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나이가 들어갈 때, 우리는 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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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나이가 들어갈 때, 우리는 늙는다.
  • 2022.10.11 21:37
당신은 당신이 느끼는 만큼만 늙었다. 정말 스스로 체감하는 연령이 노화에 영향을 줄까?

내 나이가 어때서?

자신의 나이를 잊어버리게 된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심리학자이자 작가인 웨인 다이어Wayne Walter Dyer는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조깅하러 나갔다. 그런데 그들 앞에 나지막한 울타리가 있었다. 그가 그 울타리를 뛰어넘으려 하자, 아내가 소리쳤다. “위험해요, 뛰어넘을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는 이미 울타리를 뛰어넘은 뒤였다. 나중에 그의 아내는 이야기했다. “당신이 그 울타리를 뛰어넘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신 나이가 쉰다섯이잖아요.” 웨인 다이어는 “그 나이인 걸 깜빡 잊었소.”라고 대답했다.

올해 95세를 맞이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올해의 노익장 상the Oldie of the Year Awards’을 수상하였으나 자신은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며 이를 거절하여 화제가 되었다. 그러면서 “당신은 당신이 느끼는 만큼만 늙었다.(You are only as old as you feel.)”라는 말을 덧붙였다. 과연 정말로 그럴까?

 

마음의 시계를 돌리다

이에 대한 답이 되어 줄 수 있을 만한 유명한 실험이 있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엘렌 랭어Ellen Langer 교수는 1979년에 75~80세 노인 8명을 외딴 시골에 모아 단 두 가지의 규칙을 주었다. 하나는 1959년으로 돌아가 그 시대를 사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집안일을 직접 하는 것이다. 그 시절의 음악을 틀어주었고 당시 영화와 잡지, 포스터를 곳곳에 두었다. 그들은 대화 주제는 물론 실제 생활도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행동해야 했다.

처음에 노인들은 내켜 하지 않았지만 직접 쓰레기봉투를 내다 버리고 짐도 나르며 스스로 소매를 걷어붙이며 몸을 썼다. 그리고 일주일 후 보호자의 도움 없이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노인들이 혼자 옷을 입고, 계단을 내려가고, 식욕도 크게 늘었다. 그들의 몸과 마음이 마치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 실험은 『마음의 시계 연구』Counterclockwise study라 이름 붙여지며 한국에서도 책으로 출판이 된 바 있다.

'나이 듦'이 '늙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웨인 다이어의 일화와 엘렌 랭어의 실험은 우리에게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보여주며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어준다. 그렇다. 나이는 단지 살아온 기간만을 의미할 뿐, ‘나이 듦’이 ‘늙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이에 따라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노화를 겪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 따라 지극히 주관적인 노화 과정을 경험한다. 따라서 단순히 태어난 연도를 기준으로 세는 나이, 즉 ‘생활연령chronological age’을 노화의 절대적 기준으로 바라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최근에는 스스로 느끼는 연령을 의미하는 ‘주관적 연령subjective age’, 그리고 신체 기능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생물학적 연령biological age’ 등 다양한 연령 개념이 제시되며 노화에 대한 통합적인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많은 연구에서 주관적 연령은 건강한 노화를 예측하고 설명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자신의 나이보다 젊다고 느낄수록 좋은 인지 기능과 신체적 건강Stephan et al., 2014, 활발한 사회활동Baltes & Smith, 2003, 낮은 수준의 우울Keyes & Westerhof, 2012을 보였다. 이처럼 주관적 연령에 대해 분석하는 것은 건강한 노화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본 논문 리뷰에서는 그중에서도 후생유전학epigenetics 관점에서 주관적 연령을 더 높게 느낄수록 생물학적 노화가 가속된다는 결과를 보고한 최신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Stephan et al., 2021.

주관적 연령과 후생유전학 시계 간의 연관성

Stephan과 동료 연구자들은 미국의 건강과 은퇴에 관한 연구HRS, Health and Retirement Study에 참여한 50세 이상 2,253명을 대상으로 주관적 연령과 ‘후생유전학 시계epigenetics clock’ 사이의 연관성을 조사했다. 참여자들에게 “당신은 몇 살이라고 느끼고 계세요?”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기초로 주관적 연령을 평가했다. 스스로 체감하는 연령에서 생활연령을 뺀 점수를 다시 생활연령으로 나누어 점수를 얻었다.

양수 값은 실제 연령보다 더 나이 든 주관적 연령을, 음수 값은 더 어린 주관적 연령을 나타냈다. 예를 들어, 만 72세의 노인이 본인이 61세로 느끼고 있다면 주관적 연령 값은 -.15로 생활연령보다 약 15% 정도 젊게 느끼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후생유전학 시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화학적으로 DNA를 변화시키는 ‘DNA 메틸화’를 추적해 혈액과 다른 조직들의 노화를 계산해 낸다. 즉, 메틸레이션Methylation을 기반으로 하여 유전자의 나이 및 생명의 길이를 예측하는 것이다. 후생유전학 시계 측정은 HRS가 수집한 혈액 샘플을 통해 세포 조직과 9가지 면역기능(예: 알칼리 인산 분해 효소, 혈청 포도당, 적혈구 분포 폭, 백혈구 수)을 기준으로 평가된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인구통계학적 요인을 통제한 후에도 주관적 연령은 후생유전학 시계와 정적 연관을 보였다. 이는 주관적 연령이 더 높을수록, 더 빠른 후생적 노화와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놀라운 점은 후생적 노화와 연관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생활연령, 인종의 차이 보다도 주관적 연령과 후생적 노화의 연관성이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또한 추가 분석을 통해서 주관적 연령과 후생유전학 시계 사이에 건강 관련 요인과 염증 수치가 매개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즉, 주관적 연령이 높은 경우, 주관적 건강상태를 나쁘게 평가하고 혈액 염증수치CRP가 높아져 후생적 노화를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본 연구는 대규모 표본의 바이오마커를 분석하여 연령과 노화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제공하고 있지만, 상호관계 역시 존재할 수 있기때문에 빠른 후생적 노화가 높은 주관적 연령을 예측할 수도 있다는 점과 미국 표본 만을 사용하여 여러 문화권에 적용하기가 어려운 점이 아쉽다.

마음은 노화를 늦춘다

이처럼 심리적 요인과 생물학적 요인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본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심리적 요인은 실제 노화를 늦추기도 하며 가속화 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건강한 노화를 위해서 심리적 연령, 즉 주관적 연령을 낮추는 것이 좋은 방안이 되어 줄 수 있다.

그렇다면 주관적 연령을 낮추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연령과 관련된 고정관념을 해소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널리 보급할 필요가 있다. 해마를 확장시키고 뇌 건강을 증진시킨다고 알려진 명상도 주관적 나이를 낮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김상은, 2019. 또한 노인에 대한 법정 연령 기준 만 65세에 대해서도 유연한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노인실태조사2020에 따르면, 노인이 생각하는 ‘노인 연령’은 ‘70세 이상’이 응답자의 74.1%로 나타났다. 만 65세가 넘을지라도 스스로 노인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수도 없이 물어왔다. 이제부터는 종종 마음의 나이를 물으며 상대방의 마음을 바라봐 주었으면 한다.

그럼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당신 마음의 나이는 몇 살입니까?" mind

[감수: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김기연 교수]

    <참고문헌>

  • 김상은 (Nov. 11, 2019). 젊다는 자기암시, 뇌를 건강하게 만든다 (연구). Retrieved August 26, 2022, from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7452
  • 이윤경, 김세진, 황남희, 임정미, 주보혜, 남궁은하, ...  김경래 (2020). 2020 년도 노인실태조사.
  • Baltes, P. B., & Smith, J. (2003). New frontiers in the future of aging: From successful aging of the. young old to the dilemmas of the fourth age. Gerontology, 49(2), 123-135.
  • Keyes, C. L., & Westerhof, G. J. (2012). Chronological and subjective age differences in flourishing. mental health and major depressive episode. Aging & Mental Health, 16(1), 67-74.
  • Pagnini, F., Cavalera, C., Volpato, E., Comazzi, B., Riboni, F. V., Valota, C., ... & Langer, E. (2019). Ageing as a mindset: a study protocol to rejuvenate older adults with a counterclockwise psychological intervention. BMJ open, 9(7), e030411.
  • Stephan, Y., Caudroit, J., Jaconelli, A., & Terracciano, A. (2014). Subjective age and cognitive functioning: A 10-year prospective study. The American Journal of Geriatric Psychiatry, 22(11), 1180-1187.
  • Stephan, Y., Sutin, A. R., Luchetti, M., & Terracciano, A. (2021). An older subjective age is related to accelerated epigenetic aging. Psychology and Aging, 36(6), 767-77
유수하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석사과정
노년기의 심리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차지하는 노년기의 의미를 찾고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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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 2022-10-26 21:10:31
너무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