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학교를 정글로 만들고 있는가: 가성비에 대한 관심이 아이들의 교육을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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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학교를 정글로 만들고 있는가: 가성비에 대한 관심이 아이들의 교육을 망친다
  • 2023.01.27 11:19
투입대비 최대의 효과를 내는 '가성비'가 교육의 중심을 차지한 오늘. 과연 학교를 정글로 만들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유치원의 아웃풋 그리고 가성비

이제 여섯 살이 된 아이의 유치원을 두고 대학입학 원서를 낼 때보다 더 치열한 고민을 한 것 같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가능한 한 영어유치원을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준비 없이 해외로 이주해 오랜 고생을 했던 경험 탓이다. 언어습득에는 어린 시절에 해당되는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결정적 시기 가설Critical period hypothesis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막상 영어유치원은 생각과는 다른 곳이었다. 그곳은 아이들이 영어로 즐겁게 놀고 연령에 맞는 교육을 받는 곳이기보다 영어를 조기에 학습하기 위한 영어학원에 더 가까웠다. 나는 동네에서 최대한 놀이식을 표방하는 영어유치원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요즘은 가성비가 떨어지는 탓에 놀이식은 학부모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유치원 치고 큰 비용을 내고 보내야 하는 탓에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졸업하며 영어로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다면 손해이다. 그래서 아이는 유치원을 졸업할 즈음 영어로 듣고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책을 읽고, 일기 정도는 혼자 쓸 줄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아웃풋이라 하고, 비용이 적지만 아웃풋이 많고 좋을수록 가성비가 좋다고 여겨진다. 놀이식은 이 가성비가 떨어지는 탓에 인기가 없는데, 실제로 내가 보내고자 했던 놀이식 영어유치원은 지난 여름, 학생이 없어 문을 닫았다.

놀이식의 반대편에는 학습식영어유치원이 있다. 이런 곳은 유치원 아이들을 대놓고 공부시킨다. 숙제도 많고 테스트도 있다. 학습식 영어유치원에서는 레테라 불리는, 레벨테스트도 흔하다. 이 레테를 통과하지 못하면 미안하지만 입학을 할 수가 없다. 5세에 처음 입학하려는 아이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동네에서 유명한 학습식 영어유치원의 원장은 아이들이 집에 가면 놀이터에서 한두 시간 정도는 무조건 놀아야 한다는 말을 입학설명회에서 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곳의 스트레스를 견디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관련 카페에서 자연스럽게 오고 가는 가성비, 레테, 아웃풋과 같은 단어들 사이에서 이것이 무한 입시경쟁의 시작임을 느낄 수 있었다.

영어유치원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엊그제 어린이집을 고민하던 아기 엄마에서 정글과 같은 입시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예비수험생의 엄마가 된 듯했다.

김홍도의 「서당」. 회초리를 맞고 울고 있는 아이가  슬퍼 보이지 않는 것은 안쓰스러운 표정의 훈장 선생님 때문일까? 누가 학교를 정글로 만들까?
김홍도의 「서당」. 회초리를 맞고 울고 있는 아이가 슬퍼 보이지 않는 것은 안쓰스러운 표정의 훈장 선생님 때문일까? 누가 학교를 정글로 만들까?

양육의 최종 목표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가. 오은영 박사는 말한다. 아이를 양육할 때의 최종 목표는 아이가 스스로의 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 독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에 더해 자신은 아이가 마음이 편한 사람으로 크는 게 목표였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며 나는 예전에 재직했던 학교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 학교는 학습적인 면에서 상위 1%에 해당되는 아이들이 오는 학교 중 하나였다. 국가의 리더를 키운다는 설립이념을 지닌 그곳에서 내가 1학년 아이들에게 많이 했던 이야기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자기 쓰레기는 자신이 치우자는 이야기였다. 각 선생님에게 교실이 배정되어 아이들이 수업에 따라 움직이며 들락날락 하는 일이 잦은 탓이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기숙사 생활을 하며 주변을 정돈하는 것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고학년에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1학년 학생들의 경우에는 수업이 끝나고 간 자리에 쓰레기가 널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국가의 리더를 키우는 학교에서 자기의 쓰레기는 스스로 치우자는 말을 이렇게 자주 해야 하다니, 아무리 1학년이라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이 아니지 않은가. 답답함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상담실에서 아이들의 깊은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자신이 남긴 쓰레기는 치우고 가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지 않는 것쯤은 약과에 불과했다. 아이 성적에 대한 기대나 진로에 대한 강요가 비인간적일 정도로 강한 부모 밑에서 심한 압박에 시달리는 아이들도 꽤 있는 편이었고, 반대로 내 자식만 좋으면 혹은 내 자식 성적만 좋으면 됐다는 식의 부모도 종종 있었다. 친구를 괴롭히거나 갈등을 빚어도 상대방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별 게 아니라거나 아이라 그럴 수도 있다는 식이었다.

막상 정글에서 살았던 모글리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학교는 정글보다 더 무서운 곳이다.
막상 정글에서 살았던 모글리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학교는 정글보다 더 무서운 곳이다.

아이들의 현재를 쥐고 있는 부모가 정글을 만든다

누가 학교를 정글로 만드는 것일까?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 부모들이라고 답하고 싶다. 물론 기억에 남을 정도로 귀감이 되어 주신 멋진 부모도 여럿 만났다. 모든 부모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사람 사이에서라면 일어날 수 있는 보통의 수준을 넘어서는, 학교를 정글 같은 곳으로 만드는 갈등 뒤에는 예외없이 아이들의 부모가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부과하는 비인간적인 기대나 압박, 과잉보호 등은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해 나갈 때 결국 서로를 뜯고 뜯기는 식으로 작용한다.

세계적인 언어-인지심리학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는 그의 저서 『빈 서판』blank Slate, 2017에서 부모의 양육으로 인해 아이들을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는 자신만의 타고난 자질이 있으며, 부모보다는 또래집단의 영향을 더욱 강하게 받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년기 시절, 부모가 자녀에게 행사할 수 있는 힘은 절대적이라는 점에 대해 이견을 달 사람은 별로 없다. 발달심리학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 중 하나의 저자인 주디스 리치 해리스 또한 부모는 아이들의 미래를 쥐고 있지는 않지만, 현재를 쥐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아이들의 현재를 아주 비참하게 만들 힘도 쥐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부모로서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이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부모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거나 입시, 직업적 성공과 같은 것들의 중요성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이들을 일류대학을 나와 잘먹고 잘사는 어른으로 키워 내기 위해 몰두하는 동안 아이들은 상처받고, 또 받은 상처의 화살을 주변으로 돌리며 정글이 되어버린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큼, 혹은 그보다 더욱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정신적 건강함이라는 사실을 (나부터) 잊지 않으면 좋겠다. mind

※ 본 기사는 교수신문과 공동 기획으로 진행하는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의 세 번째 주제, '학교정글'에 관한 기사입니다. 해당글은 교수신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김여람 ‘민사고 행복 수업’ 저자 사회 및 성격심리학 MA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지난 4년간 심리학 교사로 재직하였다. 행복을 주제로 하는 긍정심리학, AP심리학(심리학개론), 선택교과심리학, 사회심리세미나, 심리학논문작성 등의 수업을 진행하였으며 진학상담부 상담교사로서 아이들과 많은 고민을 나눴다. 저서로는 '민사고 행복 수업(2019)', '2015년 개정 교육과정 심리학 교과서(2020)' 등이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과 심리학을 이중전공한 후 동 대학원에서 사회 및 성격심리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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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empp 2023-02-15 23:55:06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