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때 왜 그렇게 이야기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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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때 왜 그렇게 이야기했지?
  • 2019.07.13 10:00
우리는 끝임없이 지난 일을 반추한다. "잘했어!"라는 만족보다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의 연속이다. 우리가 반추하는 동안 다양한 공상을 하게 된다고 한다. 왜 그런지, 이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과거를 곱씹고 또 곱씹는 '반추'

동료들과 일상의 힘듦을 나누다 보면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 관계가 힘들다.”라는 말을 참 많이 듣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이 몇몇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은 서점에 곱게 진열된 신간 중에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당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세요!’과 같은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책들의 수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많은 사람 틈 속에서,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며 살아가느라 애쓰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밖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혹은 그 누구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혼자 보내는 시간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지난주에, 어제,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들을 마음으로 곱씹게 됩니다. 즉, 공간적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서 쉬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미처 소화하지 못한 사회관계의 부산물들에 마음 에너지를 내어주는 것이지요.

이러한 경험은 사람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우리는 우울하고, 불안하게 됩니다. 대게 지난 일을 곱씹을 때는 ‘아까 그건 내가 정말 잘했지!’라고 할만한 일들 보다는 후회되는 일들이 많기 마련이기 때문이겠지요. 이러한 과정을 심리학에서는 반추rumination라 부릅니다. 소가 한번 삼킨 먹이를 다시 게워내어 씹는 것을 반추행동이라고 하는데, 심리과정의 반추는 부정적 감정을 경험한 뒤에 그것의 원인, 상황 요인, 그리고 결과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생각하는 것Nolen-Hekesema, 1991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뇌

우리가 반추하는 동안에는 다양한 주제의 공상을 하게 되는데,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주제는 나와 내 주변사람들에 대한 생각입니다. 사실 우리가 특정한 업무에 두뇌를 할당하지 않고 있을 때, 소위 말해 멍- 때리고 있을 때, 나와 타인에 대해 생각을 하는 것은 하는 것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서 해야 하는 주요 일과 중의 하나이며, 적응적인 사회적 능력을 함양하기 위한 필수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Lieberman, 2013. 나와 타인에 대한 주제로 공상을 하며 타인이 가진 신념이나 의도에 대해서 이해하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얻은 정보는 앞으로 할 행동을 결정할 때 아주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적절한 행동은 관계를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타인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존재이며, 그들이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생동하는 존재라 가정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마음 이론theory of mind으로 설명하며, 이렇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심리화 작용mentalizing이라 합니다Premack & Woodruff, 1978.

얼핏 보면 반추rumination와 심리화작용mentalizing은 매우 유사한 기능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두 가지 활동 모두 나와 타인에 대해 생각을 하는 과정들을 포함한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반추와 심리화작용은 또 하나의 유사성을 가지는데, 이 둘 다 뇌의 기본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의 활동과 관련이 있다는 점입니다. 기계에서 기본모드default mode란 특정한 기능에 대해 설정을 하기 이전의 초깃값을 말하는데, 인간의 뇌에서 기본모드라는 것은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고 있지 않을 때에 모든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특정 패턴을 지칭합니다Raicle et al., 2001.

뇌의 기본모드 네트워크의 영역은 심리화작용을 할 때 활동하는 뇌 영역과 거의 일치하는데Frith & Frith, 2006, 실제로 뇌가 특정한 과제 없이 휴식하고 있을 때 기본모드 네트워크가 얼마나 강하게 작동하는지가 개인의 더 높은 수준의 심리화 능력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Spunt, Meyer, & Lieberman, 2015. 매일 쉬는 시간이 생겼을 때 마다 운동장을 달렸던 친구는 100미터를 전력질주 해야하는 날이 되었을 때 평소에 단련을 하지 않았던 친구보다 숨이 덜 차고,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것 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공상은 얼마나 건강한가요

심리화 작용은 우리가 적절한 사회적 판단을 통해 원활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촉매와도 같은 역할을 하지만, 반추사고는 우리를 더욱 더 우울하고 불안하게 만듭니다. 두 가지 모두 나와 타인에 대한 생각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나'와 타인에 대한 생각인지 '타인'과 나에 대한 생각인지에 따라서 그 결과물은 정반대가 될 수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대표 공상 주제인 '나와 타인에 대한 생각'이 반추가 될지 심리화 과정이 될지는 공상의 ‘관점’에 따라서 결정이 됩니다.

심리화 과정에서 핵심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은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타인의 의도를 추론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반면에, 반추 과정은 자기참조적인self-referential 생각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자기 참조적인 사고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사건들이 아주 강하게 자신과 관련지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Northoff et al., 2006. 마치 이 모든 부정적인 사건의 중심에 내가 주인공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그 생각들 안에 매몰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더불어 다른 사람의 의도에 대해서 생각할 만한 여력이 남지 않게 되겠지요.

실제로 반추사고ruminatory thought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진 우울증 환자들은 더 감소된 혹은 변형된 기본모드 네트워크 패턴을 보입니다Hamilton et al., 2015; Yan et al., 2019. 오히려 다른 사람들 보다 과거의 자신의 행동과 다른 사람의 반응에 대해서 더 많이 신경쓰고, 되새김질 하는 것은 더 많은 심리화 과정을 요구할 것도 같아 보이는데 말입니다. 최근 여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중증도 우울증 환자Major depressive disorder들의 변형된 기본모드 네트워크의 패턴이 우울증 치료제 중 하나인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Citalopram를 복용한 이후 정상군과 유사한 형태로 회복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Dutta et al., 2019.

최근 축적된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기본모드 네트워크 안에 다른 역할을 하는 네트워크의 일부가 편입되어 들어올 경우 기본모드 네트워크의 이상이 발생하여 자기참조적이며 부정정서와 연합된 반추사고 형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 밝혀져 왔는데Hamilton et al., 2015, Dutta 와 동료들의 연구결과에서도 중증도 우울장애 환자들에게서 주로 정서와 관련한 네트워크 소속인 편도체가 기본모드 네트워크에 편입된 것을 발견하였으며, 이러한 네트워크의 변형이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반추사고가 형성되는 경로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Dutta et al., 2019. 즉, 반추사고를 감소시켜주는 효과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가 우울증 환자들의 신경학적 특성인 변형된 형태의 기본모드 네트워크를 정상화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는 끊임없는 마음의 되새김질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일상적이고 건강한 '나와 세상에 대한 공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에 대한 길을 밝힌 아주 중요한 연구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멈추지 않고 나와 세상에 대한 공상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공상은 얼마나 건강한가요? mind

   <참고문헌>

  • Dutta, A., McKie, S., Downey, D., Thomas, E., Juhasz, G., Arnone, D., ... & Anderson, I. M. (2019). Regional default mode network connectivity in major depressive disorder: modulation by acute intravenous citalopram. Translational psychiatry, 9(1), 116.
  • Frith, C. D., & Frith, U. (2006). The neural basis of mentalizing. Neuron, 50(4), 531-534.
  • Hamilton, J. P., Farmer, M., Fogelman, P., & Gotlib, I. H. (2015). Depressive rumination, the default-mode network, and the dark matter of clinical neuroscience. Biological psychiatry, 78(4), 224-230.
  • Lieberman, M. D. (2013). Social: Why our brains are wired to connect. OUP Oxford.
  • Northoff, G., Heinzel, A., De Greck, M., Bermpohl, F., Dobrowolny, H., & Panksepp, J. (2006). Self-referential processing in our brain—a meta-analysis of imaging studies on the self. Neuroimage, 31(1), 440-457.
  • Premack, D., & Woodruff, G. (1978). Does the chimpanzee have a theory of mind?. Behavioral and brain sciences, 1(4), 515-526.
  • Spunt, R. P., Meyer, M. L., & Lieberman, M. D. (2015). The default mode of human brain function primes the intentional stance. Journal of Cognitive Neuroscience, 27(6), 1116-1124.
  • Yan, C. G., Chen, X., Li, L., Castellanos, F. X., Bai, T. J., Bo, Q. J., ... & Cheng, C. (2019). Reduced default mode network functional connectivity in patients with recurrent major depressive disorder.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6(18), 9078-9083.
김혜린 서울대 심리학과 임상심리 박사수료
서울대 심리학과 임상심리학 전공 박사과정 학생이다. 최진영 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며, 노년기 사회적 고립이 노화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고자 하는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사회적 고립상황에서 관찰되는 뇌 반응과 지각된 외로움 수준의 개인차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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