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안녕을 포기하는 노인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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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안녕을 포기하는 노인들에 대하여
  • 2021.11.08 09:00
스스로를 보호하고 보살피는 일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노인들이 늘고있다.

어느새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立冬이다. 겨울이 다가오면 일본의 외딴 산골마을 '나라야마'가 떠오른다. 19세기 나라야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에서 겨울은 고통의 계절이다. 식량이 적어 겨울나기가 힘든 그들에게, 겨울은 굶주림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식량 부족으로 인해 노부모를 산 정상에 버리는 '기로棄老'라는 비참한 풍습을 그린다. 현대인이 보기에 영화의 내용은 다소 비인간적이고 비현실적이며, 먹을 게 충분치않던 먼 과거의 이야기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더 이상 추운 산 정상에 버려질 일 없는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따뜻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까?

Erica Hopper, "In Sync", 54x40
Erica Hopper, "In Sync", 54x40

안타깝게도 노인들은 여전히 위기 속에 있다. 나라야마 부시코에서 장남의 등에 업혀 자신의 죽음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노모老母처럼, 방 한편에서 스스로 끼니를 거르고 질병 치료를 포기하며 자신을 방임하는 노인들이 있다. 보건복지부2019는 노인의 자기방임self-neglect을 '노인 스스로가 의식주 제공 및 의료 처치 등 최소한의 자기보호 관련 행위를 의도적으로 포기 또는 비의도적으로 관리하지 않아 심신이 위험한 상황이나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전문가들은 노인의 자기방임은 신체 및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그들이 고독사와 자살로 내몰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노인의 자기방임은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이지만, 그들은 외부로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독거 중이거나 지역사회에서 단절되어 있는 노인들에게서 자기방임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방임이 본인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으며, 자기 선택이라는 이유로 외부의 개입이 어려워 장기간 방치되기 쉽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그들이 외부로 드러났을 때는 이미 심각한 문제가 발현되었을 확률이 높다. 따라서 자기방임이 발생하기 이전의 요소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 논문 리뷰에서는 노인의 자기방임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는 최신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연구에서는 Chicago Health and Aging ProjectCHAP를 통해 3년 간격2008, 2012의 종단면 데이터를 수집하여 시카고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2,885명을 대상으로 자기방임을 예측 가능한 변인들에 대해 조사하였다Wang et al., 2020. 자기방임은 인터뷰를 통해 4가지 범주(저장/수집 hoarding, 개인의 위생부족 poor personal hygiene, 불결한 환경 unsanitary conditions, 집 수리 필요 need home repair)18가지 항목으로 평가된다. 더불어 자기방임에 대한 예측 변인으로써 86가지 항목에 대해 조사하였다. 그 결과 자기방임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를 선별하여 단계적 선택법stepwise selection을 통한 로지스틱 회귀분석을 통해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노인의 자기방임을 예측한 변수들로 '고혈압', '호흡곤란', 그리고 '3년간 아스피린을 복용하지 않음'으로 밝혀졌다. 아스피린 미복용에 따른 결과는 자기방임과 심혈관 질병이 연관이 있다Dong et al., 2009는 다른 연구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데, 이는 저용량의 아스피린이 심혈관 질병을 예방함에 따라 자기방임에도 예측성을 갖는다는 결과로 이어진다. 사회적 활동이나 참여의 부재 또한 자기방임을 예측 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었는데, 가족 또는 친구와의 식사 시간이 더 적은 노인들이 자신을 방치하는 경향을 보였다. 시력과 청력 기능 저하 역시 자기방임을 예측 할 수 있는 요인이었다. 이는 감각기능의 저하가 사회적 참여를 감소시키고 심리적 고통을 증진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이들을 결합한 결과가 자기방임의 가능성을 높였다. 예상 외로 노인의 심리적 고통과 인지장애는 독립적인 예측 변수가 아니었다. 본 연구에서는 인지장애와 우울증이 발현하기 이전에 자기방임이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본 연구에는 몇 가지 한계점이 있다. 연구의 참여자는 대다수 백인과 흑인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인종을 대표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따라서 한국의 노인들에게 적용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하다. 또한 과거에는 자기방임 연구가 개인의 위생 부족 및 불결한 주거환경, 사회의 도움 거부를 특징으로 하는 개인의 기능 이상으로 여기는 모델에 기반하였지만, 최근에는 개인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환경이 자기방임에 영향을 준다는 사회적 관점이 주로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본 연구는 시카고에 한하여 진행되어 각 문화에 따른 사회적 지원 및 정책 등의 영향에 대한 사회 맥락적 논의점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는 처음으로 노인의 자기방임에 대해 특정 요인들이 예측 가능성을 갖는 것을 확인하였다는 데 큰 의미를 갖는다. 이는 노인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에게도 노인의 자기방임을 예측할 수 있는 효과적이고 의미 있는 도구가 되어 줄 것이다.

현재 노인의 자기방임에 대해 복잡하고 다각적인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실증적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우리는 이 심각한 문제의 대안을 빠르게 고민하여 노인이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보살피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자기방임 현상은 다차원적이고 복잡하지만, 본 연구를 통해 노인의 특정한 신체 문제와 사회적 관계가 자기방임에 미치는 영향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단순히 특정한 질병의 치유가 자기방임 해결법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방임 노인에 대해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인 측면을 모두 고려하여 다각적으로 다가가 더 민감하고 세심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 문제에 있어서 사회관계망과 지지체계를 형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이는 오로지 정치인과 사회복지사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이다. 지금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여쭈어보는 게 어떨까? 노인이 자신의 안위(安危)에 관심을 갖게 하는 데 첫걸음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mind

[감수: 중앙대 심리학과 김기연 교수]

   <참고문헌>

  • 보건복지부. (2019). 2018 노인학대 현황보고서. 세종: 보건복지부.
  • 박성은. (2018.05.28). [디지털스토리] ‘밥 먹기도, 씻기도 싫다’... 자신을 학대하는 노인들. 연합신문. Retrieved from https://www.yna.co.kr/view/AKR20180525126300797
  • Dong, X., Simon, M., De Leon, C. M., Fulmer, T., Beck, T., Hebert, L., ... & Evans, D. (2009). Elder self-neglect and abuse and mortality risk in a community-dwelling population. 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302(5), 517-526.
  • Wang, B., Hoover, D. R., Beck, T., & Dong, X. (2020). A Vulnerability Risk Index of Self‐Neglect in a Community‐Dwelling Older Population. Journal of the American Geriatrics Society, 68(4), 809-816.
유수하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석사과정
노년기의 심리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차지하는 노년기의 의미를 찾고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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