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옥에 티’를 발견하기 어려운 이유
상태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에서 ‘옥에 티’를 발견하기 어려운 이유
  • 2019.08.10 12:00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력이 투입된다. 하지만 '옥에 티'는 피하기 어렵다. 재미난 사실은 영화 관객은 이를 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말해주면 그때서야 알게된다. 우리가 '옥에 티'를 바로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환상 불일치 혹은 옥에 티

특별한 취미가 없는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영화를 보게 된다. 물론 영화관에 가서 보는 일은 드물고 공중파 방송이나 각종 인터넷 매체를 통해 상영되는 영화를 보거나 그것도 귀찮아서 YouTube의 요약 리뷰 등을 통해 한 편을 다 봤다고 그냥 치부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한 편의 좋은 영화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영화를 제작한 제작진과 전문 편집 인원이 투입되는 편집 과정이 매우 중요한데, 어마어마한 영화의 실제 촬영 분량을 영화관의 일반적인 상영 시간인 두 시간 정도로 압축하는 과정은 사실상 시나리오 작업과 배우 선정 및 촬영 과정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플롯 전개의 일관성 및 유기적 장면 전환을 만들어 내는 것은 전문적 경험과 식견을 요구하는 매우 어려운 과정임에 분명하다.

여태까지 내가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전혀 발견하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편집 오류로 인한 영화 속 ‘옥에 티'transition discontinuity in movies 장면인데 거짓말 안 보태고 지금까지 영화를 관람하던 도중 이러한 옥에 티를 발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영화 속 옥에 티는 대개 장면 전환 간 소품이나 분장 및 배경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해 장면이나 시점 전환 이러한 일관성이 결여된 채로 편집이 마무리될 때 발생한다. 따라서 영화를 관람하게 될 일반인들의 눈에 띌 정도로 분명한 옥에 티는 편집 인원의 전문성이 확보되기 어려운 저예산 영화 등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에드워드 번 존스 Edward Burne-Jones, 1833–1898. ‘비너스의 거울’ The Mirror of Venus, 1875. 캔버스에 오일, 120 cm X 200 cm. Calouste Gulbenkian Museum .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화가들은 아름다음의 추구를 모티프로 한 그림을 즐겨 그렸다. 비너스와 요정들이 연못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어딘가 사소한 흠결이 있다하더라도 중요치 않아 보인다. 에드워드 번 존스Edward Burne-Jones, 1833–1898. ‘비너스의 거울’, 1875, 캔버스에 오일, 120 X 200 cm. 리스본 Calouste Gulbenkian Museum 소장.

피할 수 없는 오류들

대개 메이저 영화사가 제작하는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에서는 편집에 투입된 인력과 각종 보정 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이러한 옥에 티가 전혀 없으리라 예상할 수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예시되는 각종 '옥에 티' 장면들을 찾아보면, 해당 영화들에 그런 장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황당한 편집 오류 들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배우의 의상 소품이 장면간 완전히 다른 소품으로 바뀌어 있거나, 액션 장면의 탄흔 위치가 장면 간 불일치하거나, 차량 추격 장면에서 차량 파손 부위에 변화가 있다거나 아예 배경에 등장하는 엑스트라 배우들이 눈앞에서 바뀐 경우 등이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 관람 중에는 이러한 편집 실수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영화를 관람하는 일반인 뿐만 아니라 편집을 진행한 전문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편집에 숙달된 전문가들 역시 약간의 부주의만으로도 이러한 옥에 티를 놓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할 수 있으며 그 상태로 편집 작업이 마무리되면 그야말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옥에 티’가 남겨진 채로 영화가 상영관에 도착하게 된다.

주의맹 혹은 변화맹

신기할 정도로 발견하기 어려운 영화 속 옥에 티 사례를 설명하는 심리학 이론이 과연 있을까? 물론 그 대답은 “예”이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주의맹'inattentional blindness 혹은 ‘변화맹'change blindness 현상 등을 근거로 영화 속 옥에 티 현상을 설명한다. 두 현상은 이론적으로는 다소 차이가 있는 기제mechanism에 근거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옥에 티 발견이 어렵다는 점을 공히 예측한다는 점에서 영화 속 편집 오류를 설명할 때 교환적interchangeable으로 사용된다.

주의맹과 변화맹 현상의 핵심은, 인간이 매 순간 시각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의식적 정보의 대상과 개수에는 제한이 있어서 이러한 의식적 정보처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건이나 사물 및 시각장면 등은 결국 찰나의 순간만 경과해도 인간의 의식에서 사라져 버린다는 점이다. 즉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일지라도, 해당 장면에서 눈길을 끌게 되는 맥락적으로 중요한 몇 가지 주요 사건이나 사물 등을 제외하면 나머지 사건, 사물 등에 발생하는 특이한 변화나 새로운 사건, 사물의 발생이나 등장 등을 사람들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

관람객의 의식적 사고

이러한 주의맹과 변화맹 현상에 근거하면, 영화 속 옥에 티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먼저 관람객의 의식적 사고는, 영화의 전개와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핵심 등장 인물들 및 그들의 대사와 연기 및 몇몇 소품 등에 몰입되어 있는 상태이다. 반면 이러한 몰입의 대상이 아닌 영화 속 기타 사건 및 사물들에 발생하는 변화는 그것이 비교적 감각적으로는 특이하고 분명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의 의식적 사고 과정에는 분명한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영화를 관람하는 도중에 옥에 티와 같은 편집 오류 들은 그것이 플롯 전개에 결정적인 방해가 되지 않는 이상 관람객이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다.

옥에 티 발견의 어려움은 관람객뿐만 아니라 사실상 편집을 담당하는 전문 인력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시나리오의 반영과 플롯 전개에 무리가 없도록 방대한 촬영 분량을 편집하는 과정에서도 역시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천문학적 제작비가 투자된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에서도 옥에 티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것이다. 물론 전문적인 편집 기술들이 존재하겠지만 결국 인간의 손을 빌어 마무리를 하게 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옥에 티와 같은 오류를 완전히 방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울 수 있다.

티가 있어도 옥은 옥이다

영화 속 옥에 티 사례를 예로 들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한 가지 시사점을 생각해 보고 싶다. 세상을 살다 보면 피치 못하게 드러날까 고민하게 되는 나만의 흠결이 있다. 이러한 흠결 때문에 타인들의 시선에 대해 신경을 쓰고 위축되는 경험 또한 자주 하게 된다. 그 때마다 자신의 인생을 영화라고 생각해 보라. 아마도 사람들은 내가 가진 흠결을 아예 모르고 있거나 알아도 개의치 않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물론 내 자신의 만족을 위해 이러한 흠결을 없애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을 이러한 사소한 문제점에 집착하기보다는 타인들에게 나를 근본적으로 정의하는 몇 가지 중요한 장점에 집중해 자신을 가꾸는 것이 아무래도 지혜로운 선택일 것이다. 옥에 티가 있다고 해도 옥은 옥이다. 이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mind

현주석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인지심리 Ph.D.
인지심리학의 주제 중 시각작업기억과 주의에 관한 주제로 박사 학위를 하고, 현재 중앙대 심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인지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기초로 인간의 장, 단기 기억과 사고 및 선택적 주의 현상 연구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