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보다, 마음을 보다 (feat. 인별 속 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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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보다, 마음을 보다 (feat. 인별 속 바프)
  • 2022.09.16 00:30
오늘도 허기를 누르며 근육에 힘을 쏟는다. 며칠 남지 않았다. D-5 며칠 후면 자랑스런 나의 바디프로필 사진을 업로드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난 이렇게 힘들게 그 사진을 SNS 올리려고 하는걸까?

많은 사람들이 운동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특히, 무엇이든 한 번 하면 끝장을 보는 한국인들의 특성상 대충하는 법은 없다. 자전거를 타도 선수용 유니폼에 선수급 장비를 착용한 채 전국의 자전거 도로를 섭렵하고, 헬스를 해도 헬스클럽 가는 것을 넘어 집까지 홈트레이닝 센터로 만든다.

그들에게 운동이란

몸에 관심을 가지고, 운동으로 관리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최근 운동하는 사람들, 특히 MZ세대들에게는 운동의 정의가 조금 달라 보인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운동이란 몸을 움직이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남들과 공유하는 것으로까지 확대되는 느낌이다. 자신들이 운동하는 모습, 그리고 운동의 결과인 자신의 근육질 몸을 SNS에 이미지 혹은 영상으로 올리는 것에 진심이다. 심지어 운동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바디 프로필 사진이 SNS의 프로필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왜 그들은 자신의 몸을 열광적으로 공유하는 것일까?

나는 내가 누군지 알고 싶고, 보여주고 싶다

SNS의 프로필 사진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고자 하는 성향을 보인다. “그깟 프로필 사진에 정체성씩이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온라인 세상 속에서 이는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게임 캐릭터를 위해, 가상현실 속 자신의 아바타를 위해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산다. 단순히 청소년기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 안에서 나는 남과 너무 다른 사람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너무나도 다른 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하지만 다른 구성원들과 너무나 비슷해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남과 차별되는 내가 없다면 나의 존재는 증명될 수 없다. 따라서 중용의 도라고 할 수 있는 정체성 찾기 여행은 평생의 숙제가 된다.

 

[그림 1] 내 몸이 다비드였다면...
내 몸이 다비드였다면...

 

그렇다면 내가 나임을 나타내는, 즉 나의 정체성과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된 정보는 무엇일까? 바로 몸이다. 내 얼굴로, 내 헤어스타일로, 내 체형으로 내가 나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문제는 내 몸을 스스로 직접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얼굴은 물론이요, 몸도 나의 전체 체형을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인류는 매우 오래 전부터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데 전력을 다했다. 물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으로 만족할 수 없어서 거울을 만들었다. 최초의 거울은 흑요석이라는 돌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흑요석을 열심히 갈면 표면이 번들번들 해지면서 거울 역할을 한다고 한다. 잠시만 상상해 보자 스스로의 모습을 보겠다고 열심히 돌을 연마하고 있는 우리네 조상들의 모습을. 그만큼은 우리는 보고 싶었던 것이다. 스스로의 모습을.

하지만 억울하게도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스스로의 모습을 정확하게 볼 수 없다. 상점에서 어울렸던 옷이 집에 와서 입어보면 영 어울리지 않게 보이는 것처럼, 대부분의 거울은 어느 정도 왜곡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최근 거울을 대신하는 핸드폰의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카메라가 정확하다면, 우리가 특정 회사의 핸드폰이 사진이 잘 찍힌다며 선택하는 일은 없었을 테니.

SNS 프로필 사진 속에는 내가 있다

이런 인간에게 SNS 프로필 사진 속 모습은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내 모습이다. 특히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통제 가능하다는 장점도 덧붙는다. 거울을 볼 때마다 달라지는 내 모습이 아니라 언제나 변함없는 나의 얼굴. 어제 밤 라면을 야식으로 먹어도 전혀 붓지 않는 완벽한 얼굴이다. 그래서 SNS 프로필 사진 속 나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나를 표현하고 싶어 한다.

특히 최근에는 오프라인의 상호작용 못지않게 온라인 상호작용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온라인 상호작용에서 내 자신을 시각화하는 프로필 사진의 중요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프로필 사진은 단순히 나의 신원을 알려주는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프라인 상호작용에서 우리가 얼굴과 몸을 통해서 상대방의 신원뿐 아니라 성별, 인종, 매력, 나이, 현재의 마음 상태, 행동 의도 등 다양한 사회적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 역할을 온라인에서는 SNS 프로필 사진이 하는 셈이다. 실제 다수의 연구들은 SNS 프로필 사진을 통해 타인들은 그 주인에 대해 상당히 많은 정보를 얻어내며, 생각보다 그 정확도가 높다고 한다.

 

피카소의 '만돌린을 든 소녀'(1910). 대상을 해체하여 그 본질에 접근하고 싶었던 피카소.
피카소의 '만돌린을 든 소녀'(1910). 대상을 해체하여 그 본질에 접근하고 싶었던 피카소.

 

몸의 가치, 공정함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몸, 특히 운동으로 다져진 몸의 사진은 썩 괜찮은 콘텐츠이다. 식스팩이 선명한 복근의 몸을 가진 사람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멋있다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관리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몸은 정직하다. 열심히 꾸준하게 운동을 하고, 음식의 유혹을 이겨내고 절제를 해야 식스팩을 가질 수 있다. 얼굴이 화장으로, 헤어스타일로, 포토샵으로, 필터로, 성형 수술로 도움을 얻어 관리할 수 있는 반면, 몸은 그렇지 않다. 내가 근육을 움직이고, 피하 지방의 축적을 막아야 근육질의 몸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의미로 몸은 정직함을 넘어 공정함이 된다. 그 공정한 세상에서 식스팩이라는 성과를 얻어낸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인 셈이다.(오해를 줄이기 위해 슬프지만 고백한다면 필자는 식스팩이 물론 없다.) 그러니 자랑스럽게 자신의 프로필 사진에 자신의 복근을 노출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공유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깟 몸이 뭐가 중헌디. 중요한 건 내면이야!” 하지만 지금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의 내면을 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외모가 빼어난 사람이 모든 측면에서 우수할 것처럼 지각되는 현상인, ‘외모의 후광효과를 생각해보자. 우리가 타인을 판단할 때 얼마나 외적인 것에 의존하는지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비딱하게 말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SNS에 올라온 바디 프로필을 보고, 더 이상 몸 자체만을 보는 대신 그 속의 마음을, 그 몸을 만들기 위해 들인 노력을 보면 어떨까. 몸에서 마음을 보자.

PS. 심리학자로 기우를 섞어 한마디 보태자면, 그렇다고 해서 너무 바디 프로필 사진에 집착하지도 말자. 바디 프로필에 찍힌 모습은 순간적인 진실이 될 가능성이 높고, 실제의 모습과의 괴리는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한다. 오늘도 열심히 운동하는 당신의 마음에 치얼스. mind

※ 본 기사는 교수신문과 공동 기획으로 진행하는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의 첫 번째 주제, '몸'에 관한 기사입니다. 해당글은 교수신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인지심리 Ph.D.
연세대 심리학과에서 학, 석사를 마치고, Yale University에서 심리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이후 Boston University와 Brown University에서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거쳐 현재 한림대 심리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 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만화, 아이돌, 스포츠를 지각 심리학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평생 덕질을 하듯 연구하며 사는 것을 소망하는 심리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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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2-09-17 16:06:55
중간의 합성 넘 웃겨요 ㅋㅋ

그라샤 2022-12-20 00:53:26
글의 내용이 전혀 공감이 가질 않네요.
한 마디로 외형을 가꾸자는 건가요?
교수님이 잘 모르셔서 그렇지 요즘은 몸에도 많은 시술들을 합니다. 비단 운동으로만 이뤄진 몸들이 아니라는 거죠.
미안하지만 심리학자 치고는 글의 수준이 높진 않아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