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말이 되어버린 재택근무
전래 없는 감염병 위기로 인해 자가 격리 및 사회적 거리 두기 등, 경험해 보지 못한 전대 미문의 사건들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일터’에서의 업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원격 및 재택근무이다. 워낙에 인터넷과 모바일 통신이 발달한 탓에 직장에서 동료들과 처리하던 업무들이 적어도 사무직군의 경우 집에서도 충분히 처리 가능하다고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 그 배경이 되었다.
사무실을 벗어난 원격 및 재택근무는 적어도 단기적인 효율성에 있어서 사무실 근무와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은 인정받은 듯하다. 정상 출근이 가능해진 현재에도 원격이나 재택근무를 부분적으로 활용하는 기업들이 여전히 많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물론 이는 협업 근무가 꼭 필요치 않은 일부 사무직이나 연구직군에 한정되겠지만 적어도 이를 허락한 직업군의 경우 원격이나 재택근무가 반드시 업무 성과의 저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 듯 싶다.
환경은 기억과 같은 인지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다만 인지심리학자 입장에서는 향후 정해진 ‘일터’를 벗어난 원격 및 재택근무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 근거는 인간의 기억 수행에 관한 고전적 이론들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부호화 특정성 원리encoding specificity principle 및 전이적절성 이론transfer appropriate theory 등 상태 혹은 맥락의존적 기억state or context-dependent memory을 강조하는 기억 이론들은 기억이 형성되고 인출되는 과정에서 기억 정보가 습득되고 인출되는 맥락 단서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는 기억 연구자들에 의해 그 타당성이 어느 정도 입증된 원리들로서 환경적 맥락 그리고 그 환경과 상호작용한 개인의 심리사회적 경험이 학습과 기억 수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와 관련해 인지심리학자인 Alan Baddeley(1975)는 오래 전 흥미로운 기억 실험을 실시한 바 있다. 그는 잠수부들로 하여금 잠수하기 전 육상에서 여러 단어쌍word pairs들을 암기시킨 뒤, 그들이 바닷속에 잠수한 상태에서 이 단어쌍들을 회상하도록 요구했다(육상-잠수 집단). 한편 이와는 반대로 또 다른 잠수부들에게는 바닷속에 잠수한 상태에서 여러 단어쌍들을 암기한 후 육상의 일상으로 돌아온 상태에서 이 단어쌍들을 회상하도록 요구했다(잠수-육상 집단). 각 집단은 그들이 암기한 단어쌍들과 동일한 단어쌍들을 육상에서 암기하고 역시 육상에서 회상한 대조군(육상-육상 집단) 및 잠수한 상태에서 암기하고 잠수한 상태에서 회상하는 대조군(잠수-잠수 집단)과 회상 수행 면에서 비교되었다. 그 결과 대조군인 집단에 비해 육상-잠수 혹은 잠수-육상 등으로 기억 당시의 환경적 맥락과 회상 당시의 맥락이 달랐던 잠수부 집단의 회상 수행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것을 발견했다.
일터라는 환경, 쉼터라는 환경
Baddeley의 실험 결과는 적어도 기억이 형성되던 시점의 환경적 맥락이 회상 시점의 맥락과 일치할 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기억 수행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는 맥락의존적 기억의 증거를 제시하는데, 여기에 내가 재택근무와 관련해 우려하는 점이 드러난다. 즉 일터와 쉼터는 어느 정도 구분될 필요가 있는데, 그 이유는 일터라는 환경이 제공하는 맥락 정보와 쉼터라는 환경이 제공하는 맥락 정보가 대개 분명하게 구분되기 때문이다.
특히 내 직장, 내 사무실, 내 자리, 내 책상에서 일한다는 것은 환경적 맥락뿐만 아니라 개인이 환경 및 다른 개인과 상호작용하면서 생성되는 많은 심리사회적 맥락을 내포한다. 출근하기 위해 기본적인 개인위생과 옷차림을 정비하는 과정, 가족들과의 식사 및 서로 간의 인사 그리고 통근 절차 및 출근 이후 정해진 사무 수행과 협업, 마무리에 해당하는 퇴근 절차까지, 이 모든 것들은 환경적 맥락과 개인의 심리사회적 상호작용의 결과물이 모두 뒤섞인 그야말로 매우 복잡한 맥락 단서들에 해당된다. 이러한 중요한 맥락 정보들이 대다수 결여된 내 쉼터 즉 집에서도 역시 동일하게 제공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적어도 앞서 Baddeley의 실험 결과에 비추어 볼 때 나로서는 그 타당성을 믿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당신은 어느 곳에서 일하기를 원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재택 근무를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다. 출퇴근하는 시간이 절약되고 함께 머무는 가족들과 잠깐씩의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특별히 협업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과 함께 사무실에 뒤섞여 있지 않아도 된다는 점 등 여러 장점들이 내 우려를 압도하는 상황이다. 다만 솔직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거리두기 상황과 같은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고 쉼터인 집에서의 업무가 일터만큼의 효율성을 내고 있는가? 나는 왜 아직도 사무 공간으로의 물리적 복귀를 주저하고 있는가? 나는 정말 내 능력을 모두 활용한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가? 재택근무로 인해 자신의 능력이 100% 발휘되지 못할 수 있다면 그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여하튼 고민해 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mind
<참고문헌>
- Godden, D. R., & Baddeley, A. D. (1975). Context-dependent memory in two natural environments: On land and underwater. British Journal of Psychology, 66(3), 325-331. https://doi.org/10.1111/j.2044-8295.1975.tb01468.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