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의 정치, 특히 선거에서는 꽤 오래된 격언과 다름없다. 그 정도로 많은 정치인이 이 말을 믿고 따른다. 이 말은 “정치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라는 것이고, 선거에서 유권자의 표심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선거가 임박했을 때 유권자의 마음에 드는 공약, 이런저런 사고를 치지 않는 것, 이것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무수히 많은 공약, 대부분은 급조한 공약을 남발한다. 국가와 지역 발전에 그렇게 좋은 생각과 비전이 있으면, 평소 쓸데없이 싸울 시간에 그것을 발표하고 추진하지, 왜 꼭 선거철만 되면 난리를 치는지 참으로 마뜩잖다. 과거 막말을 일삼던 정치인들은 선거가 다가오면 긴장해야 한다. 평소에는 패싸움하느라 자기편한테는 한없이 관대하던 조직의 칼날도 그를 선거의 제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만큼은 정치판도 꽤 도덕적이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을 따르는 정치인들의 이런 행태를 보면, 그들은 유권자를 성숙하고 지적인 사람으로 보는 것 같지는 않다. 유권자는 생각이 짧아 단편적으로 판단하고, 조금 오래된 것조차 잊고 앞도 멀리 보지 못하면서 눈앞에 보이는 것만 믿는 존재, 그래서 선거철에만 반짝 잘하면 다 넘어오는 단세포 생물로 보는 것 같다. 그러면 정말 우리 유권자는 이런 유형의 생물인가, 아니면 실상은 정치인이 그런 생물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무엇보다도 정치인이 어떤 사람인지 따져봐야 한다. 권력을 가진 정치인이 일반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크기도 하고, 유권자는 보통 정치인의 행동을 보고 판단·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때 권력이란 영향력을 통해 세상을 내 뜻대로 통제하는 힘이다. 말하자면, 내 마음대로 사람도 부리고 일도 처리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행동하려는 강한 욕구가 있는데, 보통 이 욕구는 권력을 수반하는 높은 지위의 획득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충족할 수 있다.
사람이 권력을 갖게 되면 달라지는 세 가지
사람은 권력을 갖게 되면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첫째,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은 자기의 권력욕을 행동으로 표출한다. 일반적인 사람은 권력욕이 강한 사람을 멀리하기 마련인데, 그런 사람의 통제를 받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한 권력욕의 소유자는 평소에는 그 욕구를 억누른다. 그러다가 높은 지위에 오르면 비로소 자기의 권력욕에 따라 이전과는 다르게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다. 부정적인 측면에서 완장을 차면 사람이 달라지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둘째, 이처럼 권력을 행사하면서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를 과신하는 방향으로 변한다. 이런 경향성은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 강하다. 위계 구조상 부하들은 상사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할 수밖에 없는데, 상사는 이것을 두고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본래 일은 객관적 상황 판단과 다른 사람의 협력이 필요한 법이다. 권력자의 문제는 이런 요소는 무시하고 자기의 주관적 능력만 과대평가한다는 점이다.
권력에 취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뇌 수준에서도 그렇다. 타인의 말을 듣거나 행동을 보면서 그 사람과 같은 감정을 느끼도록 하는 신경세포가 거울 뉴런인데,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의 뇌에서는 이 뉴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들은 본인의 일에 필요한 역량을 키우려는 노력도 소홀히 한다. 자기과신 속에서 고정관념이나 직관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셋째, 권력의 맛을 본 사람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목표를 갖기 쉽다. 그들도 처음에는 유권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자기 지역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으로 선거에 출마한다. 그러다가 높은 지위에 오르면, 권력의 힘을 체감하면서 권력이 있으면 무엇이든 다 된다는 권력 중심의 세계관을 갖게 된다. 그래서 정치를 시작할 때의 초심과는 달리,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권력의 맛은 약물 중독과 비슷하다
권력의 맛은 약물 중독과 비슷한 점이 있다. 마약은 우리 몸에서 엄청난 양의 도파민이 나오도록 하는데, 이것이 강한 쾌감을 경험하게 해준다. 중독자는 이 쾌감을 생생히 기억해서, 수시로 그런 경험에 대한 기대를 한다. 그들이 마약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슷하게, 권력의 행사는 그 사람의 몸에서 도파민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분비하게 만들고, 그때의 쾌감에 대한 권력자의 기억과 기대는 지속해서 권력을 추구하게 만든다.
권력의 이런 특성에 견주어 볼 때, 적어도 요즘 선거판에서 큰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정치인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들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의 얘기를 전혀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질릴 정도로 그들은 자기중심적이고 세상일을 자기 입맛에 따라 해석하고 결정한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멀리 보기와 숨 고르기란 일절 없어 보인다. 오직 권력의 유지와 확장이라는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목표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특정 정치인의 본모습을 아는 방법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그가 하는 행동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자기 이득과 무관할 때 대부분은 정치적 이념과 소신, 국민, 정의와 공정을 말한다. 앞서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기회만 있으면 너스레를 떤다. 그러면 지금 이해관계가 얽힌 선거판에서 그들의 행동은 어떠한가? 그렇게 중시하던 이념과 소신, 정의, 명분이 여전히 선거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동하는지 상당히 의문스럽다.
‘유권자가 생물’ vs ‘정치인이 생물’
선거철 정치인의 이런 행동이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이 이렇게 처신하는 상황에서 유권자가 큰 틀에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잣대로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어느 쪽 후보자도 이런 기준에 맞게 행동하지 않으니, 이 잣대를 들이댈 곳이 이 정치판에는 없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22대 총선에서 ‘유권자가 생물’, ‘정치인이 생물’ 중 어느 한쪽에 투표한다면, 여러분은 어느 쪽에 투표하겠는가? 저는 후자에 투표하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정치인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니, 유권자 각자 후보자를 잘 간택해서 투표하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싶다.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