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고 믿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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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고 믿나요?
  • 2019.07.25 10:00
많은 이들은 현재 사회적 지위가 낮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믿음이 어떤 심리적 효과를 가지고 올까요? 이러한 믿음이 허구라면 또 어떨까요?

계층이동성이 가장 낮은 나라

한국사회는 심각한 사회 불평등에 직면해 있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소득 평등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들에서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30위권인 최하위권에 머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와 더불어 한국사회는 특정 계층에 속한 사람이 다른 계층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의미하는 사회적 계층이동성social mobility 역시 낮다. OECD2018년 발표한 “A Broken Social Elevator? How to Promote Social Mobility”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계층 이동성이 가장 낮은 국가로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높은 교육열로 인해 교육계층의 상승은 가능하지만 이것이 직업계층의 상승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소득계층의 이동은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신화적 속담은 과연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김홍도金弘道, 1745~?의 화첩 『평생도』平生圖 가운데 「소과응시도」小科應試圖 부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을 대표하는 풍속화가 김홍도가 그린 조선 후기 과거시험장의 모습이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답안을 베껴 써주거나 심지어 대신 작성하는 모습도 발견된다. 오늘날 고시와 마찬가지로 과거는 신분상승의 가장 빠른 길이었다. 

각종 사회적 지표가 보여주는 계층 이동성의 실제적 수치와는 별개로 사회구성원 개개인은 사회적 계층 이동의 가능성에 대해 저마다 다른 인식을 가질 수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계층 이동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반대로 어떤 사람은 우리 사회의 실제적 계층 이동의 수준보다 그 가능성을 훨씬 낮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에 사회적 계층 이동성에 대한 주관적 인식의 수준이 불평등 상황에서의 개인의 사고와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상대적 박탈감의 양면성

사지오글로우와 그의 동료들은 계층 이동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하층민이 경험하는 상대적 박탈감의 부정적 영향력을 줄이는 효과를 가질 것이라는 가설을 제안한다Sagioglou, Forstmann, & Greitemeyer, 2019. 상대적 박탈감이란 자신이 마땅히 가져야 하는 것 보다 덜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으로, 사회비교를 통해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불리한 위치에 있음을 인식하고 그 위치에 불만족할 때 발생한다. 관련 연구들은 개인의 낮은 사회적 지위를 인식함으로써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유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상대적 박탈감이 사회적 일탈, 비만, 부정적인 신체적, 정신적 건강 등의 문제적 결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개인은 자신에게 박탈감을 느끼게 만드는 대상이나 상황에 대하여 적대적 감정을 느끼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배경에서 본 연구는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하더라도, 계층이동의 가능성을 믿는 경우는 그것이 적대적 감정으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가설을 검증했다.

계층이동이 가능하다면

연구는 온라인 실험실에서 이루어진 네 개의 실험을 포함하고 있다. 참가자의 사회적 지위는 실험적으로 조작되었다. 이는 가짜 피드백을 주는 방식으로 조작되는데, 참가자들이 자신의 사회경제적 수준 및 성격특성에 대한 간단한 설문에 응답을 하면 계산과정을 암시하는 이미지가 잠시 제시된 후 자신과 유사한 특성 프로파일을 가진 사람과 비교하여 자신의 사회경제적 계층이 상위인지 하위인지를 파악하게 하는 정보를 받게된다. 이는 실험 참가자를 상위-하위 계층조건에 무작위로 배치하여 상대적 박탈감을 유도하기 위한 조작일 뿐 실제적 결과를 반영한 것은 아니었다.

그 후에 연구 참여자들은 상대적 박탈감, 자신과 비교기준이 되었던 익명의 상대에 대한 적대적 감정(분노, 불쾌함, 불만족, 좌절감 등을 포함)을 느끼는 정도 등 대해 응답했다. 사회적 계층 이동성도 주요한 변인으로 다루어졌는데, 두 개의 실험에서는 개인이 가진 계층이동 가능성에 대한 인식을 직접 측정한 값을 사용했고, 다른 두 개의 실험에서는 보조자료를 통하여 계층이동의 가능성이 낮다는 인식을 부여한 조건과 계층이동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부여한 조건을 실험적으로 조작했다.

결과는 네 개의 실험에서 일관되게 연구자의 가설과 일치했다. 네 개의 실험에서 모두 유사한 타인에 비해 낮은 사회적 지위에 있다는 피드백을 받은 참가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의 수준이 높았다. 또한 상대적 박탈감은 비교 대상에 대해 적대적 감정을 느끼는 것과도 높은 관련성을 보였다. 그러나 이 효과는 계층이동의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는 참여자에게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반대로 계층이동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참여자들에게는 그 효과가 낮았다. 즉 계층 이동에 대한 믿음이 상대적 박탈감과 적대적 감정의 관계를 조절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러한 효과는 계층이동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을 직접 측정한 경우와 실험적으로 조작한 경우 모두에서 유의했을 뿐 아니라,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출신을 실험대상으로 한 경우에도 동일했다.

요약하면 불평등 상황에서 불리한 지위를 가진 사람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라 하더라도,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계층의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다는 기대가 클수록, 상대적 박탈감이 타인과 사회에 대한 적대적 감정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언뜻 계층이동의 가능성을 믿을수록 높은 삶의 만족감과 같은 긍정적인 심리적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보인다. 그러나 이 논문의 저자들은 사실상 기회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미국의 현실에서 계층이동의 가능성은 신화적 믿음에 가깝고, 이를 믿는 것은 단지 불평등한 사회에 대해 느끼는 부정적 감정을 완화하는 기능만을 수행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계층이동 신화의 효과

나아가 저자들은 높은 계층이동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적대적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사회적 시각에서 재해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연구들은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이 사회변화를 위한 집단적 행동을 촉발하거나 발전시키는데 핵심적인 동기적 기능을 하고 있음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그런데 본 연구가 보여주는 것처럼 계층이동 가능성에 대한 높은 기대가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의 부정적 감정을 줄여준다면, 불평등한 상황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에 있어서도 이들은 정치적인 침묵을 지킬 가능성이 있다. 즉 계층이동의 신화를 강조하거나 믿는 것은 지속적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할 수 있는 불평등한 사회적 상황을 유지하거나 정당화하는 기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높은 소득불평등과 양극화, 사회적 계층 이동성에 대한 부정적 지표들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음에도 미디어와 교육을 통해 노력하면 더 나은 사회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는 신화가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한국사회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논의이다.

    <참고문헌>

  • Sagioglou, C., Forstmann, M., & Greitemeyer, T. (2019). Belief in social mobility mitigates hostility resulting from disadvantaged social standing.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45(4), 541-556.
안혜정 중앙대 심리학과 박사 사회및문화심리 Ph.D.
옳고 그름의 당위적 지식보다 차이와 다름을 이해하는 심리학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다양성과 사회혁신에 관련된 주제를 심리학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특히 다양성과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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