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사회’ 대한민국을 판치는 악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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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사회’ 대한민국을 판치는 악의 언어
  • 2024.07.10 09:02
현대 사회에서 난무하는 비난과 조롱,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상대방을 헐뜯고 조롱하고 짓밟는 말로 차고 넘친다. 언론에 이름깨나 알려진 사람들은 너나없이 상대의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내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심지어 은퇴한 노년기 정치인의 말에도 여전히 경쟁과 적대감의 표현만 있을 뿐, 더 큰 세상에 대한 비전과 지혜의 언어를 찾아보기 어렵다. 신체의 병이 중하다는 논객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도 죽음 앞에서 마주할 수 있는 삶에 대한 성찰과 겸손은 온데간데없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독재와 반독재, 민주와 반민주가 우리 사회의 두 진영을 대표하던 그 시절에도 서로 간에 첨예한 갈등과 치열한 공격은 있었지만, 적어도 서로에 대한 말은 지금처럼 거칠고 야만적이지는 않았다. 민주 진영에 대한 비방과 왜곡, 탄압도 그렇고, 독재 정권에 대한 적대감과 투쟁도 적어도 겉으로는 그럴듯한 말 속에서 이루어졌지, 어느 진영도 지금과 같은 막말을 시도 때도 없이 남발하지는 않았다.

언론에 이름깨나 알려진 사람들은 너나없이 상대의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내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사진=픽사베이
언론에 이름깨나 알려진 사람들은 너나없이 상대의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내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사진=픽사베이

왜 반목과 질시의 언어가 난무하는 사회가 됐을까

그러면 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상대방에 대한 반목과 질시의 언어가 난무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많은 이유 중의 하나를 우리 사회의 높은 피로도疲勞度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그야말로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온갖 힘든 일로 고달픈 삶을 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입시·취업· 출퇴근·업무·가사와 육아로 고달프고, 사회적으로는 온갖 종류의 황당한 사건·사고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을 정도로 우리를 화나고 지치게 만든다.

우리가 이처럼 스트레스를 초래하는 많은 일을 극복하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삶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놀고 싶은 마음을 절제하고 공부하는 것, 혼잡한 출퇴근길을 참고 가는 것, 터무니없는 뉴스를 보면서 분노를 삭이는 것, 이 모든 일은 우리에게 에너지의 소비를 요구한다. 이러한 현상과 관련된 일상적인 말이 인내심이나 의지력인데, 이 말 모두 정신적인 힘이나 에너지라는 의미와 관련되어 있다.

문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정신적인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공부를 오래 하면 지치고, 상대방의 도발을 참고 참다가 나중에 폭발하는 것은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에너지가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상태의 사람들은 단편적이고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행동한다. 그들은 외부의 자극에 대해 자기가 보고 느끼는 대로 충동적이고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그래서 이때의 사람들은 지성이 없는 동물과 다를 바 없다.

같은 맥락에서, 피로도가 높은 사회의 사람들은 나와 다르거나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이해하거나 수용하기 어렵다. 차이를 참고 견디는 데 필요한 심리적인 힘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의 사람들은 충동을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말 역시 감정적이고 적대적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헐뜯고 조롱하고 공격하면서 쾌감을 느낀다. 그것은 부정적 감정의 배설이 주는 기쁨이나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가학적 쾌락과 다르지 않다. 물론 이러한 쾌락은 오래가지 못할뿐더러 극히 병리적이다.

상대방을 괴롭히고 학대하고 싶은 사람에게 부정적인 언어만큼 효율적인 무기는 없다. 사진=픽사베이
상대방을 괴롭히고 학대하고 싶은 사람에게 부정적인 언어만큼 효율적인 무기는 없다. 사진=픽사베이

부정적인 말이 난무하는 또 다른 이유

우리 사회에 이해와 공감, 협동과 통합과 같은 긍정적인 말보다는 그 대척점의 부정적인 말이 난무하는 또 다른 이유를 부정성이 갖는 영향력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긍정적인 행동과 비교해서 부정적인 행동이 상대에게 주는 효과가 더 크다. 비난과 조롱의 부정적 효과가 칭찬과 공감의 긍정적 효과보다 보통 서너 배는 크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을 괴롭히고 학대하고 싶은 사람에게 부정적인 언어만큼 효율적인 무기는 없다.

인간은 누구나 장·단점, 서로의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다. 그렇지만 상대방의 장점과 유사점보다는 단점과 차이점이 우리 눈에 더 잘 띄는 것은 한편으로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유리한 점 때문이다. 동업자를 구할 때 본래 정직한 사람을 사기꾼으로 잘못 판단하면, 내가 입는 손해는 그 정직한 사람을 잃는 것이지만, 사기꾼을 정직한 사람으로 잘못 판단했을 때 내가 입는 손해는 내가 투자한 돈과 그 사람 모두를 잃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기와 다른 사람에게 모진 말을 서슴없이 퍼붓는다. 이러한 어휘를 구사하는 사람은 상대를 타협해야 할 파트너나 함께 공존해야 할 구성원으로 보기보다는, 제거하고 파멸시켜야 할 적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자기의 말에 대해 조금의 죄책감이나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부정적인 언어는 본질적으로 사회나 공동체 내부의 통합과 화합보다는 분열과 분란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것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최근 새로운 정치세력을 도모하는 사람들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곳에는 부딪침과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모든 사회나 조직에는 기득권층이 있고 자기의 이익과 권리를 침해당하는 불리한 사람도 있다. 이때 불리한 입장의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기득권층과 결별해서 그들을 공격한다. 그들은 자기의 이익을 최우선시한다는 점에서 기득권층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상대방을 패배시켜야 할 적이거나 경쟁자로 보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기득권층과 함께 이러한 사람들이 보통 우리 사회 분열의 주범이다.

그렇다고 해서 불리한 입장의 모든 사람이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중 일부 사람들은 자기뿐만 아니라, 그 집단 구성원 전체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 기득권층에 맞선다. 이러한 사람들의 말은 파괴적이거나 이기적이기보다는 포용적이고 통합적이며 건설적이다. 그들은 기득권층을 포함해서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에서 대안을 제시한다. 그래서 그들의 말 속에는 대인배의 지혜가 들어 있다. 우리 사회의 분열이 아닌 성숙한 변화를 이끄는 주역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는 기존의 조직에서 나와 새로운 정치세력을 도모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둘 중에 어느 유형의 사람일까? 그들이 보인 행태를 기초로 가늠해 보면, 대부분은 전자의 유형에 해당할 듯싶다. 기득권층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사회 통합과 공존의 큰 그림은 안중에 없고 자기 세력의 이익만 좇는 패거리인 경우가 허다하다. 영향력깨나 있는 그들이 내지르는 분열의 파열음은 결국 우리 사회의 무고한 일반인의 마음을 지치고 병들고 무너지게 만든다. 불행하게도, 그들의 언어는 우리 사회의 약(藥)이 아니라 악(惡)의 언어와 다르지 않다. mind

※ 본 기사는 교수신문과 공동으로 연재하는 '정태연의 한국사회 마음 읽기' 기사입니다. 해당글은 교수신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사회및문화심리 Ph.D.
정태연 교수는 사회심리학의 주제 중 대인관계에 관한 주제로 박사학위를 하고, 현재 중앙대 심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사회 및 문화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기초로, 한국인의 성인발달과 대인관계, 한국의 사회문제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심리학적 지식을 군대와 같은 다양한 조직에 적용하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회심리학」(2016), 「심리학, 군대 가다」(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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