의 질문들 예를 들어, 약은 잘 먹고 있는가? 기능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와 같은 것들 만 남는다.

환자가 화자가 되는 순간

전시 설명에서 작가는 인터뷰에 참여한 환자들을 모두 화자(話者)고 불렀고 환자가 아닌 환자가 화자가 되는 순간 환자들은 우리가 알아야 할 어떤 사람이 되었다. 우리가 '만성정신질환자, 조현병 환자들은 이러이러한 정서특징이 있답니다'라고 규정짓고 질문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던 이야기 속 감정들이 작가가 만들어 놓은 코드로 변환되어 바다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을 봤을 때 그제야 그 때의 수진씨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질문들이 떠올랐다.

푸코는 권력체계에 의해 이성과 진리라는 장치로 재현의 시각장The visual field of representation이 놓일 수 있는 몸과 그렇게 할 수 없는 몸으로 분리되고 그렇지 못한 몸은 경계 너머 혐오의 대상으로, 또는 존재의 가치를 전혀 알 수 없는 무화의 몸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환자를 화자로 존중하고 그들의 신체 신호로 세상에 하나밖에 생성될 수 없는 그림으로 각각이 지닌 고유한 얼굴을 재현해 낸 작가의 작업은 그들을 경계 너머 혐오의 대상이 되도록 방치한 정신건강 종사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조기 진단과 약물치료만 잘 받으면 정말 이들이 두려움 없이 얼굴을 드러내고 함께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존재하도록 우리 사회가 할 수 있을까? mind 

고선규 mindworks 대표 임상심리 Ph.D.
임상심리전문가그룹 마인드웍스 대표이자 애도상담센터 ‘메리골드’를 이끌고 있는 임상심리학자이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 애도가 관심 분야이며 자살 사별자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와 상담을 하고 있다. 매달 첫째 주 수요일 저녁, 자살 사별자 리더와 함께 여성 사별자를 위한 자조모임을 운영한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모든 아름다운 것을 탐미하며 그 속에서 심리학적 이야기를 관찰하고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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