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티지 vs. 일루셔니스트: 좌뇌와 우뇌의 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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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티지 vs. 일루셔니스트: 좌뇌와 우뇌의 마술
  • 2019.08.07 14:00
어떤 대상을 위와 아래를 거꾸로 놓고 그리면 그것을 원래대로 놓고 그릴 때와는 전혀 다른 그림이 된다. 그것은 이때 작용하는 뇌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기능이 다른 좌반구와 우반구에 관련되어 있다.

오른쪽 두뇌로 그림그리기

화가이자 인지심리학박사인 베티 에드워즈Betty Edwards가 쓴 오른쪽 두뇌로 그림그리기』The new drawing on the right side of the brain,1989(1979)라는 책이 있다. 어릴 적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인데, 최근에 다시 개정판이 나왔다. 거기서 말하는 오른쪽 뇌로 그림을 그리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대상을 뒤집어놓고 그려보라는 것이었다.

저자는 사람을 그려도 그 사람의 사진을 거꾸로 뒤집어 놓고 그리고, 꽃이나 풍경도 그렇게 뒤집어놓고 그려보라고 제안한다. 독자 여러분도 한 번 시도해보시라. 이렇게 대상을 거꾸로 놓고 그린 그림을 다시 원래대로 뒤집어보면 누구든 놀라게 된다. 평소에 자신이 그리던 밋밋한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방법을 쓰면 평소에 자기가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고 여기던 사람들도 매우 개성 있고 참신한 그림을 그리게 된다. 새로운 그림기술을 배운 것도 아니고 특별히 더 노력을 해서도 아니다. 그저 뒤집어 그렸기 때문이다.

좌반구와 우반구의 차이

어째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평소에 우리가 그리는 그림은 오른쪽 두뇌가 아니라 주로 왼쪽 두뇌로 그리기 때문이다. 뇌의 좌우 반구의 기능을 알고 계시는 독자라면 왼쪽 두뇌로 그리는 그림과 오른쪽 두뇌로 그리는 그림의 차이도 쉽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뇌의 좌반구가 주로 과거 경험에서 비롯된 상식과 논리, 그리고 언어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반면에, 우반구는 지금 당장의 경험과 현상, 그리고 시각이나 청각, 촉각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따라서 좌반구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자신이 지금 보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해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선입견에다가 대상을 맞춰가며 그린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사람을 그릴 때 눈은 어디에 있어야 하며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지를 이미 생각하며 그리기 때문에 실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눈의 특징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릴 대상의 모습을 뒤집어놓으면 왜 좌반구로 그릴 수 없게 될까? 왜냐하면 우리는 그 대상이 올바로 서 있는 모습에 대한 상식만 가지고 있을 뿐, 그 대상이 거꾸로 되어 있을 때는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 아무런 선입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는 상식에 기초해서 작동하는 좌반구는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우반구가 나설 기회가 주어진다. 우반구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대상을 자신의 손이 가는 대로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덕분에 그동안 상식과 논리에 의해 억눌려있던 우리의 예술적인 능력이 깨어나 그림에 담기게 되는 것이다.

마술을 소재한 영화 <프레스티지>(왼쪽)와 <일루셔니스트>는 곧잘 비교되곤 한다.

같은 소재 다른 영화

영화 <프레스티지>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2006년작<일루셔니스트>닐 버거 감독 2006년작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마술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다. 심지어 시대배경도 거의 비슷하다. 단지 <프레스티지>19세기말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면, <일루셔니스트>는 비슷한 시대의 유럽을 배경으로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비슷한 두 영화지만 그 내용은 마치 좌반구로 그린 그림과 우반구로 그린 그림처럼 완전히 상극이다. 앞서 그림그리기에 비유하자면 <프레스티지>가 마술을 똑바로 놓고 그린 그림인 반면, <일루셔니스트>는 위아래를 거꾸로 뒤집어 놓고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프레스티지>의 포스터 이미지.

<프레스티지>에서 마술은 상식적인 결과라는 본질을 가리는 트릭, 속임수. 이 영화 속 마술에서 카나리아 새는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사람도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건가? 영화를 보시면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보다 완벽한 트릭을 만들기 위해서 자기 인생과 목숨까지도 바치는 두 마술사, 앤지어휴 잭맨와 보든크리스챤 베일의 이야기다. 이 마술사들이 추구하던, 프레스티지라는 최고급 마술이 과학자인 테슬라에게서 만들어진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들에게 마술은 결국 과학이라는 뜻이니까. 따라서 이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는 과학 프로그램을 볼 때처럼 논리적인 좌뇌가 활발히 움직여야 한다.

<프레스티지>는 두 마술사의 트릭 대결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같은 마술이 <일루셔니스트>에서는 전혀 다르게 묘사된다. 아이젠하임에드워드 노튼이 보여주는 마술들은 대부분이 영상이다. 나중에 그는 영혼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마술을 선보이는데, 뒤늦게 왕실과학자들이 그 기술의 배후에 담긴 속임수라고 추측해본 것이 바로 영사기였다. , 아이젠하임이 추구하는 마술은 과학적인 트릭이 아니라 영상예술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 <일루셔니스트>에 등장하는 마술들은 논리적으로 설명도 불가능하고, 영화의 특수효과나 CG가 아니라면 실제로 그렇게 보여질 수 없는 것들 뿐이다. 따라서 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은 마술 뒤에 숨겨진 트릭을 찾으려는 좌뇌의 노력은 진작에 포기하고, 우뇌를 발동시켜서 영화가 던져주는 이야기의 매력에 빠지는 것이다.

영화 <일루셔니스트>의 포스터 모습. 

논리와 감성의 사이좋은 결합

<프레스티지>를 즐겁게 보았다면 <일루셔니스트>를 즐기지 못하거나 그 반대도 가능할까? 물론 그런 분들도 있으리라. 좌뇌가 특별히 발달했거나 우뇌가 특별히 발달했다면 말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좌뇌와 우뇌는 뇌량으로 연결되어 있다. 덕분에 우리는 좌뇌의 논리와 우뇌의 감성을 두루두루 발휘하며 살 수 있다. 따라서 각각의 영화에 적절한 모드만 갖춘다면 이 두 영화를 즐기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우리 삶이 그런 것처럼. mind

장근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발달심리 Ph.D.
연세대 심리학과 졸업, 온라인 게임이용자 한일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종시 소재 국책연구기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 중. 심리학자, 글쟁이, 그림쟁이, 영상 중독자, 밀리터리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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