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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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 2019.07.08 10:00

교수가 쓴 대중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기가 쉽지는 않다. 재미도 감동도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이 와중에 출간 후 6개월 동안 12쇄를 훌쩍 넘긴 심리학 서적이 출판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의 저자는 현재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로, 임상심리학과 뇌과학을 바탕으로 자존감과 우울, 애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허지원 교수는 자신의 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 책의 출판과 성공을 뒤늦게나마 축하드린다. 저자에 대해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안녕하세요,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인 허지원입니다. 임상심리전문가 553호, 정신건강임상심리사 584호입니다.”

- 뒷부분에 그 소개는 꼭 붙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꾸 그 이야기는 왜 붙이는가?
“한국에 심리치료 관련 자격증 개수만 4600개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심리학회, 한국임상심리학회에서 관여하는 자격증은 그 중에서 두세 개밖에 되지 않습니다. 동네에 있는 심리상담센터의 99%는 저희쪽에서는 모르는 센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심리치료 자격에 대한 법적 제한이 없어 생기는 문제들을 계속해서 이야기하면서, 무자격심리치료자들이 취약한 내담자들을 얼마나 더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 부치는지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려고 합니다. 실제로 제게 연락해오는 일면식도 없으신 분들의 경우 오랫동안 인터넷으로 저질의 심리학 강의를 듣고는 심리상담센터를 개소한 사람들에게 비윤리적인 상담을 받다가 치료의 시기를 놓치거나 불필요한 치료를 받은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

- 책 이야기를 좀 해보자. 이렇게 성공할 줄 알았나?
“정말 힘든 시기를 지나는 한두 분에게 만이라도 약간의 단서를 드릴 수 있다면, 뭐 그 정도로만 바랬습니다. 제가 봐도 잘 썼거든요…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잘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까지 출판사 16-17곳에서 연락이 왔는데 이 정도면 정말 분에 넘치지 않나 싶습니다.”

- 책은 왜 쓴 건가. 책을 쓰기에 본인이 너무 어리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나?
“책을 언젠가는 쓰고 싶다 생각은 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는데요,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과 관련하여 ‘마음성장프로그램 토닥토닥’이라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해서 그 치료효과를 입증하는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 앱을 써보시고는 이런 심리학적 이야기들이 재미있겠다, 판단하시고 출간제의를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연구 종료 후 해당 앱에 대한 권한은 보건복지부로 이관됨). 학부학생들이, 제가 수업시간 중에 했던 이야기들을 기억했다가 강의평가에 저의 말을 되돌려 적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기억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졸업을 하게 되어 더 이상 제 잔소리를 듣지 못해 섭섭하다’는 피드백들을 보면서, 졸업을 하건 다른 수업을 듣게 되건, 어떤 이유로든 저와 함께 수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제 이야기를 꺼내어 볼 수 있도록 만들어두자는 조급한 마음에 느닷없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  느닷없이 쓴 책 치고는 잘 되었다. 무슨 이유라고 생각하나?
“책을 역시 잘 썼기 때문이 아닐까..”

- …어떻게 잘 썼나…
“처음부터 원칙은 하나였습니다. 철저히 과학적인 근거기반에서 주장을 할 것. 입에 발린 말, 뜬금없는 ‘너는 너 자체로 충분해’ 같은 이야기는 하지 말 것. 책에도 적었지만, 그런 근거 없는 자기계발서는 사람을 더 우울하게 하고 무력하게 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연구들을 정말 꼼꼼히 뒤지면서 아직 논쟁 중인 이야기들은 빼고, 어느정도 합의에 이른 연구결과 등을 우선순위에 두고 이야기를 천천히 진행시켜 나갔습니다. 그리고 독자분께서 말씀해주셔서 뒤늦게 안 사실인데, 제가 ‘우리’라는 표현을 꽤 많이 썼더라고요. 그러니까, 나는 심리치료자고 너는 내담자, 나는 교수고 너는 학생, 이런 관점에서 책을 적었다면 이 책의 내용들이 꽤나 불편했을 수 있는데, 제가 수업시간에 하는 그대로, 자기노출을 했던 것이지요. 나도 취약하고, 나도 자존감이 불안정하고, 나도 우울하지만, 그럭저럭 수습하며 살고 있어. 그 거리감을 의도하면서 좁히려 했다면 독자분들 입장에서는 더 언짢게 느끼셨을 수도 있는데, 어쩌다 보니 그냥 저의 스펙트럼이 독자분들의 스펙트럼과 적절히 겹쳐져 있어 다행히 좋게 받아들여 주셨던 것 같습니다.

- 뇌과학과 임상을 함께 배치시킨 것은 꽤나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두번째 책을 쓸 때면 이렇게 뇌과학과 임상을 이분화해서 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실은 뇌과학은 심리학 그 자체이기 때문에 둘을 나눈다는 것은 너무 작위적인 일이기도 해서 이걸 나누어 적을 때에 너무 힘들기도 했습니다. 다시는 못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뇌과학이 심리학 그 자체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심리학은 인간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인데 당연히 그 행동의 생물학적 기반은 뇌입니다. 심리학과 1,2학년 커리큘럼에 뇌의 구조를 포함한 생물학적 기반을 필수적으로 배운다는 것을 고려하면 모든 심리학자는 기본적으로 뇌과학 관련 훈련을 받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이 뇌파를 연구한 역사도 매우 긴데, 그 심리학자들을 다 놔두고, 현재의 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을 주로 뇌과학자로 말하는 것은 사실 이상한 일입니다. 뇌영상연구법은 심리학 및 정신과학의 연구방법론 중 하나로 보는 것이 맞고요. 저도 계속 fMRI연구를 하고 있는 연구자이지만 뇌과학자로 불리면 정말 이상합니다. 그냥 저는 심리학자가 좋은데, 저를 뇌과학자로 부르면 뭔가 더 fancy해보인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 것 같습니다.

- 그런데도 왜 굳이 어려운 뇌 이야기를 썼는가? 잘난 척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잘났다고 보아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에 대한 답은, 책이 장기간 베스트셀러에 오른 나머지 교보문고 한정 특별판이 지난 봄에 발간되었는데, 그때 적은 저자 서문 중 일부로 대신하겠습니다. < 무엇보다 낯선 뇌의 이야기에 지치지 않아 주셨던 분들, 감사합니다. 복잡한 미로의 끝에 이것만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여행을 하다 다리가 아픈 날이면 ‘오늘은 피곤해서 좀 천천히 갈게’하며 자연스럽게 다리의 탓을 하고, 일을 하다 손가락을 베이면 ‘손가락을 다쳐서 당분간은 일이 힘들 것 같아’하며 손의 탓을 하고 잠시 쉬어 가지만, 뇌의 기능이 약화되어 생기는 여러 가지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뇌의 탓을 좀처럼 하지 않습니다. 내가 무력한 것, 불안한 것, 우울한 것, 자존감이 낮거나 타인을 의식하는 것들을 그저 ‘나의 탓’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이건 뇌의 탓이야’ 하셔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게 더 과학적이고요. 나의 노력과 관계없는 불운이 어느 날 닥쳐 나의 세상이 흔들리는 날이라면, 뇌에게 타박도 좀 하고 또 어떤 날은 상황을 살펴 조금쯤 뇌가 유치하게 쉬어갈 여지를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 친구도 한다고 했어요. 최선을 다 해왔습니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적어주시는 서평들 저도 너무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글을 적어 내려갔을 때와 같은 마음으로 제 글을 읽어주시고 추천해주신 수많은 분들께 그저 감사합니다. <수천 가지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당신을 어느 한가지의 이유로 그 누구도 다치게 할 수 없음을, 끊임없는 새로운 기대가 당신의 거대한 이야기를 천천히 확장시킬 수 있음을, 천천히 알아 나가길 진심으로 기도하고 바랍니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임상심리전문가. 한국임상심리학회 홍보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대한뇌기능매핑학회 대의원 및 학술위원. 정신병리 및 심리치료의 효과를 임상과학 및 뇌신경학적 수준에서 규명하고자 연구를 지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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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3 2019-07-20 11:41:12
책 정말 잘읽었어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적절한시기에 책의 존재를 알게되어 정말 소중히 읽을수있었어요. 앞으로도 잘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