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햇살을 비춘다면… ‘아싸’도 행복한 학교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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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햇살을 비춘다면… ‘아싸’도 행복한 학교정글
  • 2023.03.04 10:31
학교가 기성 사회의 어두운 일면들을 투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선뜻 내키지는 않더라도 학교의 정글적 측면을 그대로 직면해야 한다. 적어도 자발적 아싸든, 비자발적 왕따든 다양한 사회적 어려움을 경험하는 학생들이 건강한 사회성을 배우고 연습하며 행복으로 도약할 수 있는 안전한 스프링보드가 되어야 한다.

그냥 제 성격 탓인걸요?

얼마 전 학교에 다니기 싫다며 우울감을 호소하는 여중생 B를 상담한 적이 있다. 다른 아이들은 삼삼오오 쉬는 시간에 놀기도 하고, 주말에 함께 어울려 영화를 보거나 밥을 먹기도 하며 학원도 같이 다니는데, B는 늘 혼자이고, 마땅히 친한 친구도 없다고 하였다. 다른 아이들과 가까워지고 싶지만, 무엇이 부족한 것인지 아이들은 B에게 관심이 없어 보이고, 그래서 B는 스스로 아싸가 되어 대부분 혼자 지낸다고 하였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거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친구도 없으니 그런 자신의 처지를 보면서 차라리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이 마음 편하겠다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에 대해 선생님과 상담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선생님께 친구를 사귀는 문제까지 시시콜콜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도 말하지 않으면 선생님이 B의 고충을 다 파악할 길이 없으니, 용기를 좀 내보면 어떠냐고 제안했지만, 친구들이 자신을 딱히 왕따를 시키는 것도 아닌데 괜히 개인적인 문제로 선생님을 곤란하게 할 것 같다고 걱정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는 누구의 탓도 아닌 자신의 성격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싸와 왕따 사이

필자는 B와 대화하면서, 한창 또래관계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고 또래의 영향도 매우 많이 받는 청소년 초기의 아이들에게 자신이 늘 아싸라고 느끼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아싸가 아닌 인싸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이슈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또한 B학생의 표현대로 자신이 왕따를 당하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딱히 눈에 띄는 학교폭력이 발생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선생님과 이를 터놓고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잘 이해가 되었다.

아싸는 영어의 아웃사이더outsider를 축약하여 표현한 신조어로, 원래는 대학생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대인관계를 형성해 가면서 또래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지내는 사람, 혼자 노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지만, 점차 사이버공간을 통해 확산되면서 요즘은 초중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널리 쓰이는 유행어가 되었다.

심리학에서는 개인이 사회적 관계로부터 스스로 철회하는 행동을 지칭하기 위해 사회적 위축social withdrawal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다. 사회적 위축은 사회적 고립social isolation과는 개념적으로 구분되어야 하는데, 고립은 다른 사람들이 개인을 배제하거나 거부하기 때문에 대인관계를 맺지 못하는 상태인 반면, 사회적 위축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상호작용으로부터 철회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유나 동기가 무엇이든 외로움은 즐겁지 않은 선물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Melancholy, 1883.
이유나 동기가 무엇이든 외로움은 즐겁지 않은 선물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Melancholy, 1883.

흥미롭게도 필자가 만난 B학생도 나름 이러한 차이를 인식하여 자신을 사회적 고립, 왕따의 상태에 있다기보다는 스스로 또래관계에서 멀어진 아싸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나, 이 둘의 개념적 구분이 타당하고 또 유용할지라도 실제로는 아싸와 왕따의 경계는 그리 명확하지 않은 특징이 있다. , 자신의 선택에 의해 또래관계를 원치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아이들의 거부나 배제가 원인이 되어 사회적 위축이 나타날 수도 있고, 또 사회적 위축이 지속될 때, 주변의 아이들은 그러한 아이에 대해서 점점 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어느새 또래집단과 더욱 멀어진 고립의 상태가 심화되며 더욱 적극적으로 거부되는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의 연구들은 외현적으로는 유사한 위축된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러한 행동 저변의 동기는 상이할 수 있으며, 이는 적응적 결과와도 서로 다른 관련성을 보여, 아싸가 단일 차원의 단순한 현상이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예컨대, 대인관계를 적극적으로 피하고 싶은 동기가 높아서 사회적으로 위축된 행동을 보이는 아이가 있을 수 있으며(‘회피형’), 앞의 B학생처럼 속으로는 또래와 가까워지기를 원하지만 친구 사귀기 등 사회성 기술이 부족하고 대인불안이 높은 성향으로 인해 위축되는 경우(‘수줍음형’)도 있다. 또한 대인관계를 두려워하지 않지만,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하거나 사교 욕구가 낮아서 사회적으로 위축되는 아이들도 있다(‘비사교형’).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고립된 청소년과 회피형이나 수줍음형의 위축된 청소년들이 가장 높은 수준의 외로움이나 우울감, 낮은 행복감 등 정서 문제를 많이 경험하며, 특히 왕따와 같은 학교폭력 피해 위험도 현저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아싸가 발달 멘토를 만났을 때

그렇다면 학교는 사회적으로 위축된 소위 아싸학생들의 학교생활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최근의 연구들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한 단서를 제공한다. 바로 위축된 청소년들이 일반 청소년들에 비해 부정적 학교환경뿐 아니라 긍정적 학교환경에도 더욱 민감하게 반응함(발달심리학자들은 이를 차별민감성이라고 부른다)을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그것이다. 일반적인 청소년들에 비해 위축된 청소년들이 부정적 환경에 노출된다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위험이 더욱 커지는 반면, 만일 이들이 적절한 훈육환경과 만난다면 오히려 더 건강하고 긍정적인 발달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연구에서 전통적인 문제행동 교정 중심의 훈육에 대한 대안으로서, 학교가 학생의 사회정서적 발달을 강조하면서 책임감, 정서 및 행동 조절, 공감 등 자기규율 개발을 체계적으로 돕는 방식의 훈육체계를 도입하여 교사들이 이를 일관되게 실천하였을 때 학생들의 행복감이 전체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위축된 학생들의 행복감이 일반 학생들보다 더 큰 폭으로 상승하여 오히려 더 높아진 점이다. 또 다른 연구에서도 위축된 학생들이 교사와 평소 긍정적으로 소통한다고 느끼며, 자신의 선생님이 학생들의 요구에 잘 반응하고 정서적으로 지지한다고 느낄 때, 행복감과 학교생활에 대한 적극적 참여 태도가 일반 학생들보다 더욱 크게 향상되었다. 아싸 청소년들이 그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건강한 사회성과 정서를 경험하도록 안내하는 사회성 발달의 멘토를 만날 때, 그들이 직면한 위기는 건강한 발달의 기회로 되돌아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정글이다. 하지만 정글 속에도 햇살을 비추고, 그 안에서 학생은 행복하게 성장해야 한다. 사진=펙셀
학교는 정글이다. 하지만 정글 속에도 햇살을 비추고, 그 안에서 학생은 행복하게 성장해야 한다. 사진=펙셀

정글에 드리운 햇볕이 되어

학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물리적, 심리적 공간인 만큼, 우리는 학교가 안전하고 그곳에서 자라는 모든 학생이 행복하기를 염원한다. 그러나, 학교가 기성 사회의 어두운 일면들(예컨대, 경쟁, 폭력, 권력구조 등)을 투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선뜻 내키지는 않더라도 학교의 정글적 측면을 그대로 직면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강력한 메타포(‘정글’)를 사용하여 학교를 쉽게 희화하는 태도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학생지도와 훈육체계를 혁신하려는 일선 학교와 교사들의 치열한 고민과 다양한 창의적인 노력들을 무시하는 처사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가 정글이라면, 그 속에서 어떻게 하면 생존하고, 인싸가 될 수 있는지를 전수하고 배우는 곳이 아니라, 적어도 자발적 아싸든, 비자발적 왕따든 다양한 사회적 어려움을 경험하는 학생들이 건강한 사회성을 배우고 연습하며 행복으로 도약할 수 있는 안전한 스프링보드가 되어야 한다. 자기규율과 공감의 소통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숨은 멘토들의 수고가 정글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폭력성을 순식간에 근절하거나 정글을 당장 녹지로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B학생 같이 정글 속에 묻혀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드러내지 못한 채 학교 문턱만 넘나드는 조용한 아싸 학생들에게는 그들의 숨은 잠재력을 이끌어내어 자라게 하는 꼭 필요한 햇볕임을 기억하였으면 좋겠다. mind

이동형 부산대 교육학과 교수 학교심리학 ph. D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학교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휴스턴 교육구에서 다년간 학교심리학자로 활동했다. 주로 아동·청소년의 또래관계 및 사회정서발달 문제를 학교 맥락과 관련지어 연구하고 있으며, 학생 정신건강 증진과 지원에 관심이 있다. 『괴롭힘 예방』, 『학교기반 인지치료』, 『학교기반 컨설테이션』, 『고독의 심리학』 등의 저·역서와 다수의 논문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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