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성격 유형 검사의 광풍
“교수님 MBTI 유형은 뭐예요?”
올 들어 학생들이 나에게 종종 하는 질문이다. 작년까진 나의 MBTI 유형을 묻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는데, 2022년엔 이런 질문을 벌써 몇 번이나 받았다. MBTI의 인기가 심상치 않음은 알고 있었으나, 이 정도인 줄이야... 성격심리학자에게까지 MBTI 유형을 물어보다니 말이다.
최근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열풍을 넘어 가히 광풍이라 불릴만한 인기를 얻고 있는 MBTI는 4쌍의 알파벳 조합을 사용해 성격을 16개 유형으로 나누는 성격유형 검사이다. 요즘은 방송이나 인터넷, 주변 사람들 등으로부터 MBTI 이야기를 한 번도 안 듣고는 하루가 지나가지 않을 정도로 이다.
MBTI에 대한 사회 차원의 과몰입
특히 MZ세대를 주로 겨냥한 상품이나 마케팅에 MBTI가 많이 보인다. 어느 날 편의점에서 맥주캔에 MBTI 유형을 구성하는 8개의 알파벳이 각각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자신의 MBTI 유형에 맞게 골라 마시라는, 그리고 한 캔 보다는 네 캔을 사라는 의도일 것이다. 온라인 상의 마케팅이나 제품 홍보에는 MBTI 유형 검사를 변형시킨 이벤트들이 심심치 않게 활용된다. 좀 과하다 생각했던 것은 번화가에서 발견한 MBTI 유형 별 점괘를 뽑기였다. 조만간 MBTI 유형 별 오늘의 운세도 생기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
올해 초, 대통령 선거 기간엔 대통령 후보들의 MBTI 성격 유형이라는 흥미성 컨텐츠가 방송되기도 했다. MBTI에 대한 사회 차원의 ‘과몰입’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이다. 성격 심리학자로서, 성격 측정 도구로 사용되기에는 많은 한계점을 지니는 MBTI가 너무 과도한 관심을 받는 현 상태가 걱정스럽긴 하지만, 마케팅이나 시청률 끌어올리기 등에 사회적인 트렌드를 적용하는 것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MBTI 유행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심하게 우려되는 현상들도 있다. 얼마 전, MBTI를 실제로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근거로 활용하고, 이 평가를 바탕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중견 기업 중 23곳에서 직원 채용 시 입사 지원서에 MBTI 정보를 요구했다는 뉴스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치열한 취업 전쟁을 치르는 젊은이들이 능력과 경력, 자격 요건 등 정당한 근거가 아닌,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MBTI 성격 유형을 바탕으로 평가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MBTI 성격 유형이 개인의 직무 적합성이나 입사 후의 업무 능력에 대해서 유의미하고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증거가 없기에, 이를 채용 평가에 반영하는 기업에게도 손해임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사회적 동물이기에…
MBTI 성격 유형 검사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으므로Pittenger, 2005 굳이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으려 한다. 이 글의 관심은 바로 “왜”이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까지 MBTI에 열중할까? 단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기 때문이라면, MBTI의 정확성 문제와는 별개로, 한 번의 테스트로 해결될 일이다. 그런데 MZ 세대들은 자신의 성격에 대한 정보를 얻은 데에 그치지 않고 서로의 유형을 묻고, 결과를 공유하며, 재미있는 관련 컨텐츠들을 가지고 끊임 없이 소통한다. 어찌 보면 이들은 자신의 성격을 파악하고자 하는 목적 자체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즉 MBTI를 사회적 연결의 도구로써 더 많이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호작용 도구로써의 MBTI
실제로 우리 연구실에서 실시한 연구 결과는 MBTI가 상호작용의 도구로써 활용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권가영, 임낭연, under review. 자기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또는 단순히 재미로 MBTI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 보다는 사회적 목적으로, 즉 타인을 파악하고, 사회적 유행에 동참하고 사람들과 원활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MBTI 검사를 한다고 응답하는 사람들이 MBTI를 더 신뢰하고, 더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즐기고 좋아하는 경향인 외향성이 높은 사람들은 사회적인 목적으로 MBTI를 사용할수록 행복 수준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과 아주 잘 소통할 수 있는 좋은 도구를 얻은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MZ세대가 MBTI에 열광하는 것은 결코 새로운 사회적 현상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드라마를 보아야 다음 날 사람들과 말이 통하기 때문에,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TV 드라마를 챙겨 보던 이전 세대의 모습과 같은 차원의 행동이다. 뼛속까지 타인과 연결되기 원하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사회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보이는 다양한 행동 중 하나인 것이다. 이런 경향이 유행하는 SNS 챌린지에 동참하고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는 것이 일상인 MZ세대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 선을 넘지는 말자
학생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실제로 MBTI는 훌륭한 아이스 브레이커이자 대화의 수단이다. 처음 만나 어색해 하던 학생들이 서로 MBTI를 묻고 답하며 금세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러나 그 정도 선에서 그치면 좋겠다. 자기 자신을 4개의 알파벳으로 만든 ‘타입’이라는 작은 틀 안에 맞추고 욱여 넣으려 노력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또한 타인을 MBTI 유형이 ‘규정’해 주는 유형에 맞추어 손쉽게 다 파악했다고 넘겨 짚지도 않았으면 한다. 인간은 그보다 복잡한 존재이니까.
다시 학생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나에게 MBTI 유형을 물어 본 학생에게 나는 이렇게 답해 주었다. 나는 E와 I의 측면을 조금씩 다 갖고 있고, N스럽기도 S스럽기도 하며, 때론 T같으나 또 한 편으론 F 같고, J적이기도 P적이기도 하다고. mind
<참고문헌>
- Pittenger, D. J. (2005). Cautionary comments regarding 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 Consulting Psychology Journal: Practice and Research, 57(3), 210–221
※ 본 기사는 교수신문과 공동 기획으로 진행하는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의 두 번째 주제, 'MBTI'에 관한 기사입니다. 해당글은 교수신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