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은 군기와 사기로 먹고사는 조직인데…
상태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은 군기와 사기로 먹고사는 조직인데…
  • 2024.09.13 16:46
언론에 군복이 좋지 않은 일로 너무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눈을 가장 찌푸리게 하는 것은 군의 리더십 부재였다.

언론은 지난 1년간 군에 대하여 어떤 보도를 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핵심어로 육군·해군과 같은 각 군의 명칭을 이용하여 빅데이터 분석을 수행했다. 그 결과 군별로 추출 기사 수는 1만 5천~2만 개 정도였다. 특이한 점으로 해병대에 관한 결과가 나머지 3군의 것과는 판이했다. 3군에서는 훈련·작전·안보·교육이라는 군 본연의 임무에 관한 단어가 가장 많아 50%에 근접했다. 그러나 해병대는 ‘조사’라는 단어가 22.13%를 차지했고, 다른 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과실치사·외압·의혹·직권남용이라는 단어가 27.74%에 이르렀다.

해병대에 대한 언론보도가 군의 존재 목적이나 본질과는 전혀 무관한 측면에 집중한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손쉽게 짐작해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채○○ 해병의 순직이 가져온 후폭풍 때문이다. 이 사건이 지금의 우리 사회를 집어삼키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정확한 원인의 규명은 합당한 절차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책임 있는 사람은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수준을 고려할 때 결국은 그렇게 될 것이다. 사필귀정이라 하지 않던가.

지난달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법' 입법청문회가 열렸다. 사진=국회 방송 캡쳐
지난달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법' 입법청문회가 열렸다. 사진=국회 방송 캡쳐

군의 사건, 리더십, 그리고 그 영향

다만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그리고 군에 대하여 애정을 가진 연구자로, 저는 지금까지 전개된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처신을 보면서, 그들이 과연 군인이면서 리더로서 제대로 된 군기를 갖추고 있는지 크나큰 실망감을 피할 수 없다. 그들의 행위가 군에 대한 다수 국민의 인식을 악화시키고 군인에게는 자괴감을 느끼게 만드는 부당한 결과를 보면서 나오는 탄식을 억제할 수 없다.

그러면 리더는 왜 중요한가? 그 이유 중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리더는 보통 지위가 높고 그에 따른 권력을 가지고 있다. 이때 그들이 자기의 막강한 권력을 이기적인 목적으로 부당하게 사용하면, 그것이 조직에 주는 피해는 권력이 미미한 일개 구성원이 주는 피해보다 훨씬 더 크다. 한 회사의 직원과 달리 대표가 저지른 비리는 회사 문을 닫게 만들 수도 있다. 리더의 도덕성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반 구성원이 리더를 잘 뽑아야 하고 뽑은 다음 잘 감시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권리만 행사할 뿐 책임을 떠맡지 않는 그들

둘째, 우리가 함께 살면서 공존하려면 개인적 욕구나 목표를 어느 정도 절제하고, 때로 내키지 않는 일도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세금을 내고 싶지 않더라도 세금을 내도록 한 규범을 지켜야 한다. 이때 리더가 개인적 이득에만 골몰하면, 나머지 사람도 그렇게 행동하기 쉽다. “리더도 저러는데 나라고 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나”라는 식이다. 이 세상에 손해 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리더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 헌신할 때, 나머지 사람들도 비로소 개인적 욕구의 유혹을 절제할 수 있는 것이다. 이기적 욕구를 절제하는 리더의 솔선수범이 필요가 대목이다.

채 해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서 소위 리더라는 사람들이 보인 행태는 어떠한가?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은 자기의 막강한 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함으로써 도덕과 법의 측면에서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높은 지위와 많은 권력을 지닌 사람으로서 권리만 행사할 뿐 문제에 대한 책임을 떠맡지 않는 것은 공정치 못한 처사다. 공익보다는 사익을 우선시하여 권력을 남용하는 것은 업무나 신분상 군인으로 지켜야 할 군기를 어긴 것이다. 그들의 무책임한 행위 때문에, 묵묵히 군인으로서 본분에 충실한 많은 장병의 사기는 비참하게 찢겨나갔다.

리더가 갖추어야 할 책임감은 무엇인가

리더가 갖추어야 할 책임감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어떤 사안이나 사람을 다루고 살펴서 주어진 일이나 임무를 수행하는 책임responsibility이다. 이것은 주어진 상황이나 사건에 대해 반응하고 대처하는 것으로, 도덕적으로 옳거나 법적으로 혹은 조직 차원에서 우리에게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과업이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런 책임감은 리더에게는 도전적인 과제인데, 왜냐하면 책임감을 갖고 수행한 과업이 실패로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책임한 리더는 책임감 있게 일을 추진하기보다는 무사안일하고 복지부동하기 십상이다.

또 다른 형태의 책임은 행위가 가져온 결과에 대한 책임accountability이다. 이것은 자기가 책임지고 한 수행이나 행동의 결과에 기초해서 자신이 확실히 평가받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책임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면 이러한 책임을 유발할 수 있는 일을 피하고자 한다. 그래서 리더가 이러한 책임을 감수할 때, 나머지 구성원들은 리더가 요구하거나 조직이 요구하는 행동을 수행한다.

리더가 이러한 책임을 져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일에 대한 의사결정에 더 많은 권한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기회주의적인 리더는 긍정적인 결과는 자기의 공으로 돌리고, 부정적인 결과는 자기보다 지위가 낮거나 힘이 약한 사람에게 그 책임을 떠넘긴다. 

우리 군의 리더들, 계급장이 낯 뜨겁다

작금의 사태와 관련된 우리 군의 리더들은 어떤 유형의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식으로 행동하고 있다. 책임 있는 행동이 필요할 때는 개인의 안위와 영달을 우선시하는 쪽으로 의사결정하고, 그 행위의 결과가 부정적일 때는 모든 책임을 부하에게 떠넘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의 직책이 부끄럽고 계급장이 낯 뜨겁다.

군에서는 요즘 젊은 병사들을 보면서 전쟁이 나면 이들이 나가서 제대로 싸우기나 할까 걱정한다. 제가 최근에 전투에 참가한 젊은 해군 장병들을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용감하게 싸웠는지를 몸소 깨달았다. 제 걱정은 전쟁이 나면 이런 리더들이 제대로 전장이라도 지키면서 지휘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한 사회가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모두가 기피하는 일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그 사회를 떠받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사람이 신나게 일하고 제대로 대우받고 진심으로 존경받아야 한다. 그러한 사람 중에 군인이 있다. 우리가 지금 안전하게 일상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 공짜가 아니라는 것을 언론과 국민은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에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언론의 기사도 필요하고 국민의 응원도 필요하다. 군은 군기와 함께 사기로 먹고사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mind

※ 본 기사는 교수신문과 공동으로 연재하는 '정태연의 한국사회 마음 읽기' 기사입니다. 해당글은 교수신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사회및문화심리 Ph.D.
정태연 교수는 사회심리학의 주제 중 대인관계에 관한 주제로 박사학위를 하고, 현재 중앙대 심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사회 및 문화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기초로, 한국인의 성인발달과 대인관계, 한국의 사회문제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심리학적 지식을 군대와 같은 다양한 조직에 적용하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회심리학」(2016), 「심리학, 군대 가다」(2016)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