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인 사회에 사는 우리, 마음의 평화를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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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인 사회에 사는 우리, 마음의 평화를 찾기 어렵다
  • 2024.09.03 11:45
우리는 생존을 위해 주변을 이해하고, 이 과정에서 감각 정보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감각 기관으로부터 들어오는 외부 자극에 지나치게 반응하는 것은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기 쉽다.

우리가 잘 살려면 자기를 둘러싼 환경과 상황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물리적인 상황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라는 공간 속에서 “주변 사람이 나에게 우호적인지”와 같은 특성도 잘 파악해야 한다. 좀 더 크게는 자기가 속한 문화의 이념이나 세계관과 같은 요소가 우리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온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는 환경과 상황의 요구와 조건에 맞게 행동하며 잘 살아갈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른 모든 유기체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모든 유기체가 자기의 주변 세계를 잘 파악해서 알아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모두 그 자체로 완전하지 못한 존재, 혼자서는 스스로 독립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식물과 동물 할 것 없이 누구나 생존하기 위해서는 물이나 음식물과 같은 외부의 영양분을 섭취해야 한다. 자체로 생존할 수 있는 유기체는 어디에도 없다. 이처럼 유기체의 삶은 외부의 다른 존재에 의존하기 때문에, 외부 세계를 잘 이해하는 것이 자기 생존에 결정적이다.

유기체가 외부의 환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감각기관이다. 식물의 잎이 햇빛의 강도에 따라 기공을 개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감지하는 기관이 있기 때문이고, 인간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다섯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이때 오감에서 말하는 감각은 외부의 물리적 자극이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 뇌에 전달되는 것으로, 우리의 뇌는 그 정보를 통해 물리적 자극을 인식하고 느끼고 변별한다.

감각을 통해서만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오감이라는 감각을 통해서만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감각은 즉각적이고 물리적인 자극에 반응해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감각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좀 더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틀을 구축한다. 이러한 틀이 주관성이고, 그 구축 과정이 학습이다. 주관성은 외부의 자극과 그에 대응하는 행동 사이의 관계를 자기 시각으로 조절하는 프리즘과 같은 역할을 한다.

여기서 주관성 관련해서 두 가지 질문을 해보자. 먼저 세상은 어떠한 존재인가? 세상은 여러 불완전한 유기체가 서로 연결된 곳이다. 식물은 물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초식동물은 식물을 먹잇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지지와 사랑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세상의 존재는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면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한다.

우리는 세상과의 연결을 통해 삶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통해 평화로운 마음을 얻는다.
우리는 세상과의 연결을 통해 삶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통해 평화로운 마음을 얻는다. 그림=Dall.e

또 다른 질문으로 학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의 서로 다른 존재가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것이다. 학습하려면 먼저 서로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 즉 그들을 구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특정 영역에서 많이 배운 사람, 가령 피아노 조율사는 일반인보다 미세한 음의 차이도 더 잘 변별한다.

연결에 대한 학습도 복잡성 수준에서 사람마다 다르다. ‘특정 지역 출신의 사람은 성격이 어떻다’는 식의 고정관념처럼 둘을 단순하고 단편적으로 연결하는 것을 배울 수도 있지만, ‘나비 효과’처럼 장기적이고 포괄적이며 복잡하고 깊이 있는 연결을 배울 수도 있다.

감각적인 사회의 심리적 특징, 음식·옷·외모·노래 등 감각적인 쾌락을 찾다

감각적인 사회는 사람들이 즉각적인 외부 자극에 꽤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사회이다. 물론 여기에 그들의 주관성도 한몫할 수 있지만, 그러한 주관성은 앞서 언급한 고정관념처럼 즉각적으로 주어진 자극을 특정 생각이나 판단, 행동과 단순하게 연결한 주관성이다. 말하자면 원래는 복잡하게 연결된 세상을 단순화하고 고정화해서 이해하는 주관성이다. 

감각적인 사회는 심리적으로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이런 사회의 사람들은 즉각적인 물리적 자극의 속성에 기초해서 세상을 이해하기 때문에, 그러한 외부 자극의 지배를 많이 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자극의 속성에 따라 충동적이고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쉽다. 그래서 작은 도발이나 좌절에도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극단적인 보복도 한다.

사고방식도 이분법적으로 단순하기 때문에, 자신의 편견이나 고정관념 또는 지금에 감정을 확증하는 식으로 생각한다. 여기에 심층적으로 성찰하는 인지적 활동이 들어올 여지는 거의 없다.

감각적인 사회의 또 다른 특징은 감각적인 쾌락의 추구다. 인간이 추구하는 쾌락을 그 원천에 따라 감각에 기초한 쾌락과 지적 활동에 기초한 쾌락으로 나눌 수 있다. 감각에 기초한 쾌락은 보고, 먹고 듣는 것과 같이 감각의 자극을 통해 오는 쾌락을 말한다.

반면에 지적 활동에 기초한 쾌락은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지적 활동, 즉 주관성의 발달과 성장을 통해서 얻는 쾌락이다. 감각적인 사회에서는 주관성의 기능뿐만 아니라 그것에 부여하는 중요성도 미미하다. 그래서 이런 사회가 추구하는 쾌락은 음식, 옷, 외모, 노래 등 대부분 감각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금방 싫증을 느껴 더 강한 자극을 추구

감각적인 사회의 이러한 특징이 갖는 공통점은 심각한 감정의 동요다. 이런 사회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정서는 수시로 변하는 외부의 자극에 지배를 받아서, 감정은 불안전하고 일관적이지 않다. 그들은 감각적인 자극을 통해 즐거움을 얻기 때문에, 금방 싫증을 느껴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약물중독이다. 또한 감각적인 자극이 없으면 심리적으로 불안과 공허함을 겪는다. 이러한 이유로 감각적인 사회의 구성원은 마음이 평화롭고 여유로울 수가 없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나름의 틀, 즉 주관성이 실제 세상의 모습을 닮을 수 있는데, 저는 그것을 객관성이라고 부른다. 보는 사람과 상관없이 일정하게 존재하는 실체를 객관성이라 할 수 있지만, 그러한 실체를 인간이 의식하기는 어렵다. 대다수가 공유한 인식도 객관성의 한 측정치이지만, 다원적 무지처럼 그것이 꼭 타당한 것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가장 현실적이면서 타당한 객관성은 서로 다른 수많은 존재가 매우 다양한 수준에서 연결되어 있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식의 객관적인 사람은 폭넓고 깊이 있는 연결성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이들이 이해하는 세상은 무수히 많은 존재가 다양한 수준에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역동적인 전체이다. 이러한 인식의 틀은 매우 방대하고 심오해서, 즉각적인 외부 자극 하나하나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안정적이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은 평화롭고 여유롭다.

또한 그들의 틀은 고정되어 있지 않아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마치 볼을 스치는 작은 바람에도 실물결로 화답하면서도 거친 비바람에도 그 깊은 물결은 동요하지 않는 호수처럼! 감각적인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mind

※ 본 기사는 교수신문과 공동으로 연재하는 '정태연의 한국사회 마음 읽기' 기사입니다. 해당글은 교수신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사회및문화심리 Ph.D.
정태연 교수는 사회심리학의 주제 중 대인관계에 관한 주제로 박사학위를 하고, 현재 중앙대 심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사회 및 문화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기초로, 한국인의 성인발달과 대인관계, 한국의 사회문제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심리학적 지식을 군대와 같은 다양한 조직에 적용하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회심리학」(2016), 「심리학, 군대 가다」(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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