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세인가요, 불행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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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세인가요, 불행하신가요?
  • 2023.05.03 20:13
초고령 사회를 눈 앞에 둔 지금, 초고령 노인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초고령 사회를 맞이하며

일본의 미래를 위해 노인들은 사라져야 한다. 일본은 원래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나라가 아닌가”라는 주장으로 일본에서 노인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난다. 고령화가 불러온 사회 혼란 속에서 75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법, ‘플랜 75’가 제정된다. 죽음을 국가에 ‘신청’하면 국가가 이를 ‘시행’해주는 제도이다. 처음에는 반대의 소리가 높았지만, 차츰 받아들여지고 담당 공무원들이 공원에 나가 노인에게 따뜻한 수프를 대접하며 죽음을 권유하기도 하고, 마지막 여행과 장례를 지원하기 위해 10만 엔(약 98만원)의 위로금을 주기도 하며, 공익 광고에서는 “원하는 때에 죽을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라며 웃는 노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다행히 이 모든 것은 현실이 아니다. 작년 일본에서 개봉하여 칸 영화제에서 신인상에 해당하는 ‘카메라 도르 특별 언급상’을 수상한 영화 <플랜 75>의 내용이다. 하지만 영화가 유난히 섬뜩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어쩌면 현실로 닥칠 수도 있다는 상황 설정과 섬세한 묘사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현실로 눈을 돌려보자. 일본은 2025년이 되면 5명 중 1명이 75살이 되는 초고령 사회를 맞이한다. 한국은 어떠한가? 202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인구에서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17.5%이다. 그로부터 3년 후 2025년에는 고령인구의 비중이 20.6%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며 의료비와 사회보장비 부담의 폭증이 예상되고 경제가 활력을 잃게 될 것이란 전망이 높다. 한국이 고령사회에서 초고령 사회로 넘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7년으로, 일본(10년), 미국(15년), 영국(50년) 보다 훨씬 짧다. 영화에는 예견된 현실에서 이를 미리 진단하고 문제 의식을 공유하길 바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 작 '플랜 75'(2022)의 한 장면.
하야카와 치에 감독 작 '플랜 75'(2022)의 한 장면.

초고령 노인들의 노화 인식

이러한 세태에서 실제 초고령 노인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들은 나이 듦에 있어서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본 논문 리뷰에서는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어줄 최신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Kaspar과 동료 연구자들은 독일에서 거주하는 80세 이상 912명을 대상으로 2년에 걸쳐 노화 인식awareness of age-related change; AARC의 궤적을 조사했다Kaspar et al., 2022. 노화 인식을 측정하기 위해 10문항으로 이루어진 ‘연령 관련 변화에 대한 인식 척도’AARC-10SF를 활용하였다. AARC-10SF 척도는 건강 및 신체기능, 인지기능, 대인관계, 사회-인지 및 사회-정서적 기능, 생활방식 및 참여와 같은 5가지 범주에 걸쳐 다차원적으로 노화 인식의 변화를 포착한다. 또한 체력 저하와 같은 부정적인 연령 관련 변화뿐만 아니라 더 깊어지는 사회적 관계와 같은 긍정적인 연령 관련 변화를 경험하는 정도를 보고할 수 있도록 하며 노화 인식을 상세하게 표현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80세 이상의 노인들은 2년 동안 자신의 노화에 대해서 인식된 이득이 감소하고 손실은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지만, 90세 이상을 제외한 모든 응답자들이 여전히 인식된 이득이 손실보다 더 높은 수준을 보였다.

더 나아가서 본 연구에서는 노화 인식을 예측할 수 있는 요인들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질병과 장애로부터 자유롭고 적절한 인지·신체기능을 유지하며,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생활 태도’로 나타나는 성공적 노화successful aging의 대표적인 개념Rowe & Kahn, 1997을 바탕으로 (1) 질병 및 장애 (2) 신체기능 (3) 인지기능 (4) 적극적인 활동 (5) 그 외 인구사회학적 변인(혼인상태, 가구원 수 등)과 노화 인식 간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노화에 대해서 인식된 손실의 증가는 가사, 외출, 금전관리 등의 ‘도구적 일상생활 수행 능력IADL’ 어려움으로 예측된 반면, 인식된 이득의 감소는 참여활동의 한 지표인 ‘여가활동’의 감소로 예측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초고령 노인들에게 더이상 복합이환multimorbidity과 인지적 능력이 그들의 노화 관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단계임을 시사한다. 요약하자면 초고령 노인에게도 노화 인식의 일부로 상당히 인식된 이득을 보고하며, 그들에게 일상 및 여가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성공적 노화에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우리 사회는 초고령 사회로 빠르게 접어들고 있으나, 실제 초고령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은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해당 연구는 대규모의 대표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노인들의 노화 인식을 다룬 첫 연구로써 의의가 있다. 노화 인식은 실제 노화 결과에 연결된다. 예를 들어 부정적인 노화 인식은 신체적으로 더 나쁜 건강과 더 짧은 수명과 연관이 있으며Westerhof et al., 2014, 심리적으로도 부정적 삶의 의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Marques et al., 2014. 초고령기는 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상당히 증가할 수 있는 시기이나, 연구의 결과는 변화 가능성을 제시하며 노화에 대한 긍정적 인식에 있어서 제한적이지만 성장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독일 표본 만을 사용하여 여러 문화에 적용하기 어려운 점과 대상자의 건강이 좋지 않아 대리인이 응답한 경우는 제외하고 분석하였기 때문에 역학의 일부를 놓칠 수 있다는 점이 아쉽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용과 이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다는 생각, 차별과 배제로 가득한 사회에서 누가 행복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 초고령 사회로 달려가고 있는 현실을 막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플랜 75’와 같은 제도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에 대해 관용과 이해를 품고 문제에 직면해야 한다. 영화 후반에는 다음과 같은 뉴스가 나온다. “정부는 플랜 75가 호조를 보임에 따라 플랜 65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를 방치하면 다음 순번은 당신이 될 것이라는 경고, 그리고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어떠한 선택을 하겠느냐 묻는다. “당신은, 살겠습니까?” mind

[감수: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김기연 교수]

    <참고문헌>

  • 통계청. (2022). 통계정책과, 행정구역별 고령인구비율.
  • Kaspar, R., Wahl, H. W., Diehl, M., & Zank, S. (2022). Subjective views of aging in very old age: Predictors of 2-year change in gains and losses. Psychology and Aging, 37(4), 503-516.
  • Marques, S., Lima, M. L., Abrams, D., & Swift, H. J. (2014). Will to live in older people’s medical. decisions: Immediate and delayed effects of aging stereotypes. Journal of Applied Social Psychology, 44(6), 399–408.
  • Westerhof, G. J., Miche, M., Brothers, A. F., Barrett, A. E., Diehl, M., Montepare, J. M., Wahl, H. W., & Wurm, S. (2014). The influence of subjective aging on health and longevity: A meta-analysis of longitudinal data. Psychology and Aging, 29(4), 793–802.
유수하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석사과정
노년기의 심리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차지하는 노년기의 의미를 찾고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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