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 사회, 경쟁과 대결이 협력과 공존보다 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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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 사회, 경쟁과 대결이 협력과 공존보다 쉬운 이유
  • 2024.09.24 11:20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가 아닌 여럿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협력이라는 '선(善)'을 두고, 분열과 대결이라는 '악(惡)'의 유혹에 넘어가고 있을까?

요즘의 우리 사회는 한 마디로 분열 사회다. 상대와 대결하고 싸우는 것이 일상의 평범함이다. 모든 사안에 대해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려 서로 반목하고 비난한다. 이런 일이 어찌 우리 사회에만 있겠나만, 여기에도 격이 있고 급이 있지 않겠나. 지금의 우리 사회는 건설적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만큼 분열의 정도가 심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시시비비를 논하는 것도 부질없기 일쑤다. 편에 따라 내놓는 원인도 다르고 논리도 다르고 결론도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져볼 합의된 기준 자체가 없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편 가르기만 있을 뿐 객관적 잣대와 합리적 논증은 작동하기 어렵다. 한쪽의 주장이 객관적으로 타당해 보여도, 다른 쪽은 그것을 편협하고 왜곡된 억지 정도로 치부한다. 협상과 타협, 합의와 협의는 물 건너간 지 오래다. 이것은 비단 정치권만의 얘기는 아니다. 사사건건 국민은 국민대로 갈라져 있고, 남녀는 성별에 따라, 세대는 세대별로, 계층은 계층별로 갈라져 있다. 심지어 어린 아이들조차도 아파트 평수, 명품, 해외여행 때문에 갈라져 있다.

편먹기에 기초한 우리 사회의 반응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가 자기와 다른 존재에 대한 적대적 대응이다. 여러 이유로 동족을 잡아먹는 동물이 1천500종 이상이지만, 동족이 아닌 그래서 그 생김새가 자기와 다른 포식자나 먹잇감은 종을 통틀어 볼 때 이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나와 다른 것은 기본적으로 경쟁과 경계의 대상이다. 이때 동물의 대응은 ‘싸우거나 도주하거나’이다. 여기에는 오직 ‘먹거나 먹히거나’ 둘 중 하나의 대안만 있기 때문에, 양쪽이 공존할 여지는 아예 없다.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와 다른 존재에 대해서는 일단은 경계하면서 상대를 싸워 제압하거나 두려우면 물러서는 식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 외에도 협상이나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이 제3의 방식은 공존이라는 틀에 기초한 것으로, 적대적 경쟁에 기초한 앞의 두 반응과는 본질이 다르다. 또한 ‘싸움 아니면 도주’ 반응은 일차적이고 본능적이지만, 제3의 대응은 이러한 본능적 반응을 통제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성숙한 반응이다. 편먹기에 기초한 우리 사회의 반응은 거의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것으로, 인간의 이성적 역량을 배제함으로써 다른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고, 이런 점에서 그 격과 급이 떨어지는 수준 낮은 방식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사사건건 국민은 국민대로, 남녀는 성별에 따라, 세대는 세대별로, 계층은 계층별로 갈라져 있다. 편 가르기만 있을 뿐 객관적 잣대와 합리적 논증은 작동하기 어렵다. 사진=펙셀
지금 한국사회는 사사건건 국민은 국민대로, 남녀는 성별에 따라, 세대는 세대별로, 계층은 계층별로 갈라져 있다. 편 가르기만 있을 뿐 객관적 잣대와 합리적 논증은 작동하기 어렵다. 사진=펙셀

공감과 양보를 손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공존의 틀 속에서 협상하는 대신 분열의 길로 들어선 또 다른 이유가 이득과 손실에 대한 단기적 인식에 있다. 편으로 갈린 사람들은 보통 상대편과 협상보다는 대결과 경쟁이 자기에게 즉각적으로 더 큰 이득을 준다고 생각한다. 문제에 대한 통합과 협동의 해결책을 도모하려면 상대의 입장에 공감하고 서로 양보하면서 상생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분열된 사회의 사람들은 상대에 대한 이러한 공감과 양보를 손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경쟁과 대결을 통해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쟁과 대결이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할 때도 있다. 상대가 협동하는 한 경쟁하는 쪽은 늘 유리하다. 협동하는 쪽이 양보한 그만큼이 경쟁하는 쪽의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힘이 센 쪽은 경쟁을 통해 더 큰 이득을 얻는다. 자기의 이득을 위해 상대를 힘으로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변한다. 협동하는 사람도 곧 경쟁하는 식으로 바뀌고, 권력의 지형도 머지않아 달라진다.

여기서 핵심은 많은 연구가 입증하듯이 경쟁보다 협동이 모두에게 더 큰 이득을 준다는 점이다. 또한 ‘공유지의 비극’처럼,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경쟁과 대립의 전략은 장기적으로는 모두에게 손실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신뢰가 없으면 협동하고 양보할 이유가 없다

분열 사회의 사람들이 협동보다 경쟁을 선호하는 것은 신뢰와도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을 때 협동하고 양보한다. 내가 협동하고 양보하면 상대도 그렇게 할 것이라는 신뢰, 그것이 없으면 내가 협동하고 양보할 이유가 없다. 상대방도 공정한 규준과 합리적 사고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믿을 때, 우리는 상대와 공존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분열이 심한 사회에서는 상대에 대한 신뢰 수준이 매우 낮아, 대부분의 경우 경쟁과 대결이 협동과 공존보다 우선한다.

분열 사회가 보이는 이러한 불신은 상대방이 불공정하다는 인식에도 닿아 있다. 이런 사회의 사람들은 불공정성이나 불평등의 원인을 모두 상대편에게서 찾으면서, 그것 때문에 이 사회가 그리고 자기가 부당한 손해를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이러한 논리로 진단하다보니, 자기편이 하는 행위는 공정성 회복을 위한 매우 정당한 행위가 된다. 그럼 자기의 행위가 정당하다면 누가 그 행위를 바꾸겠는가. 이래서 결국 분열 사회는 쉽게 달라질 수 없다.

공정성에 대한 합의된 인식이 없다

더 큰 문제는 공정성에 대한 기준, 불평등의 원인, 우리 사회의 공정성 수준에 대한 합의된 인식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능력에 따른 차등 분배를 공정성의 기준이라고 주장하고, 또 어떤 이는 필요에 따라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을 공정성의 기준이라고 주장한다. 또 어떤 이는 불평등의 원인을 개인의 무능과 불성실에서 찾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차별적 제도와 같이 사회적 차원에서 찾는다. 그래서 결국 어떤 이는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고 보지만, 또 어떤 이는 불공정하다고 본다. 

앞서 기술한 여러 이유 때문에, 분열 사회에서는 이러한 의견의 차이를 건설적 소통으로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다. 반목과 질시의 일상화만 있을 뿐이다.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요인은 사람들의 확증 편향이다. 이 편향은 자기의 태도나 신념을 지지하는 정보만 받아들임으로써 기존의 태도와 신념을 강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것이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개방적으로 소통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한 원인이다. 특히, 오늘날 대중 매체의 발달로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메시지를 순식간에 다수의 자기편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써 분열을 더욱 심화시킨다. 분열이 더 큰 분열을 낳는 꼴이다. 

편으로 갈라치는 권력자는 리더가 아니다

사회적 분열을 해결하기 위한 묘안이나 특효약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많은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분열의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크기의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기의 영향 아래 있는 사람을 분열시키면, 결국 누군가는 불공정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다. 분명하게도 이러한 차별과 불공정성의 원인은 바로 권력을 행사한 그 사람에게 있다. 사회구성원을 편으로 갈라치는 권력자는 특정 패거리의 우두머리일 뿐, 그 사회의 리더는 아니다. 큰 틀에서 볼 때 우리 사회가 이렇게 분열된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자초한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해결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자승자박 결자해지 아니겠나. mind

※ 본 기사는 교수신문과 공동으로 연재하는 '정태연의 한국사회 마음 읽기' 기사입니다. 해당글은 교수신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사회및문화심리 Ph.D.
정태연 교수는 사회심리학의 주제 중 대인관계에 관한 주제로 박사학위를 하고, 현재 중앙대 심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사회 및 문화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기초로, 한국인의 성인발달과 대인관계, 한국의 사회문제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심리학적 지식을 군대와 같은 다양한 조직에 적용하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회심리학」(2016), 「심리학, 군대 가다」(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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