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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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 2023.04.07 11:10
오늘도 깜박했을까? 모든 것을 머리 속에 저장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저장하기 위한 방법들을 소개해 본다.

단기기억과 망각

아침에 양치질하고 보니 치실이 떨어졌다. 뒤이어 면도기를 집어 들다가 웬걸, 덜렁거리는 면도기 끄트머리 부속품을 보고 있으니 꼭 필요한 순간에 다 말라비틀어져 있는 순간접착제 역시 생각이 난다. ‘오늘 퇴근하면서 가게에 들러 두 가지 모두 잊지 말고 꼭 사야지...’하곤 잠시 뒤 염려가 몰려온다. ‘, 이거 어디다 메모 안 하면 출근하기도 전에 다 까먹을 텐데...’ 그나마도 욕실문을 나서면서 잊어버리고 결국은 저녁때 빈손으로 돌아와서는 기억력의 한심함에 몸서리치게 된다.

중년 이후 사람들은 아마 공감할 내용이리라 짐작한다. 옆자리 동료가 몇 가지 부탁을 했는데 다른 사람과 몇 마디 나누고 사무실을 나가자마자 대부분을 까먹을 수도 있다. 또는 지인이 당신에게 새로운 사람을 소개했는데 몇 초 안에 이미 그 사람 이름을 잊어버리고는 다시 물어볼 수도 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흔하게 경험하는 단기기억short-term memory 수준에서 발생하는 망각이다.

지금도 우리의 기억은 해체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살바도르 달리 작. 기억 지속성의 해체(The Disintegration of the Persistence of Memory), 캔버스의 유채.
지금도 우리의 기억은 해체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살바도르 달리 작. 기억 지속성의 해체(The Disintegration of the Persistence of Memory), 캔버스에 유채.

얼마나 저장할 수 있나?

단기 기억은 즉시 사용해야 하는 정보를 일시 저장하는 기억 저장소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전화번호를 알려준다면 메모하기 전까지는 단기기억에 저장해 이것을 잊지 않기 위해 마음속으로 여러 번 반복한다. 역설적인 것은, 이처럼 요긴한 단기 기억의 용량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단기기억은 한 번에 몇 가지 소량의 정보만 붙잡아 놓을 수 있고 그나마도 주의가 산만해지면 금방 사라지며 기억하려고 애를 써도 시간 경과에 따라 여러 이유로 망각에 이를 가능성이 커진다. 앞서 새 전화번호를 암송rehearse하는 상황에서 당장은 머릿속에 남을 것 같던 전화번호가 수화기를 내려놓고 메모장과 볼펜을 주섬주섬 찾아 막 쓰려는 순간 가물가물해지는 것이 그것이다.

고전적인 단기기억 연구에 따르면 보통 사람은 단기 기억에 한 번에 약 일곱 항목 정도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Miller, 1956. 이는 "마법의 숫자 7"magic number seven로 알려져 있으며 오감을 총동원해 몇 초에서 몇십 초까지 정보를 저장하게 되는 단기기억의 평균적 용량에 해당한다. 안타깝게도 이 수치는 저장하려는 정보의 복잡성이나 주변의 산만함 및 스트레스와 같은 기타 여러 요인에 따라 들쭉날쭉하게 된다.

주의 산만과 기억간섭

그런데 왜 그렇게 쉽게 잊어버리는 걸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단기기억이 의도한 혹은 의도하지 않은 간섭interference에 너무나도 취약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잘 부식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꼭 기억해야겠다고 맘먹고 나서 다른 무언가로 마음을 돌려 거기에 집중하게 되면 원래 기억하려 한 것을 잊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점심 식사 자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의 이름을 꼭 기억하려고 했는데 대화를 몇 마디 나누고 나서 그 사람의 이름을 까먹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이후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난감함은 부끄러울 지경이다. 나는 그래서 초면인 사람 혹은 사람들과 만나 통성명을 하게 되면 내 이름을 대화 중에 슬쩍 다시 언급해 상대방의 예기치 못한 민망함을 미리 방지하거나, 반대로 내가 명함을 받았으면 지갑에 쏙 집어넣기보다는 찻잔이나 컵 뒤에 놓고 대화를 진행한다. 물론 이게 불가능하면 방법이 없다. 상대방의 이름을 언급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민망하지만 대충 넘어가거나 아니면 솔직하게 잊었다고 말하고 이름을 다시 묻기도 한다. 물론 어려운 사람과의 만남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좋은 인상을 남기기 어려울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일부 연구자들은 스마트폰과 인터넷 같은 기술에 대한 의존이 기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제안한다. 특히 늘 들여다보게 되는 스마트폰은 건망증을 보상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다Sparrow, Liu, & Wegner, 2011. 예를 들어, 요즘은 전화번호를 듣고 외우기보다는 상대편 전화로 전화를 걸고 기록으로 남은 번호를 스마트폰에 그냥 저장한다. 또한 세상사에 관한 무엇인가를 정확히 회상할 필요가 있으면 내 기억보다는 그저 각종 검색 엔진이 훨씬 정확할 수 있다. 다만 이런 방식은 편리할 수는 있지만, 예전만큼 우리의 기억을 사용하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하므로 오히려 우리의 기억 능력을 감퇴시킬 수는 있다.

망각에 대한 올바른 대처

좋은 소식은, 전화번호나 잡다한 상식을 모두 기억할 필요가 줄어든 만큼 그 시간과 노력을 다른 곳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만 문제는 단순반복roting에 의존하는 유지암송maintenance rehearsal 이외에 더 효과적인 다른 방법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보통 유지암송 방법이 오래가는 기억에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함을 깨닫고 그 대신, 기억할 정보의 조직화organization를 통해 망각을 방지하는 정교화암송elaborative rehearsal을 주요 기억 책략으로 습득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기억할 정보가 중요치 않은 것이면, 귀찮다거나 시간 부족 때문에 대부분 포기하고 대충 살게 마련이다. ‘아 뭐, 그 정도야 까먹으면 어떻게든 다시 기억나겠지....’라고 치부하지만 적절한 상황과 맥락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상 제대로 기억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다들 바빠서 훈련하기는 어렵긴 하겠지만 고전 연구가 제시한 기억 책략 중 가장 강력한 것은 기억할 정보를 특징과 의미가 비슷한 것들로 묶어 관리하기 쉬운 범주들로 조직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개의 다양한 항목을 기억해야 하는 경우 "과일", "야채" "유제품"과 같은 더 작은 범주로 묶어보고 각 범주를 회상하기 위한 단서 항목들을 연상해 시각화visualize하거나 혹은 기억할 단서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과일바구니 속의 과일들, 도마 위의 야채들, 냉장고의 몇 가지 유제품을 머릿속에 그려보거나 이 범주들조차 잊어버릴 것 같으면 그 사람 참 하게 야유하더라!’ 등으로 문장을 만들어 억지스럽지만 어떻게든 회상에 이르게 할 단서들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방법이다. 재밌는 것은 장기기억으로의 저장을 돕는 가장 큰 원동력은 이러한 단서들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이 단서들을 만들어 내려는 우리의 의식적 노력conscious effort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각이라는 것을 우리 일상생활에서 피할 수는 없다. 다만 수시로 잊어버리는 것은 정상이며 기억력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은 반드시 우리 기억 속에 남겨야 한다. 특히 오만가지 정보를 끝끝내 다 기억하겠다고 애쓰는 사람은 오히려 집착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우며, 우리의 단기기억 역시 앞서 Miller의 연구 사례처럼 그리 많은 정보를 저장해 장기기억으로 넘겨줄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순간 당신 앞에 주어진 가장 중요한 정보가 무엇이며 그것이 스마트폰이나 PC 및 메모장이 아닌 당신의 장기기억에 꼭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야 앞서 언급한 대표적인 기억 책략도 의미가 있고 그에 따른 노력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mind

    <참고문헌>

  • Miller, G. A. (1956). The magical number seven, plus or minus two: Some limits on our capacity for processing information. Psychological Review, 63(2), 81-97.
  • Sparrow, B., Liu, J., & Wegner, D. M. (2011). Google effects on memory: Cognitive consequences of having information at our fingertips. Science, 333(6043), 776-778.
현주석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인지심리 Ph.D.
인지심리학의 주제 중 시각작업기억과 주의에 관한 주제로 박사 학위를 하고, 현재 중앙대 심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인지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기초로 인간의 장, 단기 기억과 사고 및 선택적 주의 현상 연구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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