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밤의 애도'을 출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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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밤의 애도'을 출간하며
  • 2021.11.23 18:00
'세계 자살 유가족의 날(Suicide Survivor's Day)' 를 아시나요? 자살 사망 통계치, 숫자뒤에 그 보다 훨씬 몇 배의 사람들이 자살 사망에 대한 낙인과 편견으로 온전히 애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비극적 엔딩에 서서 완전히 새롭게 삶을 이어가야 하는 사별자들이 있습니다. 세계자살유가족의 날은 이런 사별자가 우리 곁에 있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매 년 추수감사절 전 주 토요일을 그 날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날에 맞춰 [여섯밤의 애도]를 출간했습니다. 자살 사별자 다섯 명과 함께한 여섯 번의 모임에 대한 글입니다. 그 날로 시작하여 이들이 겪었던 사별자로서의 경험과 애도 여정을 함께 나눴습니다. 내가 겪었으면 겪은대로, 겪은 일이 아니라면 나와 상관이 없어서 가급적 피하고 싶은 주제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별자 다섯명과 함께 한 지난 가을과 겨울의 작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별자 곁의 사람들에게는 위로할 수 있는 용기를, 사별 당사자에게는 함께 애도하자고 청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는 작은 시작이 되길 바랍니다.

내 삶의 심리학 Mind 독자 여러분께

안녕하세요. 『여섯 밤의 애도』의 저자 고선규입니다.

떠나 보낸 일을 온전히 마음속에 품길 바라는 마음으로, 곁의 소중한 사람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섯 밤의 애도』를 집필했습니다. 올 겨울, 이 책이 독자분들의 마음에 따스하게 가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드립니다.

고인을 온전히 품고, 다시 내 삶으로 가기 위한’ 여섯 번의 만남에서 자살 사별자분들과 제가 나눈 이야기를 전부 다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참여자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끄덕였을 때의 눈빛, 누구의 말에 울었다가 웃었다가 했던 그때의 분위기, 모임 전에 나눴던 일상의 대화들 “머리 자르셨네요! 예뻐요’, ‘저녁 식사는 하고 오셨나요?” 같은 말들. 모임이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하하호호 웃던 순간들은 모두 지웠습니다. 생략한 순간까지 모두 글에 담을 수 있었다면 자살 사별자들이 누군가에게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좀 더 생기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출판의 목적에 맞게 필요한 말을 고르고 쓸어 담아 제가 생각하기에 적당한 자리에 두었습니다. 더 고통스럽거나 비참하게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덧칠해서 끔찍한 고통의 재현에 그치지 않도록 애썼습니다. 그래도 부족한 점이 있을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정확히 전달하는 말이란 언제나 모자라니까요.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와 최종본은 끝내 다시 읽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모임을 이끌어주었던 리더 원이 님이 ‘고통의 목격자’가 되는 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며 괜찮다, 수고했다고 위로했습니다.

이 책의 수익금을 올해 만든 자살 사별자 지원단체 「메리골드」에 기부할 예정입니다. 이 책을 사랑해주신 만큼, 더 많은 자살 사별자분들을 부단히, 열심히 돕겠습니다. 사별자분들이 다시 세상 밖으로 용기 내 나갈 수 있도록 함께 도와주십시오.

매주 셋째 주, 2030 여성 자살 사별자들을 위한 자조모임을 연 지 올해로 2년째를 맞았습니다. 올 가을부터는 애도에 관한 책과 영화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애도 문화살롱’도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메리골드」에서는 앞으로도 자살 사별자분들을 위해 기획해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청소년 자살 사별자들, 자녀 사별 부모를 위한 프로그램, 다른 유가족들을 돕고 싶은 자살 사별자들의 상담과 교육훈련도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여러 사람의 응원과 지지를 받으면 좀 더 끈질기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판에 동의하는 참여자들을 모으고 여섯 번의 모임을 진행하고 녹음하고 전사까지 해야 하는 번잡한 글쓰기 기획이었습니다. 의미있는 책 작업이 될 것이라며 저를 다독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기꺼이 모든 것을 함께해주신 허유진 편집자님, 프로그램 장소뿐 아니라 직원들의 탕비실까지 저희에게 허락해주신 한겨레출판 관계자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책을 읽는 자살 사별자분들에게 원이 님의 글을 전합니다.

자조모임을 찾으며 우리는 오로지 내 이야기로 구성된 고통, 그 고통을 정확히 바라봐주는 사람들을 만나길 기대한다. 그 사람이 내 고통의 목격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바라도 된다면 그 고통 또한 이해받을 수 있다고 믿게 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여러분 곁에 그런 사람이 분명 있습니다.

 

2021년 11월

고선규 드림

고선규 mindworks 대표 임상심리 Ph.D.
임상심리전문가그룹 마인드웍스 대표이자 애도상담센터 ‘메리골드’를 이끌고 있는 임상심리학자이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 애도가 관심 분야이며 자살 사별자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와 상담을 하고 있다. 매달 첫째 주 수요일 저녁, 자살 사별자 리더와 함께 여성 사별자를 위한 자조모임을 운영한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모든 아름다운 것을 탐미하며 그 속에서 심리학적 이야기를 관찰하고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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