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이후 인간은 어떻게 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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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이후 인간은 어떻게 달라지나
  • 2019.07.19 12:00
재난이 사람들을 이기적으로 만드는지 이타적으로 만드는지에 대한 여러 가설들이 있어왔다. 최근의 연구는 새로운 설명을 제시한다. 재난에서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타인에 대한 태도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바닷가 도시에서는 매년 여름이면 찾아오는 태풍이 낯설지 않다. 대부분은 큰 피해없이 지나가지만, 수 년에 한 번 찾아오는 초대형 태풍을 겪을 때면 영화 『해운대』 같은 재난 상황을 걱정하기도 한다 (물론, 해운대의 자연 재해는 태풍이 아니라 지진해일이었다).

대大 피터르 브뤼헐 Pieter Bruegel the Elder  1526/1530–1569. 죽음의 승리 The Triumph of Death. 판넬에 오일. 117×162 cm. 프라도 미술관 소장.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the Elder 1526/1530~1569. '죽음의 승리' The Triumph of Death. 판넬에 오일. 1562~1563.  117×162 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14세기 유럽을 휩쓸고 지나간 흑사병은 유럽인구의 3분의 1의 목숨을 앗았갈 정도로 참혹했다.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재앙을 경험한 유럽인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모든 재난 영화에서는 공통적으로 혼란을 틈타 자신의 안전과 이익만을 생각하는 무리와 자기 희생까지도 감수하면서 타인과 연대해서 혼란을 극복하려는 무리가 등장한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자연 재해 관련 보도들을 보면 재난 상황을 틈타 물건을 훔치거나 다른 사람의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안전만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있다. 이와 함께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를 도우면서 상황을 극복해나가는 사람들의 영웅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재난, 분열자 혹은 협력촉진자 

다양한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을 분석한 연구들은 두 가지 상반되는 가설을 제안한다. “분열자로서의 재난 disaster-as-divider 가설”은 재난이 사람들을 이기적으로 만든다고 설명한다. 자연 재해는 극심한 자원 부족을 수반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단기적 이익에 민감하게 만들고 타인에 대한 배려나 협력을 하지 않게 만든다는 것이다. 반면, “촉진자로서의 재난disaster-as-galvanizer 가설”은 재난의 결과 공감, 이타심, 협동과 같은 긍정적인 행동이 촉진된다고 설명한다. 힘든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고통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연 재난은 사람들을 더 이기적으로 만들까, 더 이타적으로 만들까?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교의 Vardy와 Atkinson은 바누아투 공화국의 탄나섬에 있는 두 종교 공동체co-religion community에서2014년 6월부터 이타행동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 2015년 3월 초강력 사이클론 팜이 이 지역을 관통하며 거의 모든 건물을 파괴할 정도의 극심한 피해를 입혔다. 연구팀은 피해 복구가 어느정도 이루어진 2015년 6월에 다시 이 지역에 들어가서 사이클론 피해 8개월 전과 4개월 후 이타행동을 직접 비교할 수 있는 자료를 수집했다.

참가자들은 동전 10개를 (A) 자기 자신과 같은 종교 공동체 주민 사이에 나누는 과제, (B) 자기 자신과 다른 종교 공동체 주민과 나누는 과제, 그리고 (C) 같은 종교 공동체 주민과 다른 종교 공동체 주민 사이에 나누는 과제를 수행했다. A과제와 B과제는 참가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동전의 개수에 따라서 얼마나 이기적인지 이타적인지를 알아보기 위한 과제였다. C과제는 참가자들이 같은 종교 공동체 주민에게 주는 동전의 개수에 따라서 얼마나 내집단 중심적 parochial altruism인지 알아보기 위한 과제였다.

결과적으로 참가자들은 사이클론 피해 이전에 비해서 피해 이후에 다른 사람과 동전을 나누는 과제에서는 자신이 더 많은 동전을 가져갔고, 두 종교 공동체 사이에 동전을 나누도록 했을 때는 자신과 같은 종교 공동체 주민에게 더 많은 동전을 나눠줬다. 즉 참가자들은 사이클론 피해를 입은 뒤에 더 이기적이고 더 내집단 중심적으로 변화했다. 그렇다면 ‘분열자로서의 재난 가설’이 맞는 것일까?

누가 무엇을 경험했는가

연구팀은 사이클론 피해의 구체적 내용을 개인마다 측정해서 피해 내용에 따라서 이타적 행동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재산 피해가 심각했던 사람들은 사이클론 피해 이후 더 이기적이고 내집단 중심적으로 변화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을 목격했던 사람들은 사이클론 피해 이후에 오히려 더 이타적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촉진자로서의 재난 가설’에서 설명하듯이, 타인의 고통을 목격하는 것이 공감을 증진시켜서 이타적 행동을 촉진한 것이다.

자연 재해 이후 피해 복구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 간의 연대와 협력은 어떤 외부 지원보다도 중요하다. Vardy와 Atkinson의 연구는 재난 이후의 이타적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mind

   <참고문헌>

  • Vardy, T., & Atkinson, Q. D. (2019). "Property Damage and Exposure to Other People in Distress Differentially Predict Prosocial Behavior After a Natural Disaster". Psychological science, 30(4), 563-575.
설선혜 부산대 심리학과 교수 사회심리 Ph.D.
인간을 인간답게 행동하게 만드는 마음의 원리를 알고 싶어서 사회심리학과 뇌과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의사결정과 행복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박사후 연구기간동안 신경경제학과 사회신경과학을 공부했다. 사회적 행동의 사회문화적 요인과 생물학적 기반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접근법을 사용하여 도덕성, 이타성, 공감, 협동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행동의 심리-신경학적 기전을 연구해왔다. 현재 부산대 심리학과에서 사회신경과학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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