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가족돌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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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가족돌봄자
  • 2021.10.08 07:55
‘누군가를 돌보는 자’에게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상대방이 현재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넉넉하게 생활의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몸은 건강하고 마음은 따뜻한 인물이 그려지는가? 돌봄자Caregiver에 대한 이와 같은 이미지는 그 자체로 틀렸다고 볼 수는 없지만 자칫 그들도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게 만든다.

독자분들께 양해를 바라며 ‘노인 돌봄’ 연구에 관심이 많은 연구자로서 다소 과격한 주장을 하나하겠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은 돌봄을 필요로 한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며 요즘 유행하는 MBTI의 16가지 성격유형 모두에 해당한다. 돌봄에 있어서 검은 백조Black swans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론은 얼마든지 환영한다. 이순신 장군? 지금 이 시간에도 광화문 광장에서 기개 넘치는 모습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용맹의 아이콘, 충무공 이순신 장군 말인가? 그가 전란 중에 작성한 난중일기에서 우리는 '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 ·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반드시 살려면 죽을 것이다라는 대목을 통해 그의 용맹함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일기의 첫 장부터 나타나는 연로한 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막내 아들의 소식을 전해 듣고도 지휘관으로서 애통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탄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용감한 모습에 가려진 그의 연약한 내면 또한 확인할 수 있다. 얼핏 돌봄이라는 단어가 이순신 장군과 멀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돌봄이 필요한 이순신’은 결코 모순된 표현이 아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430여년 이후 전 세계는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와 전쟁 중에 있다. 자연재해가 그러하듯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종이나 성별, 또는 부와 사회적 지위에 따라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팬데믹에 따른 사회경제적 위기 아래에서 더욱 가혹한 처지에 놓이는 이들이 있다. 필자는 그 중 치매 환자와 그를 곁에서 돌보는 가족돌봄자Family caregiver에 주목하고자 한다.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교류가 감소하고 인지 및 신체활동의 기회가 줄어들면서 치매 환자는 인지기능 점수의 저하 또는 우울 및 불안감을 호소하는 등 증상이 악화될 위험에 처해있다Ismail et al., 2021. 이들을 위한 사회적 접촉 기회를 마련하고 건강 증진 프로그램 개설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뉴스 보도를 종종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돌봄의 공백을 감당해내야 하는 가족돌봄자의 건강에 대한 관심은 그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따라서 본 기사에서는 치매 환자를 보살피는 가족돌봄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정신건강에 미친 영향을 연구한 최신 논문Altieri & Santangelo, 2021을 소개한다.

Altieri와 Santagelo는 2020년 3월 말에서 4월 초, 코로나19로 인한 락다운Lockdown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치매 환자를 돌보던 총 83명의 가족돌봄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전후로 그들의 정신건강 상태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조사하였다. 병원 불안 및 우울 척도Hospital Anxiety and Depression Scale, HADS을 활용하여 코로나19 전후의 정신건강 상태를 측정하였고, 다변량분산분석Multivariate Analysis of Variance, MANOVA 기법을 활용하여 분석을 진행한 결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가족돌봄자의 우울 수준을 높이는데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더불어 연구자는 가족돌봄자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측정하여 팬데믹 상황에서 개인의 심리적 대처 능력이 심리정서적 보호효과를 보이는지에 대해 연구하였다. 측정한 전체 대상자의 회복탄력성 중위값을 기준으로 회복탄력성이 높은 집단과 낮은 집단을 구분하였고, 회복탄력성 수준에 따라 코로나19 상황이 가족돌봄자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정도가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보았다. 예상할 수 있듯이 두 집단 모두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데 유의미한 영향을 끼쳤고, 높은 수준의 회복탄력성을 보이는 집단에서 코로나19 발생 전후로 더 나은 수준의 정신건강 상태가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회복탄력성이 낮은 집단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연구자의 예상과는 달리 회복탄력성이 높은 집단에서 코로나19 팬데믹 발발 이후 정신건강의 악화 수준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는 회복탄력성의 심리정서적 보호효과를 무력화시키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고독과 사회적 고립의 위험에 놓여있는 가족돌봄자의 처지를 고려할 때, 이들을 위한 사회적 지원 프로그램 및 심리적 개입방안 마련의 필요성을 제언하며 본 논문을 마무리하였다.

본 연구는 종단연구가 아니라 대상자의 기억에 의존하여 코로나19 발생 전후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법으로 진행이 됐기 때문에 회상 편향Recall bias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또한, 자발적으로 지원한 대상자에 한하여 연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전체 인구를 충분히 대표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팬데믹 상황은 개인의 심리적 대처 전략을 무력화시킬 정도로 가족돌봄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입증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 특히, ‘가족돌봄자를 위한 돌봄Caregiver Care’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족한 한국의 상황을 고려할 때, 팬데믹 상황에 따른 사회적 돌봄 공백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가족돌봄자의 건강에 주목한 연구라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누군가를 돌보는 자’에게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상대방이 현재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넉넉하게 생활의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몸은 건강하고 마음은 따뜻한 인물이 그려지는가? 돌봄자Caregiver에 대한 이와 같은 이미지는 그 자체로 틀렸다고 볼 수는 없지만 자칫 그들도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게 만든다. 마치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이순신 장군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각자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필요한 돌봄의 종류와 정도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돌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돌봄 공백을 발견하기 위한 첫걸음을 뗄 수 있다. mind

[감수: 중앙대 심리학과 김기연 교수]

   <참고문헌>

  • Altieri, M., & Santangelo, G. (2021). The psychological impact of COVID-19 pandemic and lockdown on caregivers of people with dementia. The American Journal of Geriatric Psychiatry, 29(1), 27-34.
  • Ismail, I. I., Kamel, W. A., & Al-Hashel, J. Y. (2021). Association of COVID-19 pandemic and rate of cognitive decline in patients with dementia and mild cognitive impairment: a cross-sectional study. Gerontology and Geriatric Medicine, 7, 23337214211005223.
임준엽 중앙대 심리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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