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글라스의 역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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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글라스의 역기능
  • 2019.08.07 14:00
선글라스는 따가운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할뿐만 아니라 개인을 더 멋지게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선글라스 착용은 이에 못지 않은 부정적 효과도 있다.

선글라스의 계절

따가운 햇살이 눈이 부시도록 내리쬐는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여름이면 의례 서랍 안에 고이 모셔두었던 선글라스에 손이 가기 마련이다. 꽤 비싼 돈을 지불하고 구입했지만 휴가철에 피서를 떠날 때나 해외에 나갈 때를 제외하곤 자주 손이 안가는 게 선글라스다.

선글라스는 따가운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의 멋을 한껏 뽐내주는 액세서리 소품의 순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 못지 않은 역기능도 있다. 흔히 영화에서 어둠의 세력들로 그려지는 악역들의 주요 소품 중 하나가 바로 짙은 색 선글라스인데 여기에는 사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찰스 헤르만 Charles Hermans, 1839–1924.  가장 무도회에서 At the masquerade, 1880. 캔버스에 오일, 37.2 x47 cm.
벨기에 사실주의 화가 샤를 에르망의 가장무도회masquerade 그림. 선글라스가 자신을 숨기는 기능을 수행한다면, 그 기원은 역시 가면무도회의 필수품인 눈가림용 마스크eye mask일 것이다. 그림 속 여인이 착용한 짙은 색 눈 마스크가 인상적이다. 샤를 에르망Charles Hermans, 1839~1924. '가장 무도회에서', 1880. 캔버스에 오일, 37.2 x47 cm.

정체은폐의 역기능

이러한 역기능의 근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시피 '정체은폐'disguise이다. 아무래도 짙은 색 선글라스로 얼굴의 주요 부위를 가리게 되면 선글라스를 착용하지 않았을 때보다 누군지 분별하기 어렵다. 초면인 사람이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나를 만나고 있다면 뭔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거나 무엇인가를 숨기려 한다는 의구심을 떨쳐내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히 받아들이는 선글라스 착용의 역기능에 대해 과연 심리학자들은 어떻게 검증을 시도했을까? 최근 영국 링컨 대학 심리학과의 연구자들이 안경과 선글라스 착용이 얼굴지각face perception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선글라스 착용이 개인에 대한 매력attractiveness과 유능함 등에 대한 평가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반면, 신뢰감trustworthiness 평가에는 분명히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는 것으로 관찰됐다. 특히 그들은 이러한 신뢰감 저하의 원인으로 얼굴의 정체 파악face identity matching을 안경과 선글라스가 방해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47명의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수행한 그들의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동일한 개인을 촬영한 서로 다른 세 사진을 보고 해당 인물의 매력 정도, 유능함 및 신뢰로움을 평가했다. 해당 인물(들)의 세 사진은 안경 미착용, 안경 착용 그리고 선글래스 착용 등 세 종류가 있었는데 단순 평정rating을 통한 매력, 유능함 및 신뢰감 평가에서, 선글라스를 착용한 사진에 대해서만 신뢰감 평가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누구세요?

흥미로운 것은, 해당 연구자들이 얼굴 대조face matching 과제를 사용해 안경과 선글라스 착용이 동일인 여부에 대한 식별identity matching을 방해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낸 것이다. 예를 들어 평정과제에 뒤이어 실시한 대조 과제에서는, 두 장의 사진을 대상으로 동일 인물 여부를 판단하는 과제가 진행되었다. 두 사진 속의 인물은 같은 인물일 수도 있고 비슷하게 생긴 다른 인물들일 수도 있었는데, 중요한 것은 두 인물이 모두 안경을 쓰지 않았거나 안경 또는 선글라스를 공히 착용한 일관 조건congruent eyewear condition과 한 인물은 안경을 쓰지 않았는데 다른 인물을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착용한 그리고 한 인물은 안경을 다른 인물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비일관 조건incongruent eyewear condition간 대조 정확도matching accuracy의 차이이다.

참가자들은 비일관 조건에서 상대적으로 두 인물의 동일성 여부를 판단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특히 이러한 어려움은 두 인물이 실제로 다른 사람인 경우identity mismatch보다 같은 사람identity match일 경우 더욱 분명했다. 즉 서로 다른 사람의 사진인 경우 안경 혹은 선글라스를 둘 중 누가 썼는지에 관계 없이 두 사람이 서로 다르다고 판단하는 데에 큰 무리가 없었지만, 두 사진이 동일 인물인 경우 두 사진 중 하나에서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착용했을 때 많은 참가자가 두 사진의 인물을 서로 다른 사람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물론 두 사진의 동일 인물이 공히 안경 또는 선글라스를 쓰지 않았거나 공히 착용한 경우 이러한 대조의 정확도는 눈에 띄게 상승했다.

선글라스를 벗어야할 때

이 결과는 개인의 정체 파악을 방해하는 선글라스 착용이 신뢰감 저하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안경을 착용했을 경우 개인의 정체 파악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적어도 안경 착용이 신뢰감 저하로는 이어진 것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평정 결과가 흥미롭다. 즉 선글라스는 얼굴의 정체 파악을 어렵게 만듦과 동시에 신뢰감까지 저하시키는 특이한 역기능이 관찰된 것이다.

자 무더운 한 여름이 다가온다. 피서지, 휴양지에서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사람이 늘어날 텐데 적어도 신분을 분명히 밝혀야 하는 장소에서는 선글라스를 꼭 벗는 것이 훌륭한 선택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신분증 사진을 촬영할 때 왜 반드시 안경을 벗어야 되는지에 대해 궁금해 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답을 얻었으리라 짐작한다.mind

   <참고문헌>

  • Graham, D. L., & Ritchie, K. L. (2019). Making a spectacle of yourself: The effect of glasses and sunglasses on face perception. Perception, 48(6), 461-470.
현주석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인지심리 Ph.D.
인지심리학의 주제 중 시각작업기억과 주의에 관한 주제로 박사 학위를 하고, 현재 중앙대 심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인지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기초로 인간의 장, 단기 기억과 사고 및 선택적 주의 현상 연구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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