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어르신께 두 귀는 쫑긋, 두 눈은 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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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어르신께 두 귀는 쫑긋, 두 눈은 반짝
  • 2022.09.27 16:08
고령화 사회와 함께 치매는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치매 어르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있을까요? 그분들에게 직접 여쭤본 최신 연구를 소개합니다.

어느 날 주간보호센터에서 생긴 일

나른한 평일 오후, 어느 동네 주간보호센터 내 작은 소란이 발생했습니다.  “아니 저 소파에 앉아 있는 노친네가 내 사물함에서 가방을 가져갔대도? 내가 직접 봤다니까 그러네?” 직원 L씨는 센터 내 CCTV를 아무리 돌려봐도 박씨 할머니 사물함에 손을 댄 사람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센터 현관문 쪽 CCTV를 살펴보던 중 결정적인 단서를 하나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박씨 할머니는 가방을 가지고 센터에 방문하신 적이 없다는 사실. L씨의 의심이 확신으로 변할 무렵, 점심을 먹고 들어온 동료 직원이 조용히 귓속말을 건넵니다. “저 어르신 치매 진단 받으셨어요.” ‘역시!’ 이제야 비로소 L씨는 상황을 말끔히 이해한 듯 합니다. 그 날 이후 L씨와 박씨 할머니 사이에는 몇 가지 변화가 생깁니다. L씨는 이전과는 달리 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말투로 박씨 할머니를 대하기 시작했고, 간간이 박씨 할머니의 말을 중간에 자르기도 합니다. 이후 L씨의 ‘탁월한 소통기술’ 덕에 박씨 할머니로 인한 소란은 그때그때 금세 해결되는 듯해 보입니다. 박씨 할머니는 그 날 이후 L씨와 할머니 사이에서 일어난 변화를 알아차리셨을까요?

의학의 발달 덕분에 우리는 ‘가방 도난사건’의 전모를 밝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치매 노인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는 듯 합니다. 치매어리석을 치, 미련할 매, 癡呆의 한자 뜻 그대로 치매 노인을 바라보기 이전에, 잠시 선입견을 내려놓고 치매 노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요? 치매라는 진단명에 가려진 치매 노인의 목소리에 주목했던 한 최신 연구를 여러분들께 소개 드리겠습니다.

 

그들도 스스로 변화를 알아차리고 있었습니다

Trindade와 동료 연구자들2022은 브라질 내 주간보호시설에 다니는 노인 중 의사에게 치매 진단을 받은 노인 총 9명을 대상으로 질적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연구자들은 치매 증상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일상 속의 변화를 인지기능, 감정변화, 사회적 관계와 같은 하위 주제로 나눈 후, 인터뷰를 통해 참가자들이 이와 같은 변화를 일상에서 실제 인지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먼저, 연구에 참여한 노인들 모두 기억력 손상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습관적으로 약 복용 시기를 잊거나, 부엌에서 행주의 행방을 찾아다니거나, 본인의 생일을 잊어버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고 응답하였습니다. 한 참가자는 동생의 집에서 함께 수다를 떨다가 집에 갈 때 즈음 오늘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하나도 기억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기억력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고 응답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증상에 대한 평가는 참가자들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평소 기억력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큰 불편을 느끼지는 않으며,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으로 받아들인다고 응답한 참가자가 있는가 하는 반면, 증상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참가자도 있었습니다.

둘째, 감정의 변화를 인지하는 참가자들이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예전보다 기쁨, 슬픔, 불안, 분노 총 4가지 감정을 더 많이 느끼는지 질문하였습니다. 기억력 손상과는 달리 일부 노인들에게서 감정의 변화를 인지하고 있다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한 참가자는 기억력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 때문에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고 응답하였으며, 다른 참가자는 같은 이유로 분노까지는 아니지만 걱정이 된다고 응답하였습니다. 이전보다 더 행복하다고 응답한 참가자는 이전보다 가족과 가까이 살게 된 것을 이유로 꼽았습니다.

셋째, 사회적 관계 안에서의 변화를 인지하는 노인들이 있었습니다. 한 노인은 의사 앞에서 엉뚱한 소리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진료 예약을 꺼리게 된다고 응답하였으며, 다른 노인은 비슷한 이유로 대중 앞에서 말하기를 망설이게 되었다고 응답하였습니다. 또 다른 참가자는 누구가 자신에게 말을 걸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해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이 즐겁지 않다고 응답하였습니다.

스스로 변화에 대응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노인들이 위에 소개된 일상 속 변화에 저마다의 방법으로 대응하려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요리 레시피를 잊어버렸을 때에는 주변인들에게 직접 물어가며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혹시 사람들 앞에서 엉뚱한 행동을 하지는 않을까 본인 스스로를 계속 감시하거나 주변인들을 살피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감정적 동요가 일어날 때에는 ‘OO야, 침착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본인만의 대응방식을 찾아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이전에 비해 줄어든 사회적 관계를 가까운 이웃 혹은 가족과 함께 보내면서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본 연구는 브라질에서 이루어진 연구이기 때문에 특정 문화적 배경에 제한된 관점과 경험들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연구자들은 설정한 몇 가지 주제에 관련된 일상 속 변화에 관해 질문했기 때문에 이외의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후속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면...

하지만 이러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Trindade와 동료 연구자들은 노인들이 일상 속에서 치매 증상으로 인한 변화를 인지하고 있으며, 각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질적 연구를 통해 자세하게 밝혔다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변화에 슬기롭게 대응하는 노인들의 모습 속에서 치매(어리석을 치, 미련할 매, 癡呆)라는 단어는 다소 어색해 보입니다.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실마리는 아마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들의 목소리에 있지 않을까요? 주변에 치매 노인을 만날 기회가 있으시다면, 잠시 치매에 대한 선입견을 내려놓고, 어르신의 말씀에 귀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요? mind

[감수: 중앙대 심리학과 김기연 교수]

    <참고문헌>

  • Trindade, P. G. E., Johannessen, A., Baptista, M. A. T., Maffiolletti, V., & Dourado, M. C. N. (2022). ‘I do not enjoy too much being with people, it takes me a long time to interact’: a qualitative analysis of awareness of relationships in people with dementia. Aging & Mental Health, DOI: 10.1080/13607863.2022.2084503.
임준엽 중앙대 심리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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